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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연구원에서 들리는 '파업과 노조 설립 움직임'을 바라보는 필자의 소감은 남다르다. 노동문제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일천한 우리 사회에서 고용정책을 중요 연구테마로 잡고 있는 필자는 연구원의 자료와 분석에 많이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13일) 한국노동연구원의 기존 노동조합은 기관 설립 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벌였고, 박사급 연구위원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노동조합이 창립을 위한 총회를 개최하였다. 파업찬성률은 94.6%에 이르고 부서장을 제외한 연구위원 대부분이 노조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입대상자 29명 중 20명이 가입). 단체협상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등 연구원을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기관장에 대한 불만과 위기의식이 팽배한 모양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설립 이후 최초 파업

현 박기성 원장은 지난 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취임했다. 전임 원장이 참여정부 시절 임명되었다는 이유로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물러났고 뒤를 이어 뉴라이트 활동 경력이 있는 교수가 임명된 것이다. 박 원장은 주류경제학의 본류인 시카고대학 출신으로써 노동문제에 있어서 시장근본주의 시각을 강하게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노·사·정 합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해체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바 있다.

사실 그의 학문적 입장에 대해서는 호불호를 논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난 해 세계경제의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미국식 시장질서에 대한 반성이 높아지고 사회통합의 위기가 고조되던 때에 하필 박 원장과 같은 시각을 가진 인물이 노동정책 싱크탱크의 수장이 된 것은 적절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박기성 원장이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자신의 시각을 연구자들에게 강요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생한 '노사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에 노조 결성에 나서게 된 연구위원들은 이미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나름의 능력과 식견을 겸비한 중견연구자들이다. 이런 전문가들에게 박 원장은 자신의 '친시장, 반노조' 시각을 강요함으로써 연구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박 원장은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자들에게 최저점의 근무 평점을 주면서 압박을 가하기까지 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은 노사정 모두의 중립적인 위치에서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그리고 고용정책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한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노동문제 연구는 연구의 자율성을 생명으로 할 수밖에 없다. 현 원장은 연구원의 생명인 바로 이 연구 자율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노연 연구에 불만 있지만... 지지 보내는 이유

필자 역시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내용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노동문제를 다루면서 거의 전적으로 외국 이론에 의존하고 있는 점,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 분석을 찾아볼 수 없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노동연구원은 노·사·정으로부터 보다 더 독립적인 연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필자는 그동안 연구원이 실증적이고도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고자 노력해 왔음을 인정하며 또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연구원이 사회정책 분야에 있어 한국 최고의 연구역량을 갖춘 기관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이다.

지난 1월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이 원장직을 떠나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률예측치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요."

지금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갈등은 단순한 노사 갈등이 아니다. 정부의 '입'으로 전락하는 국책연구소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자괴감에 빠질 수만은 없다는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식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결단코 권력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연구자로써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자들에게 지지와 연대, 그리고 격려의 말씀을 올린다.

덧붙이는 글 | 이상동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경제센터장입니다. 이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박기성#연구원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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