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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자리는 대단한 자리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리인데다 법을 집행하는 최고의 자리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선망의 눈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나는 검찰총장의 힘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때가 있었다.

 

벌써 10년도 더 이전이 이야기이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명재 검찰총장 시절이었으니까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총장의 파워는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국회 도서관에 볼 일이 있어 여의도에 가는 길에 과거 사회운동을 함께 한 한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당시 야당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중진 의원이었다. 이명재라는 말에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경직되더니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주억거렸다. 아마 일순간 나를 검찰총장으로 착각했던 모양이었다. 그가 평소 위아래 가리지 않고 너무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마침내 검찰총장이란 자리는 중진 국회의원도 벌벌 떠는 자리인가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천성관이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처음 마음 속으로부터 지지를 보냈다. 이유가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적 처신으로 국민을 식상케하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이럴 때 국민 앞에 크게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검찰총장이 된다는 것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소신껏 개혁의 칼을 휘두를 수 있을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권력 행사의 핵심인 검찰총장이 나보다 연배가 약간 아래인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나는 환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최고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그 다음 은퇴를 염두에 두어야하는 만큼 세상의 주류로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바람직한 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 빨리 출세하면 그만큼 일찍 쇠잔해진다는 것은 만고진리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도 내 또래의 사람이 검찰총수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괜히 내가 그 자리에 오르는 것과 같은 뿌듯한 마음과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간헐적으로 접하는 검찰총장 청문회 소식은 실망의 정도를 지나 천성관 후보에게 절망하게 되고 나아가 이 정권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갖게 만든다. 아니, 사람이 그렇게 없는가? 이 정권의 인사 검증시스템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지금은 검찰총장 후보 청문회에 천성관이 통과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청문회를 통과한들 검찰권이 제대로 설 수 있으며 또 올바르게 행사될 수 있겠는가! 회의(懷疑)가 강하게 밀려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설령 통과되더라도 천성관 후보는 자진해서 사퇴해야 한다. 지금은 악법도 법의 시대가 아니다. 또 불의한 자가 법을 집행하는 데 순순히 따를 국민들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 이 나라를 사랑한다면 보다 도덕적인 사람으로 총장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 부동산 구입에 대한 의혹, 자녀 진학을 위해 굴린 잔머리성 전학, 부인의 명품 향연, 거기다가 돈 거래의 불투명성으로 국민들뿐만 아니라 검찰 내부에서조차 부정적 기류가 흐른다고 한다면 천성관 후보의 검찰총장 임명을 더 이상 추진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건 정부 여당과 야당의 힘겨루기 싸움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장래 검찰권을 올바로 행사해서 나라의 기율을 바로 잡느냐, 아니면 천성관 후보를 밀어붙여 국민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투명하지 못한 사람이 법 집행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을 때 영이 서지 못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나라당에 강력히 촉구한다! 천성관 후보의 임명을 밀어붙이려는 청와대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정신으로 직언을 해야 한다.

 

충성의 궤도가 국민 전체를 위하는 길과 정부 여당을 위하는 길이 배치될 때 전자의 길을 걷는 것이 정도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한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검찰 조직을 위해 나아가 국가와 국민 전체를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은 한 사람에게 연연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천성관 본인과 정부 여당의 결단을 촉구한다.


#천성관#인사 청문회#검찰총장#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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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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