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의 깃털을 닮은 듯, 어찌보면 명주실 같기도, 부채춤의 부채 같기도, 솜털 같기도 한 자귀나무 꽃입니다. 꽃말은 '가슴 두근거림', '환희'랍니다.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자귀나무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합니다.
"뒷길을 달리다 숨이 차 헉헉거릴 때 다시 만난 너는 수줍은 처녀의 미소로 다가와 터질 듯한 심장의 고통 달래 주었지."
"그 꽃 지면 조롱조롱 콩알 맺어 바람 따라 길 떠난다지. 이별의 그 날 오기까지 밤마다 보듬는 너의 사랑에 여름 밤은 식지 않는 것 같구나."
김점희 시인이 쓴 '자귀나무'란 시의 한 구절입니다. 자귀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밤이나 흐린 날에는 잎이 서로 보듬는 듯 접혀져 잠을 자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 모양이 마치 귀신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 소 먹이러 산이나 들로 나가면 소가 제일 먼저 입을 대는 나무가 자귀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소쌀밥 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자귀나무의 한자 이름은 합환목, 합혼수, 야합수, 유정수 등으로 불립니다. 모두 잎들이 서로 사이좋게 붙어 잔다고 생각해서 부르는 이름인듯 합니다. 잎이 모이는 이유는 자귀나무가 더위를 좋아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밤이나 흐린 날 열을 발산시키는 잎의 표면적을 될 수 있는 한 적게하려 하거나, 잎을 모아서 태풍 등의 피해에 대비하여 최선의 방어 자세를 취하거나, 밤새 날아드는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자귀나무를 부부 방이 있는 안마당에 심어 놓으면 금슬이 좋아진다고 하여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옛날 중국에 우고라는 사람이 조씨 성을 가진 부인과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단오 무렵 자귀나무 꽃을 따서 말린 후, 꽃잎을 베개 속에 넣어 두었다가 남편이 힘들어 하거나 우울해 하는 기색이 보이면 꽃잎을 조금씩 꺼내 술에 넣어 마시게 했는데, 그 술을 마신 후 남편은 전과 같이 쾌활한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나무하러 간 산에서 살아 있는 자귀나무를 죽은 나문 줄 알고 베었다가 당황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베기 전까지는 게으름뱅이 아이도 거뜬히 나무 한짐 장만한 줄 알았는데... 자귀나무는 겨울잠을 오래 잡니다. 진달래도 피고, 철쭉도 피었다 지고 난 5월 하순에야 새순이 돋아납니다. 잠꾸러기 나무입니다.
자귀나무는 염분에 강해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지만, 추위에 약해 산기슭, 산허리의 양지에서 잘 자라며, 중부 이남 지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열매는 꼬투리 속에 달리는데, 열대지방에서는 과육이 크고 두꺼워 식용을 하기도 합니다. 겨우내 가지에 달려있어 자귀나무 근처로 새들이 많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사천대교 아래 소공원 근처에 있는 귀여운 자귀나무입니다. 앙증 맞은 평상과 자귀나무 꽃이 한폭의 그림처럼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금슬 좋은 노 부부가 서로 마주보며 자식 얘기, 농사 얘기, 이웃집 얘기 나누는 자리인듯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