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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이 지하철을 탄다. 그의 이름은 철이. 한때는 TV에 출연한 적도 있다. 비록 그것이 단 한 번이었고, 그 때문에 그가 코미디언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동창이나 가족 같은 이들밖에 없지만, 어쨌거나 그는 공채 출신의 코미디언이다. 그런 그가 잡상인의 길에 나섰다. 연기 연습인가? 혹은 담력 테스트인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철이는 칫솔을 판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저조하다. 개그라도 해서 웃기면 어떻게 어필해볼 텐데 그는 공채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뻣뻣하기만 하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것일까. 그에게 구세주의 손길이 등장한다. 누군가 칫솔에 대해 문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튼튼하다고 말하는데 칫솔이 부러진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에 비하면 그가 사부로 모시기로 한 '미스터 리'의 판매실적은 놀랍다.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돈 쓰기를 아끼지 않는다. 비결이 대체 무엇일까. 철이는 그것을 모른다. 그것을 모르고 마냥 물건을 팔려고 하는데 농아 여인이 코팅된 종이를 내민다. 남동생이 중증 장애인이고 아기까지 밴 상태라 살아가기가 너무 힘드니 도와달라는 글이 적혀 있다. 철이는 어찌할 것인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2009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날아라, 잡상인>은 소재부터 눈길을 끌고 있다. '잡상인'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또한 잡상인이 겪는 문제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잡상인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되던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승미는 이런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읽는 맛을 더해간다. 재치가 돋보이는 장면들과 주인공의 희화화된 독백이 겹쳐지면서 소설 읽는 맛이 쏠쏠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소설의 맛을 완성시키는 궁극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소설이 이야기하는 바가 중요하다. 문학적인 힘과 성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날아라, 잡상인>은 그것까지 이르렀는가. 날았다. 그래서 닿았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유머러스함을 만들었던 요소들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대표적인 것이 철이를 당황케 했던 농아 여인 수지다. 그녀는 정말 장애인이 맞았다. 하지만 구걸하기 위해 전철을 타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수치심을 팔기 위해 전철에 탄다. 무슨 뜻인가. 그녀는 동화에 들어갈 그림을 그린다. 그걸 그리고 나면 출판사에 넘긴다. 출판사는 그 그림을 작가에게 넘긴다. 그 순간, 그 그림이 작가의 것으로 변한다.

 

그럴 때, 수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상과 자신에 대한 모멸감 같은 것이 가득하다. 그래서 전철을 타서 수치심을 판다. 수치심을 팔아야 조금이나마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철이의 사부 미스터 리는 어떤가. 알고 보면 빌딩도 있고 고급차를 끌고 다니는 이 남자는 '빛'에 관한 물건만 판다. 북라이트나 미니랜턴 등을 파는 것이다.

 

그는 왜 그랬던 것일까. 그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싶다. 그것이 비록 판매라는 과정을 통한 것이지만 그만의 어떤 사연 때문에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요"라는 말을 하며 빛을 팔러 다니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 사연들은 다들 제각각이다. 겉모습은 그렇게 제각각인데, 공통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 그리고 건강한 웃음을 준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시작은 신선하고 유머러스했는데 점차 애틋함을 더해 사람의 온도를 담은 소설로 거듭났다. 사람들이 관심 없어하는, 어쩌면 가장 멸시받는 대상일 수도 있는 그들을 통해 훈훈함과 웃음을 만들어주고 있는 <날아라, 잡상인>, 작지만 소중한 뭔가를 건네주고 있다.


날아라, 잡상인 - 2009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민음사(2009)


#우승미#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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