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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군락지 부근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저씨와 약초에 관한 이야기며, 산과 건강에 관한 담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정오를 넘기고 있었다. 나는 죽령휴게소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아저씨는 안양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아저씨가 오던 길에 채취한 표고버섯을 비롯한 약초 반찬과 총각김치가 맛있었다. 내가 사온 도시락은 별로 맛은 없었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잘 먹었다.

          

집에서 가져온 오이며, 옥수수 통조림, 복숭아 통조림도 먹고, 물도 잔득 마시고는 행복한 식사를 마쳤다. 아저씨는 단양으로 간다며, 천동계곡 방향으로 하산을 했다. 나는 길을 서둘러 비로봉에 올랐다.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의 경계에 위치한 소백산의 주봉 비로봉(1439m)은 경관이 좋았다. 사방이 확트여 시야가 넓었고, 멀리 풍기와 단양 일부가 보였다. 구름이 많고 날씨가 흐렸지만, 정상에 오르니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햇살이 뜨거워 반팔을 입은 팔이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팔등에 열이 난다. 

 

일요일이라 소풍을 온 것 같은 가족들과 단체로 올라온 고등학생들, 소백산 관리소의 직원2명이 식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식사를 이미 마친 나는 잠시 사방을 조망한 이후 국망봉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확트인 시야가 너무 좋은 곳이라 나중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연우랑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덥고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몸이 좋아 길을 조금 더 늘려 국망봉에 올라, 돼지바위를 보고 초암사 방향으로 하산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1시간 정도 더 걸리는 길이지만, 구름도 많지 않고 저녁 늦은 시간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와서 별 걱정 없이 걸었다. 길은 대체로 평탄하고 아이들도 동행할 수 있을 정도로 편했다.

 

30~40분 정도 걸었을까? 중간에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 발목이 잡힌다. 자신은 "초암사에서 월전리 방향으로 길을 잡아 달밭폭포를 지나 월전계곡 길을 올라왔다."면서 "국망봉과 비로봉 어느 쪽이 가깝냐?"고 물어왔다. 내가 "비로봉 쪽이 아직은 가까운 것 같다."라고 대답을 하고 가려 했다.   

 

그는 "초암사 방향으로 가려면 내가 올라온 길을 따라 가면 된다."라며 길을 알려주었다. 국망봉에 올라 망한 신라와 마의태자를 생각하면서 묵념을 한 이후, 하산 길에 돼지바위를 둘러 석륜암골을 지나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려고 하였지만, 샛길을 알려주며 자신도 하산을 하겠다고 하여 나도 같이 월전계곡을 가로지르는 하산 길을 택했다. 국망봉과 돼지바위는 나중에 초암사에서 시작하는 등산을 한 번 더 하는 것으로 일단은 미루기로 한다.

                        

자신을 "영주시청 문화관광과 김영섭 계장"이라고 소개한 동반자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소백산 산책로를 답사하기 위해 혼자 등산을 왔다."고 했다. "나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더니 "영주시의 경우 소수서원에서 출발하여 달밭골과 비로사를 거쳐 풍기읍을 둘러 풍기온천, 죽령옛길을 넘는 코스가 선정되어, 3개 구역으로 나눠 산책로를 개발하는 중"이라고 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일에 관광코스 개발을 위해 공무원이 혼자서 산책길을 둘러보고 있다니,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공무원의 모습과 너무 다른 느낌. 아무튼 김계장과 하산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주시의 관광발전 계획이나, 농축특산물 홍보 전략 등에 대해 고민이 많은 공무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죽계천을 따라 내려가는 하산 길은 그늘이 많아 시원하고 이어지는 폭포와 계곡을 따라 물소리와 함께하는 길이라 걷기에 좋았다. 중간 쯤 달밭폭포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달밭골에 있는 독농가에 들러 물을 한잔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었다. 농가에 혼자사시는 노인은 마당에 벼락 맞은 참나무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도 이런 곳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며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시간 넘게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다 되어 초암사에 닿는다. 경내를 잠시 둘러보았다. 비구니 사찰인 초암사는 소백산 자락에 있는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절이다. 특히 삼성각 옆에 좀도둑을 막아준다고 하여 세워 둔 돌개상이 나는 마음에 든다. 비구니 사찰에 좀도둑이 많았다니 너무 우기고 재미있다.

                

절 앞으로 지나는 죽계천은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초암사 풍경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니 랜즈 앞 뚜껑이 어디로 날아가고 없다. 달밭폭포 인근에서 잃어버린 것 같지만, 돌아가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인 것 같아 포기한다. 아깝다. 마누라에게 혼날 것이 더 끔찍하다.

 

당초 초암사를 지나 안축 선생의 지은 고려향가<죽계별곡>을 따라 부르면서 죽계구곡을 둘러 본 다음, 배점리 탐방지원센터 부근에서 택시를 타고 죽령으로 가려했지만, 김계장이 죽령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여 같이 동행하여 풍기읍으로 갔다. 너무 고마웠다.

 

더운 날씨라 중간에 풍기읍의 명소 중에 한 곳인 냉면집에 들러 김계장이 사주는 시원한 물냉면을 한 그릇씩 하고 죽령으로 갔다. 휴게소 인근에 있는 매점에서 칡즙을 한잔하고 나서 오후 4시를 조금 넘어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려나, 구름이 엄청나게 몰려온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나 보다.


#소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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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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