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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부터 경기도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재삼 교육위원.
 지난 23일부터 경기도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재삼 교육위원.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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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아직도 예산을 깎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김상곤 교육감한테 감정이 있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학생들 무료 급식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논리를 펴는데, 딱히 근거로 대는 것도 없어요. 아이고 정말, 답답해서 말이 안 나오네···."

이재삼 경기도교육위원은 한숨을 쉬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창밖은 시리게 맑았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 교육위원회 본회의장은 적막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 위원이 창밖에서 시선을 거뒀을 때 그의 눈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이 위원이 다시 쥐어짜듯 말했다.

"7년간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본회의장에서 감정이 솟구쳐 말이 안 나온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럴 만도 했다. 경기도교육위원회는 23일 본회의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신청한 추경예산안을 '일부' 삭감했다. 하지만 그 일부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핵심 정책 모두였다.

"교육위원들이 왜 예산 깎았는지 아직도 이해 못 해"

전체 추경예산안은 3656억6500만 원. 크다고 하면 큰 금액이다. 이중 교육위원들이 칼질을 해댄 건 5.6%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5.6%는 모두 김 교육감의 핵심 정책 예산이었다. 초등학교 무료급식, 혁신학교, 청소년인권조례 제정 비용.

예산 삭감 소식과 함께 김 교육감 정책이 좌초될 위기라고 전해지자 많은 시민들이 일제히 교육위원회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치졸하게 아이들 밥값을 정치적으로 깎는다"는 것이었다. 이재삼 교육위원 역시 같은 이유로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농촌에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정말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그 안에는 농촌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밥 좀 제대로 먹이자는데, 이것만큼 시급한 교육현안이 도대체 뭡니까?"

추경예산안은 김 교육감의 정책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통과됐다. 삭감 찬성 7, 기권 2, 삭감 반대 2. 끝까지 삭감 반대를 외친 이재삼, 최창의 교육위원은 곧바로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의장석 바로 앞에는 현수막도 걸었다.

"도서벽지, 농산어촌, 도시소규모학교 학생 무료급식 삭감 항의 농성. 경기교육가족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경기도교육위원 이재삼, 최창의."

지난 23일부터 경기도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재삼 교육위원.
 지난 23일부터 경기도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재삼 교육위원.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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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이면서 동시에 경기도민을 향한 석고대죄였다. 24일 농성 중인 이재삼 위원을 도교육청 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만났다. 이 위원은 연방 안타까움과 사죄의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원래 학교 급식은, 오래전부터 국가가 책임지고 무상으로 했어야 했다"며 "전국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를 경기도 교육위원들이 발로 차버렸다"며 혀를 찼다. 무상급식 전국 시행이라니? 이 위원의 설명은 이렇다.

"경기도가 전체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하면 다른 지역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당장 서울시민들이 '우리도 무상급식하자'고 요구하겠죠. 그러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건 금방이고, 결국은 국가 차원에서 재원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이 위원은 지난 84년 경북 청송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2002년부터는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7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전국 초등학생 무상급식, 경기도교육위원들이 망쳤다"

이 위원은 "그동안 도교육청 예산 심의는 묵시적으로 전원합의제로 운영됐고, 이번처럼 표결로 가게 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과거에는 어떤 경우든 거의 합의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육위원들이 민선으로 당선된 김 교육감의 핵심 공약에만 '의도적'으로 손을 대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김 교육감이 좌초되면 경기도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결국엔 우리 교육위원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위원은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잘 믿기지 않는 듯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계속 이 말을 반복했다.

"알 수가 없어, 정말 알 수가 없어···.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본인들 지역구에도 밥 굶는 아이들 많은데, 그거 통과시키면 자신들도 좋을 텐데···. 진짜 알 수가 없어."

그러더니 이 위원은 오히려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진보 교육감이 싫은 걸까요? 여전히 김상곤 교육감을 '이방인'으로 보는 걸까요?"

이 위원은 교육 관료에 휩싸여 있는 김상곤 교육감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김 교육감은 경기교육이라는 바다에 배를 띄웠지만 아직 닻을 내리지 못했다"며 "직선으로 당선됐지만, 교육감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정무직 인사를 외부에서 거의 데리고 올 수 없다, 이 때문에 김 교육감이 많이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위원회 홈페이지.
 경기도교육위원회 홈페이지.
ⓒ 경기도교육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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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아직 닻 못 내려... 교육위원들 당장 사죄해야"

이어 이 위원은 "직선 교육감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이번 농성을 언제 끝낼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교육위원인 내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이런 사실이 경기도민에게 너무 죄송하고, 이번 일이 우리 교육위원들에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오는 7월 열리는 경기도의회가 우리 교육위원들이 삭감한 예산을 원상복구해주길 바란다"며 "그게 가능하려면 결국 시민들이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이철두 경기도교육위원회 의장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일인지 이 위원은 전화기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의가 빗발치는 게 당연하죠. 그럼 그런 것도 모르고 예산 깎았답니까? 시민들한테 욕먹기 싫으면 당장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하라고 하세요! 나쁜 감정 갖고 정치적 판단으로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죠! 빨리 사과하라고 하세요!"

사연인즉, 예산안 삭감에 찬성한 교육위원 7명에게 항의가 밀려든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이 위원 전화기로는 격려와 응원 메시지가 쉼 없이 도착했는데, 다른 위원들은 그 반대였던 모양이다.


태그:#김상곤, #경기도교육위원회, #경기도교육감,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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