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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기밥 공주>
 <소나기밥 공주>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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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서러운 게 배고픔의 서러움이란다. 굶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서러움을 모른다고 한다. 난 아직 먹을 게 없어, 돈이 없어 못 먹는 설움을 겪어보지 못해 그 서러움의 정도를 파악할 순 없다. 특히 한참 먹어야 할 때 먹지 못하는 서러움을 겪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있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하나라는 아이도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생활했다. 부모 없이 사는 하나는 365일 아침을 굶었고, 저녁은 먹을 때와 안 먹을 때가 반반이었다. 그 아이가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먹는 밥은 학교 급식이었다. 그런데 그 급식도 돈이 없어 먹지 못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런 하나에게 회식이라는 명분으로 밥을 사주면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은정의 동화 <소나기밥 공주>를 읽는 내내 지금은 직장을 다니며 하루 세 끼 잘 먹고 있는 하나라는 아이가 줄곧 떠올랐다. 급식 시간마다 엄청 많이 그리고 무척 빨리 먹는다고 해서 '소나기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안 공주와 생활 모습과 하나는 닮은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둘은 가난하다. 밥을 해줄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성격을 쾌활하고 명랑하다.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기죽거나 위축됨이 없다. 동화 속의 안 공주에 비해 하나는 공부도 잘 했다. 글도 잘 썼다. 발표도 잘 해 학교 선생님들이 대부분 예뻐했다. 그래서 장학금 같은 게 나오면 하나를 생각했고 챙겨주기도 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공주는 초등학생이지만 하나는 고등학생이었다. 하나는 부모가 없지만 공주는 아버지가 있다. 공주는 아버지가 있지만 알콜 중독자다. 중독자인 아버진 무료 재활원에 들어가 치료 중이다. 해서 공주는 반지하방에서 혼자 생활한다. 공주를 돌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데 말이다. 그래도 공주는 밝다. 그리고 꿋꿋하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공주 같은 아이 우리 주변에 아직 많다

'소나기밥'이란 별명을 가진 안 공주는 급식시간마다 소나기밥을 먹는다. 많이 먹어둬야 나중에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공주를 친구들을 놀려대지만 공주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학교 급식만이 제대로 먹는 밥이 되기 때문에 공주는 항상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 두자.'라고 되뇐다. 친구들 눈치 때문에 먹지 못하면 공주는 쫄쫄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주가 사는 방은 여러 가구가 사는 연립주택의 반지하방이다. 한 칸짜리 방에서 공주는 아빠와 함께 살지만 아빠는 재활원에 간 지 오래다. 그것도 나중에야 공주는 알게 된다. 공주는 고아 아닌 고아처럼 혼자 밥 해먹고 청소하고 학교에 다니는 소녀 가장이다. 공주는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생활을 한다. 그 보조금으로 방세도 내고 전기세 수도세 등을 낸다. 일종의 기초수급자이다.

그러나 한참 먹을 나이의 공주는 늘 배가 고프다. 그 배고픔의 유혹 때문에 결국 공주는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하고 만다. 옆집 202호 사는 팽 여사의 물건을 중간에 가로채게 된다. 마트에서 배달시킨 식료품을 훔치게 된 것이다. 훔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지만 맛도 없고 불안하다. 먹어도 허기가 진다. 불안해하며 음식을 먹다가 결국은 급체해서 쓰러지게 되고 팽 여사에게 발견된다. 음식을 훔친 것도 발각되고.

삼일 굶어서 음식 훔치지 않을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굶주림에 의한 먹을 것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다. 공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공주뿐일까? 우리는 심심찮게 구멍가게나 동네 슈퍼에서 빵이나 우유 같은 것을 훔치다가 적발되었다는 보도를 접한다. 어떤 경우엔 갓난아기에게 먹일 분유가 없어 분유를 훔치다 처벌받는 아픈 모정의 소식도 접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엔 먹을 것 때문에, 가난 때문에 남의 물건을 훔치곤 하는데 사람들은 그때마다 그 사람의 잘못으로만 돌리고 만다. 그렇지만은 않은데 말이다.

그래도 함께 걸어가는 세상을 바라본다

<소나기밥 공주>에는 몇 명의 어른이 등장한다. 연립주택의 주인인 아저씨, 같은 주택에 세들어 사는 202호 팽 여사 아주머니 그리고 동네에서 '해님 마트'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이들은 모두 일상적인 어른들의 모습이다. 남에 대한 배려보단 자기잇속을 먼저 생각한다. 주택 주인 아저씨 같은 경우엔 희화화되기도 한다. 이들은 공주가 물건을 훔친 걸 알았을 때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러나 외면하진 않는다.

팽 여사는 죄송하다고 말하는 공주에게 밥이나 먹자며 손을 내민다. 마트 사장은 공주에게 마트 훔친 물건 대신 마트 전단지를 손님들에게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한다.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에 사장은 몇 가지 생활용품과 야채를 들려 보낸다. 작가는 공주의 잘못을 법이나 무조건적인 동정 대신에 함께 하는 모습으로 이야길 마친다. 이는 함께 기찻길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아가는 어른과 아이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함께 함의 세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이다.

<소나기밥 공주>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다. 다만 작가는 참담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아이, 공주의 모습을 담으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아사 지경에 빠진다는 보도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우리가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굶는 아이들을 쉽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에 겨우 한 끼나 두 끼로 하루를 때우는 아이들은 의외로 많다. 공주와 같은 아이들 말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동화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작은 희망과 따스함을 마음속에 느끼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소나기밥 공주> 이은정 씀 / 정문주 그림 / 8,500



소나기밥 공주

이은정 지음, 정문주 그림, 창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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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밥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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