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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컨셉트? 콘셉트? 컨셉? 콘셉?

영어는 영어입니다. 한자말은 한자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말은 우리 말입니다. 저마다 다른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마다 다른 말임을 헤아리는 한국사람은 썩 많지 않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넓게 헤아리지 않으며, 고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날이 더 많이 쓰고 있는 영어 가운데 '컨셉'이 있습니다. 저를 취재한다며 찾아온 기자 분들마다 으레 "어떤 컨셉으로 …… 이런 컨셉으로 …… 이번 책은 어떤 컨셉으로 쓴 ……" 하고 이야기를 하시기에 귀가 따갑던 어느 날, 영어사전에서 '컨셉'을 찾아보았습니다.

 [concept] a general idea or principle
  - It is difficult to grasp the concept of infinite space

어쩌면 국어사전에도 '컨셉'이 실려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국어사전을 함께 찾아봅니다.

 ┌ 컨셉 = 콘셉트
 └ 콘셉트(concept) : 어떤 작품이나 제품, 공연, 행사 따위에서 드러내려고 하는 주된 생각
      - 이번 공연의 콘셉트는 자유이다

국어사전에 실어 놓은 '컨셉'은 '바르게 적는 꼴'이 아니라며 '콘셉트'로 고쳐쓰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콘셉'이든 '컨셉'이든 '콘셉트'이든 '컨셉트'이든, 저마다 되는 대로 이야기합니다. 뒤죽박죽으로 뇌까리는데, 엉터리로 대충대충 읊는 모습을 살피노라면, 마구잡이로 지껄인다고 해야 옳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 홈페이지 콘셉을 뭘로 정하죠? / 처음 찍는 우리 가족 콘셉사진
 ├ 환경애니메이션의 스토리텔링과 컨셉디자인 / 영화 속 여 주인공 컨셉으로 촬영
 ├ 고슴도치의 콘셉트를 이용하라 / 콘셉트별 4色 청첩장
 └ 여성들을 위한 컨셉트 노트북 / 섹시한 여름 컨셉트를 훌륭하게 소화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콘셉-컨셉-콘셉트-컨셉트' 같은 영어를 끌어들여 온갖 곳에 이 낱말을 집어넣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나누고픈 생각은 무엇이며, 우리가 펼치고픈 마음은 무엇이고, 우리가 알리고픈 뜻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콘셉이든 컨셉이든 콘셉트이든 컨셉트이든, 우리 스스로 읊는 이 낱말들이 무엇을 뜻하거나 가리키는지를 어느 만큼 알면서 읊는지를 생각해 보기나 하는지 궁금합니다. 말하는 분이나 듣는 분이나, 서로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지를 제대로 깨닫고 있는지 궁금힙니다.

 ┌ 홈페이지 주제를 뭘로 잡죠? 처음 찍는 우리 식구 주제 사진
 ├ 환경만화영화 이야기틀과 알맹이 짜기 / 영화에 나오는 여 주인공처럼 찍기
 ├ 고슴도치 얼개를 써라 / 꾸밈새에 따라 네 가지로 다른 청첩장
 └ 여성들이 쓰기 좋은 색깔 있는 노트북 / 이성을 사로잡는 여름 이야기를 훌륭하게 담음

옷을 입을 때에 따지는 컨셉이라면, '입성'이나 '차림새'나 '매무새'나 '꾸밈새'를 가리킨다고 느낍니다. 밥상을 차릴 때에 말하는 콘셉이라면, '찬거리'나 '먹을거리'쯤을 다루려 한다고 느낍니다. 집살림을 꾸밀 때에 이야기하는 콘셉트라면, '꾸밈새'를 가리킬 테지요.

때에 따라서는 '얼개-얼거리-틀거리-틀-짜임새'를 이야기한다 할 수 있고, 곳에 따라서는 '모습-모양-모양새'를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흐름에서는 '생각-느낌-이야기틀-줄거리'를 가리킬 테고, 어느 자리에서는 '쪽-길-곳'을 가리킵니다.

어쩌면, 이런저런 모든 느낌을 아우르거나 모둔다고 하는 '콘셉-컨셉-콘셉트-컨셉트'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또렷하게 이거다 하고 말하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가리키기에 걸맞다고 느끼는 영어이니, 굳이 풀어내어 쓸 까닭이 없다고 여길는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골아프게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지 말며, 남들 다 하는 대로 콘셉을 말하든 컨셉을 말하든 콘셉트를 말하든 컨셉트를 말하든 할 노릇인 우리네 삶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ㄴ. 어떤 콘셉트로 진행할 것인지

.. 평소에도 토론하기 전 멤버들끼리 다음 토론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번 토론은 어떤 콘셉트로 진행할 것인지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  《조원진,김양우-노란잠수함, 책의 바다에 빠지다》(삼인,2009) 98쪽

'평소(平素)에도'는 '여느 때에도'나 '다른 때에도'로 다듬고, "토론(討論)하기 전(前)"은 "얘기하기 앞서"나 "얘기를 하기 앞서"로 다듬습니다. '멤버(member)들끼리'는 '친구들끼리'나 '동무들끼리'나 '서로서로'로 손보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어떻게 할는지"나 "어떻게 할 생각일는지"로 손보며, "진행(進行)할 것인지 등(等)에 대(對)해"는 "이끌려는지 들을"이나 "이끌 생각인지 들을"로 손봅니다. '자유(自由)롭게'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홀가분하게'나 '마음대로'나 '마음껏'으로 손질하면 한결 낫습니다.

 ┌ 어떤 콘셉트로 진행할 것인지
 │
 │→ 어떤 줄거리로 이끌려 하는지
 │→ 어떤 생각으로 이끌려 하는지
 │→ 어떤 생각줄기로 이끌려 하는지
 │→ 어떤 짜임새로 이끌 생각인지
 │→ 어떤 틀로 이끌 생각인지
 └ …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터져나오는 말마디에 '우리 말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낱말이나 말투는 거의 안 보입니다. 토씨만 우리 말이요, 낱말이나 말투는 온통 바깥말이거나 짬뽕말 같다는 느낌입니다. 지난날 이 나라 지식인들이 쓰던 글에는 온통 한문으로 적은 글에 토씨만 한글이었는데, 오늘날은 지식인뿐 아니라 여느 중고등학생도, 또 대학생도 마찬가지로 토씨만 한글인 글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 어떻게 할 것인지 (o)
 └ 어떤 콘셉트로 진행할 것인지 (x)

보기글을 가만히 살피면 '토론'을 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고도 말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둘은 같은 소리입니다. '이야기 나눔'을 한자로 옮긴 낱말이 다름아닌 '토론'이거든요. 그리고 "어떻게 할"처럼 말하는 가운데 "어떻게 진행할"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둘 또한 같은 소리입니다. 으레 '진행'이라고 넣어야 느낌이나 뜻이 한결 산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예부터 '진행'이라는 낱말을 따로 안 넣고 '하다'라는 낱말 하나로 우리 느낌과 뜻을 넉넉히 담아 왔습다.

더구나 "어떻게 할 것인지"라고 적은 글매무새를 살핀다면, "어떤 콘셉트로 진행할 것인지" 같은 대목을 '어떻게' 풀어내야 알맞는가를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제 말을 제대로 못 깨달으니 이와 같이 글을 썼다 할 텐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도 마찬가지요, 아이들 또한 스스로 옳고 알맞고 바르고 싱그럽게 말하거나 글쓰려는 매무새를 키우지 못합니다. 가르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합니다. 나누어 주지 못하고 얻지 못합니다.

다람쥐 쳇바퀴조차 아닙니다. 고인 물마저 아닙니다. 그예 뒷걸음질입니다. 그저 낭떠러지 데굴데굴입니다. 세월에 따라 한결 짙푸르게 새잎을 틔우고 튼튼히 뿌리를 내리는 삶이거나 말이거나 슬기이거나 생각이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흔들리고 무너지고 어수선해지기만 하는 말이거나 깜냥이거나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알차게 가꾸려는 매무새를 잃는 가운데, 우리 생각을 우리 말로 알맞춤하게 담아내는 매무새까지 끝없이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영어#외국어#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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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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