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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쑨리췬 외 4명의 〈천고의 명의들〉
책겉그림쑨리췬 외 4명의 〈천고의 명의들〉 ⓒ 옥당

가끔 옛 사극을 보면 실 하나로 환자의 병을 진단하여 처방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남녀가 유별하고 반상이 구별되던 때였다. 아무리 뛰어난 명의라 할지라도 궁중 왕후의 맥은 함부로 잡질 못했다. 그러니 커튼 하나를 내린 채 실 하나로 진맥을 해야 했다. 과연 그때 그 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을까?

 

쑨리췬 외 4명의 <천고의 명의들>(류방승 옮김)은 그 궁금증을 쉽사리 풀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책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의(名醫) 5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실 한 가닥으로 사람의 맥을 짚어낸 '손사막' 편을 읽어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사실은 궁에 들어가 먼저 태감(내관)들에게 이 공주나 후궁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 또 무슨 증상이 있는지 물어본다네. 질문이 끝나면 치료는 끝난 셈이지. 하지만 맥을 짚을 때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어야 해. 사실 머릿속으로는 처방을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야. 처방이 나왔다 싶으면 '아, 알아냈습니다'라고 말하고 약을 지어주는 것이네."(198쪽)

 

이 말을 들으니 실 하나로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명의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다만 진정한 명의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손을 잡거나 아니면 실을 잡고 진맥을 하기 전, 증상에 관해 듣는 것만으로도 병의 근원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 참 명의다. 당나라 경조 화원 사람 '손사막'이 바로 그런 명의였던 것이다.

 

한편, 감기에 걸린 사람이 약을 먹지 않고도 낫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7일이 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게 그것이다. 그 경과가 길어지면 7의 배수인 14일이나 21일 만에 낫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른바 그것이 '7일 절률'의 법칙으로서, 인체의 주기가 대자연의 주기와 같다는, 1천 8백여 년 전 동한 시대의 명의 '장중경'이 창안한 이론이다.

 

"감기, 두통, 발열, 오한, 경미한 기침이나 천식 같은 일반적인 외감병은 치료를 하지 않아도 합병증만 생기지 않으면 7일이 지나면 저절로 좋아진다. 그 이유는 이 병의 자연 경과가 끝나기 때문이다. 이런 병은 7일째 되는 날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쉽게 낫는다."(124쪽)

 

그런데 왜 하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사이일까? 그 시간대가 바로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 때요, 그에 따라 열도 차차 사라지기에 유리한 시간대이기 때문이란다. 오늘날에도 그 이론에 따라 자연적으로 치유되기를 기다리는 의원이 있을까? 설령 의원은 한 둘 있다손 치더라도 환자들이 더 아우성이지 않을까? 나부터라도 내 아이들이 감기나 두통에 걸리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즉시 병원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약을 쓰지 않고 병을 고친 신의(神醫) '화타'도 등장한다. 보통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을 살려내거나,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을 살려내는 명의에게 '화타재세(華佗再世)'라고 칭송한다고 한다. 그 같은 이유는 중국 고대의 수많은 명의들 가운데, 패국 초현 사람 '화타'만큼 신적인 의술을 펼친 인물도 드문 까닭이다.

 

어떻게 화타는 약을 쓰지 않고도 병을 고쳤을까? 사실은 정지요법 때문이라고 한다. <삼국지>화타전에도 그와 같은 기록이 있다는데, 병이 난 한 군수가 화타에게 진료를 청하자, 그는 군수의 안색을 살피고서는 크게 화를 내야만 치료되는 병임을 알았다고 한다.

 

그는 군수에게 고액의 치료비를 연달아 요구하였고, 돈을 받은 즉시 줄행랑을 쳤는데, 떠나기 전에는 편지 한 통까지 써서 그를 실컷 욕했다고 한다. 급기야 그를 죽이라며 분노를 참다못한 군수는 이제 막 검은 피를 쏟더니만 그만 그 병에서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같은 만성 두통을 앓고 있는 조조가 동향 사람인 화타를 불러들여 진료를 맡기는데, 화타는 조조에게 마취를 먼저 한 후에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가른 다음에서야 그 병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만큼 화타는 그 시절에 이미 마취제를 통해 복강시술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결국 그는 의심 많은 조조에 의해 감옥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모두 가공미가 곁들여지기 마련이다. 허준과 같은 명의도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실 하나로 왕후의 진맥을 잡았다던 '손사막'도, 그리고 약을 쓰지 않고 치료하거나 아니면 마취제를 사용하여 복강시술을 했다고 전하는 '화타'도 결코 예외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의로 전해지는지, 겸손히 경청해 볼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들 최고의 명의 5인은 단순히 의술만 뛰어났던 게 아니라 의덕(醫德)도 더없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병을 살피고 진단하는 데 지극 정성을 다 하였으며,  귀천을 따지지 않고 차별 없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며, 더럽고 냄새나는 것도 피하지 않았던 그들의 진솔한 면이 이 책에 녹아내리고 있다.


천고의 명의들 - 중국 역사 최고의 명의 5인의 세상을 살린 놀라운 의술 이야기

쑨리췬 외 지음, 류방승 옮김, 옥당(북커스베르겐)(2009)


#천고의 명의들#화타재세#손사막#장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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