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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긴 양말의 삐삐

 

.. 또 그 정원에는 오래된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에는 긴 양말의 삐삐가 살고 있었다 ..  <말괄량이 삐삐>(아스트리드 린그렌/김인호 옮김, 종로서적, 1982) 3쪽

 

 '정원(庭園)'은 '뜰'이나 '앞뜰'이나 '안뜰'이나 '꽃밭'으로 손질합니다.

 

 ┌ 긴 양말의 삐삐가

 │

 │→ 긴 양말 삐삐가

 │→ 긴 양말을 신은 삐삐가

 │→ 긴 양말이 도드라지는 삐삐가

 └ …

 

 어린이책에 나오는 '삐삐' 이름은 '삐삐로라 빅투아리아 룰가르디나 크루스민타 에프라임스도테르 긴 양말'이라고 합니다. 옮긴이에 따라서는 끝 이름을 '롱 스타킹'이라고도 하는데, 삐삐가 스웨덴사람임을 헤아린다면 영어로 '롱 스타킹'이 아닌 스웨덴말로 달리 적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꼭 영어로 '롱 스타킹'으로 적어야만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북미 토박이 이름을 부르며 '레드 크라우드'보다는 '붉은 구름'이라고 말하듯, 삐삐 이름도 '삐삐 긴 양말'이라 해도 잘 어울린다고 느껴요.

 

 그런데 이 보기글에서는 삐삐 이름을 가리키려 하는지, 아니면 삐삐가 신은 긴 양말을 가리키려 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름을 가리키려 했다면 "긴 양말 삐삐가"처럼 적어야 올바르고, 긴 양말을 신은 삐삐를 가리키려 했다면 "긴 양말을 신은 삐삐"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우리 말로 옮겨진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어느 쪽이 맞는가 헤아릴 길이 없으니, 이런 글은 옮긴이가 처음부터 제대로 헤아리고 살피고 눈여겨보면서 가다듬어 주어야 합니다. 옮긴이 한 사람이 좀더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한 번 어긋난 말투 때문에 이러한 책을 읽는 숱한 사람한테 얄딱구리한 말투를 퍼뜨리고 맙니다.

 

ㄴ. 책의 선택

 

.. 듣는 것만큼의 적극성이 없는 대신에 책의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 <대학인, 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와이 에이지로/이은미 옮김, 유원, 2003) 14쪽

 

 "듣는 것만큼의 적극성(積極性)이 없는 대신(代身)에"는 "듣는 것만큼 적극성이 없지만"이나 "듣기만큼 스스로 힘써 나서지는 않지만"이나 "들을 때만큼 몸소 나서서 하지 않지만"으로 다듬고, '선택(選擇)'은 '고르기'로 다듬어 줍니다.

 

 ┌ 책의 선택을 자유롭게 한다

 │

 │→ 책을 자유롭게 고른다

 │→ 책을 마음껏 고른다

 │→ 책을 저 마음대로 고른다

 │→ 책을 보고 싶은 대로 고른다

 └ …

 

 '책의 선택'처럼 '사랑의 선택'도 말하고, '일의 선택'도 말하며, '글감의 선택'도 말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책 고르기'나 '사랑 고르기'나 '일 고르기'나 '글감 고르기'처럼 말하면 한결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뒤따르는 말과 묶어 "책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고"라 말하고, "사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라 말하며, "일을 자유로이 고를 수 있고"라 말하는 가운데, "글감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고"라 말하면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 듣기만큼 애써 나서지는 않으나, 책을 마음껏 골라 읽을 수 있고

 ├ 들을 때만큼 힘껏 나서지는 않으나, 보고픈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 …

 

 자유롭게 생각하면서 자유로움을 말과 글에 담습니다. 자유롭게 꿈을 꾸면서 자유로운 뜻과 넋을 말과 글에 싣습니다. 자유롭게 마음을 쓰면서 자유로운 사랑과 믿음을 말과 글에 펼쳐 보입니다. 차근차근, 꾸준히, 곰곰이.

 

ㄷ. 사람의 좋은 곳

 

.. "미, 미치코,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간이란다." "면접이잖아요. 사람의 좋은 곳을 찾아내는 일이요!" .. <좋은 사람 (13)>(다카하시 신/박연 옮김, 세주문화, 1998) 136쪽

 

 "중요(重要)한 시간(時間)"은 "중요한 때"로 다듬습니다. '면접(面接)'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얼굴보기'로 손보아도 됩니다.

 

 ┌ 사람의 좋은 곳을

 │

 │→ 사람마다 좋은 곳을

 │→ 그 사람한테 있는 좋은 곳을

 │→ 그 사람한테 숨겨진 좋은 곳을

 │→ 그 사람한테서 좋은 곳을

 └ …

 

 우리 말로 옮겨진 보기글은 처음에 "人間の張點"쯤으로 적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장점'을 '좋은 곳'으로 풀이한 듯한데, 이렇게 알뜰히 풀이하려는 마음씀을 '사람 + 의'가 아닌 한결 알맞는 말투를 찾는 데에까지 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 사람마다 어디가 좋은지를 찾아내는 일

 ├ 사람마다 무엇이 좋은지를 찾아내는 일

 ├ 사람마다 어떤 일을 잘하는지 찾아내는 일

 ├ 사람마다 무엇을 잘하는지 찾아내는 일

 └ …

 

 '장점'이란 '좋은 곳'으로 풀어낼 수 있는 가운데, 이 자리에서는 "어느 한 사람한테서 좋은 모습", 곧 "어느 한 사람이 잘하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풀어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을 뽑으려고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이기에, "어떤 일을 잘하는지"나 "어떤 일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지"나 "어떤 재주가 있는지"로 풀어내 보아도 어울립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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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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