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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살 일이 있어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듣던 대로 전자제품에는 문외한인 나는 '용팔이'들의 표적이었다. 몇 군데 둘러보다보니 어느새 그들에게 '딸 같은 손님', '연예인 닮은 외모', '23살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동안'이라는 존재가 돼 있었다.

그 남자의 유혹... 넘어갈 뻔

다행히 그 정도 감언이설로 몇 십만 원짜리 카메라를 덜컥 살만큼 순진하진 않았으나, 사람 좋아 보이는 한 판매원의 유혹은 지금 생각해도 절묘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의 인사는 "분향소 다녀왔어요?"였다. 마침 전 날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마련해 둔 분향소에 다녀온 터라 반갑게 답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용산 판매원: "새벽에 다녀왔더니 엄청 피곤하네요."
나: "아 그러셨어요? 덕수궁 앞에 사람 많았을 텐데..."
용산 판매원: "전 당연히 봉하마을로 다녀왔죠."

순간, 나는 '용팔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모두 사라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 그 남자가 추천하는 카메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당장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저녁에 다시 사러오겠다고 약속하고, "봉하마을까지 다녀오느라 피곤할텐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뭐 불쌍하잖아요"라며 저녁에 다시 오기를 거듭 당부했다.

집에 오는 길, "불쌍하다"는 말과 정말 불쌍한 사람에게 선심 쓰는 듯했던 그의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마음이 불편했다. 분향소를 찾는 수많은 국민들은 단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쌍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나. 혹은 힘들어서 자살한 한 인간에 대한 동정심뿐이었나.

다른 경로를 통해, 추천받은 카메라는 현재 아무도 찾지 않는 구형모델이라는 사실을 알고 저녁에 그 곳을 다시 찾지 않았다.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의 눈물, 그 의미는 무엇인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6일 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TV나 신문을 통해 분향소의 모습을 보고 있다.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의 얼굴을 볼 때면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몇 시간이나 기다려 향을 피우는 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동시에 "불쌍해서 갔다"는 용산 판매원의 말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찌 그 한 사람뿐이랴. 어쩌면 분향소 다녀왔다고 굉장한 애국자나 된 듯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힘들어서 자살한 '불쌍한' 사람에게 인간적인 마음으로 동정의 눈물을 흘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힘들게 인생을 마무리 한 사람에 대한 애도를 욕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장이 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이 단순히 '동정'에만 머무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이명박식 정책이 얼마나 서민의 숨통을 조이는지 깨달은 뒤에야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고인이 된 후에야 그 가치를 인정하는 우리의 모습은 분명 부끄럽다.

국민들의 눈물은 노 전 대통령의 진보적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고인의 대통령 재임 시절 그토록 비난했던 자신들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되길 바란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가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공권력에 대한 분노의 눈물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희생이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길이리라.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노무현#분향소#봉하마을#용산전자상가#용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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