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숙은 감추어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문간에 걸었다. 석 달 동안 인공기가 펄럭이던 그 깃대에 이제는 태극기가 꽂힌 것이었다. 왠지 비감하기도 했지만 인민군 유격대가 갑자기 내려와 태극기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했다.

저녁 때 누군가 대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총을 든 국군이 와 서 있었다. 군인은 인조견으로 된 낡아빠진 태극기를 가지고 와서 김성식의 좋은 국기와 바꿔 달라고 했다.

"이봐요, 우리도 좋은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할 줄 아는 사람이오. 마음이 당신네와 다를 바가 없단 말이오. 그런데 어찌 이런 무리한 청을 한단 말이오?"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김성식은 순순히 태극기를 내주었다. 군인에게는 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학교 가기 전 밭을 한 번 둘러보기 위해 나갔다가 군인의 불심검문을 받았다. 그런데 신분증이 없었다. 다행히 집이 가까워 신분증을 가져다 보여주었다. 군인은 신분증이란 언제나 소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훈계했다. 그가 무심한 표정으로 듣자, 군인은 자기 말을 따라 하라고 했다.

"신분증은 언제나 소지한다."

군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그는 할 수 없이 따라 했다.

"신분증은 언제나 소지한다."
"열 번 복창, 시 - 작!"

그는 총을 든 데다 술까지 마신 군인의 요구를 안 들어 줄 수가 없었다.

"1차 숙청자만 진정한 애국자요"

학교에 간 그는 교수회의에 참석했다. 이병도가 의장으로 앉아서 그간의 경과를 설명했다.

"문교부 방침으로 교원 전원이 새로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학교에도 심사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되도록이면 광범위하게 심사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국문학 교수 조윤제가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발언에 날을 세웠다.

"위원회 구성이 과연 중지(衆智)를 반영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번 심사야말로 가혹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인공의 1차 심사에서 반동으로 숙청되었습니다. 이는 그 뒤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1차 숙청자만이 진정한 애국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에 그렇지 못한 사람까지 섞여 있습니다. 이것은 시정되어야 합니다."

이어서 김선기 교수가 일어났다.

"인공시대에 몸을 더럽힌 사람들이 심사위원에 끼어 있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들이 나처럼 깨끗한 사람을 어찌 심사한단 말입니까? 죄인이 양민을 재판할 수는 없는 거지요."

김선기는 큰 눈망울을 껌벅껌벅하며 자기주장을 거듭거듭 되풀이했다. 듣다 못한 교수들이, "아,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라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좀처럼 양해하려 들지 않았다.

신도성 교수가 참다못하여 일어났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우고 있지만, 지금은 계엄령의 상황이니 중지를 모아 일이 처리되기가 어려울 것이오. 일단 정해진 일에 협조해야지 이 마당에 분란을 일으키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오. 나도 1차 숙청자이긴 하지만, 2차 이후의 숙청자를 탓할 밑굽이 없어요. 여기서 1차, 2차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난센스요.  그것은 '오십보백보'를 따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조윤제 교수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신 교수의 발언이야말로 옥석을 구분 못하고 타인을 비난하는 파당적 발언이오."

그러자 김선기 교수가 또 일어났다.

"나같이 깨끗한 애국자는 몸을 더럽힌 자들의 심사를 결코 받을 수 없소."

이번에는 김선기와 이름이 비슷한 김상기 교수가 일어나 말했다.

"부적당한 심사위원이 있으면, 추상적인 언사로 회의 진행을 방해하지 말고,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서 탄핵해야 할 것이오. 김선기 교수, 이를테면 누가 부적당한 심사위원이란 것인지 말해 보시오."

김선기는 주춤거리며 일어나더니, "꼭 짚어 누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섞여 있으면 큰일이라는 게지요" 라며 말끝을 흐렸다.

교수들의 행태는 말 그대로 이전투구(泥田鬪狗)였다. 그 날 김성식은 일기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 문리대여, 너는 그러고도 대학의 대학이라고 자랑하느냐?

수난 받는 한글 전용

다음 날 호구 조사를 한다며 반장이 반원 명부를 가지고 와 적으라고 했다. 반장은 조금 힘을 넣은 어조로, "한자로 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성식은 반장의 태도에서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인민공화국에 대한 반동적 징후가 도처에서 나타나리라고 걱정했는데,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는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반장이 한자로 써야 한다고 힘을 넣는 이면에는 아주 단순한 논리가 개재해 있었다. 그것은 인민공화국이 한글을 전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징후들은 거리의 벽보에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한글은 사라지고 한자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벽보란 한 사람이라도 더 보라고 붙이는 것이라면, 누구나 알기 쉬운 한글로 쓰는 것이 마땅할 터였다. 그러나 모든 벽보가 한자 일색이었다. 김성식은 아리랑고개를 걸어 넘어가다 나붙은 벽보들을 유심히 읽어 보았다.

不共戴天之怨讐 金一成 (불공대천지원수 김일성)
北進統一 火急達成 (북진통일 화급달성)
進擊擊滅 傀儡徒黨 (진격격멸 괴뢰도당)

생경하기 짝이 없는 한문 구호가 나붙어 있었다. '定義(정의)는 必勝(필승)했다'는 무슨 의미인지? 더욱 우스운 것은 '愧首武丁師團擊滅部隊 弟7師團 弟8聯隊 入城萬歲 (괴수무정사단 격멸부대 제7사단 제8연대 입성만세)'였다. 괴수의 魁 자를 북괴의 傀로 쓴 것은 알 만하지만, 무정이란 뭘 뜻하는 것인가? 그것은 인민군 군단장 김무정을 가리키는 듯했다. 그러니까 북괴군 김무정 사단을 무찌른 국군 제7사단 제8연대가 서울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는 벽보라고 생각 들었다.

고갯마루에서 한 젊은이가 불심 검문을 받고 있었다. 한 손으로 총을 열어젖히듯이 든 군인이 학생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동무 집에 놀러 갔다 옵니다."
"동무라고? 이 놈 빨갱이 아냐?"

성인들은 친구란 말을 쓰지만 소년 연배에는 동무도 잘 어울리는 말이건만 이북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불온시하는 것이었다.

경찰서, 붉은 기와를 지적하다

김성식은 돈암동 쪽으로 발을 옮기며 며칠 전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 농업고등학교의 교사(校舍) 지붕이 붉은 기와로 되어 있었는데, 최근 경찰서의 지적을 받아 지붕을 새로 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정말 거짓말 같은 사실이었다.

어제 정숙에게서 들은 얘기도 생각났다. 아랫집에 사는 오씨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양식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한 순경이 다가와 짐을 날라 달라고 했다고 한다. 노인은 영문도 모른 채 순경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고 했다. 노인은 순경과 함께 어떤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에는 한 여인이 실성한 듯이 앉아 있었다.

순경이 여인에게 말했다.

"너희는 빨갱이니 모든 물건을 압수한다."

순경은 여인의 집에 있는 의복과 이불 등 살림살이를 모두 들어내 리어카에 싣게 했다. 그러고는 앞장 서 걸었다. 순경은 성북동의 자기 집으로 가서 짐을 부리게 했다. 일을 마치자 젊은 순경은 70노인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는커녕 반말로 명령했다고 했다.

"인제 끝났으니 가!"

덧붙이는 글 | 전 서울대 교수 겸 사학자 김성칠 선생의 일기 <역사 앞에서>를 참조한 부분입니다.



#문리대#동무#빨갱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