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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소품문학을 이끈 <이옥 전집 3>이다. 하층민과 여성, 저잣거리를 글에 담기를 좋아했던 이옥 답게 3권에 실린 <백운필>과 <연경>도 사람들 곁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담았다.

 

<백운필>에는 새 이야기, 물고기 이야기, 짐승 이야기, 벌레 이야기, 꽃 이야기, 곡식 이야기, 과일 이야기, 채소 이야기, 나무 이야기, 풀 이야기 따위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던 식물과 사물들 이야기를 담았다. 읽다가 보면 조선시대 백과사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경>은 '담배 경전'을 뜻한다. 담배 경전으로 책 이름을 지었을 만큼 담배 재배, 담배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왔고, 성질, 담배 도구와 쓰임새를 적었다.

 

<연경>을 읽으면 서울 저잣거리 담배 상점과 골초들이 어떻게 담배 가격을 흥정하는지, 담배 품귀 현상이 일어날 때 가짜 담배가 성행하는 모습까지 담아 19세기초 담배가 조선시대 어떤 자리를 차지했는지 알 수 있다.

 

이옥은 <백운필>를 집필하기 위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한자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 역관들의 주로 보던 만주어 한어사전 <한청문감(漢淸文鑑)>, <본초집해(本草集解)>, <술이기(述異記)> 비롯해 많은 의학서적들을 인용했다. 이쯤 되면 이옥의 독서량이 얼마나 방대했는지 알 수 있다. 책 한 권을 펴내는  위해 쏟았던 이옥의 열정과 집요함, 성실함은 부럽기도 하고, 얄팍한 지식나부랭이로 책을 펴내는 요즘 사람들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

 

새 이야기에는 꿩, 비둘기, 종다리, 뜸부기, 도요새 따위 새 종류 뿐만 아니라 새를 기르는 방법과 새로 점을 쳤던 조선시대를 풍습까지 담았다. 비둘기가 요즘 도심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지만 아직 우리 머리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다. 그럼 이옥은 비둘기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비둘기란 새는 이미 시각을 깨우쳐주지도 못하고, 제사상에도 오르지 못하는 것으로, 다만 그것이 서로 좋아 장난치는 모습이 극히 예쁘고 거리낌 없을 뿐이다. 못된 아이들과 방탄한 자들이 기르는 것도 오히려 부끄러운 일인데, 간혹 늙어 물러난 재상이나 부잣집 젊은이들이 울을 울긋불긋하게 만들어 놓고 뜰에서 기르기도 한다. 문득 주인의 품위가 열 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는 후생들이 경계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66쪽)

 

비둘기가 사람들을 품위를 열 발 아래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이옥을 설명하고 있다. 후생들에게 이를 경계하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비둘기를 아직도 '평화'를 상징하는 새로 생각한다. 새에 대한 생각도 시대마다 다른 것 같다.

 

이옥이 살았던 시대 새집 점이 유행했던 모양이다. 새집 점을 보니 까치는 남쪽에 있으면 상서롭고 북쪽에 있으면 해로운 일이 있으며, 제비집이 기둥 안에 있으면 식구가 불어나고, 기둥 밖에 있으면 노복들이 흩어져 도망간다는 점괘가 있다고 믿었다. 새집 점이 유행했지만 이옥은 믿을 수 없다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모기와 벼룩, 등에 따위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듯이 벌레들은 사람에게 정다운 존재가 아니다. 이옥은 사람과 친숙해질 수 없는 벌레를 사람과 비교하는 재미있는 글쓰기를 했다. 벌레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가난한 집에는 빚을 독촉하는 사람이 있고, 부잣집에는 구걸하는 사람이 있으며, 귀한 집에는 쫓아와 달라붙는 사람이 있다. 기쁜즉 벼룩이나 이가 사람의 피를 빨아들이는 것 같고, 성난즉 모기가 사람의 살갗을 깨무는 것과 같아 내가 살펴보건대, 사람으로 하여금 잠시라도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없게 한다."(170쪽)

 

그리고 그는 이 세 무리 사람이 없으니 눈을 감고 잠을 푹 자면 벌레가 괴롭히지 않아 좋다고 했다. 이옥 다운 삶이다. 과연 나에게는 괴롭히는 벌레가 누구일까? <백운필>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양한 것들을 만나게 한다.

 

이옥은 담배가 들어온 지 2백 년이 되었는데도 문자로 기록한 것이 있어야 할 터인데, 편찬하고 수집한 자들이 이를 기록하였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안타깝게 생각하여 <연경> 곧 '담배경전'을 썼다고 말한다.

 

요즘은 담배가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금연 운동과 함께 담배를 끊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피웠던 모양이다. '담배 피울 때에 꼴불견'이라는 내용을 보자.

 

아이 녀석이 한 길되는 담뱃대를 물고 서서 담배를 피우가다 이따금 이 사이를 침을 뱉는다면서 이는 가증스러운 일이다. 규방의 치정한 부인이 낭군을 대하고 앉아 태연하게 담배를 피운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 어린 계집종이 부뚜막에 걸터앉아 안개를 뿜어내듯 담매를 피운다. 통탄할 일이다.(443쪽)

 

남녀, 노소, 귀천을 불문하고 모든 이들에 담배 삼매경에 빠졌던 19세기 조선이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조선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요즘도 담배를 이렇게 피우는 사람들이 얼마 없지 않은가.

 

<백운필>과 <연경>은 보잘것없는 사물이라도 기록할 가치가 있으면 책을 담는 충분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까지도 내용으로 삼아 책으로 펴낸 이옥의 치열한 글쓰기 정신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옥 전집 -03  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이옥 지음 ㅣ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편역 | 휴머니스트 펴냄 ㅣ 27,000원


완역 이옥전집 3 : 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휴머니스트(2009)


#이옥#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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