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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물을 찢어버린 어부>
<그물을 찢어버린 어부> ⓒ 휴머니스트
18세기 소품 문학을 풍부하게 일군 문인 이옥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하층 여성, 천한 노비, 도적, 저잣거리의 다양한 인물군상들로 생생한 저잣거리 이야기를 글로 담았다.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가 펴낸 <이옥 전집 02- 그물을 찢어버린 어부>에는 가마 탄 도둑, 집단을 이루어 엽전을 주조하는 도적, 한 자리에 아홉 지아비의 무덤을 쓴 과부 이야기 따위는 조선시대 성리학 사유로 글을 썼던 선비들과 다른 문학 세계를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이옥이 경남 합천 봉성(현 삼가면) 유배 때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봉성문여>에는 재미있고 살아있는 글들 25편이 실려있다. 눈길을 끈 글은 하얀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영남 사람들을 모습을 생소하다는 글이다. 우리는 배우기를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불렀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푸른색을 숭상하여 백성들이 대부분 푸른 옷을 입는다. 남자는 겹옷과 장삼이 아니면 일찍이 이유 없이 흰옷을 입지 않았고, 여자는 치마를 소중히 여기는데, 더욱 흰색을 꺼려 붉은색과 남색 이외에 모두 푸른 치마를 들렀으며, 상의는 한 가지 색깔이 아니지만 삼년복을 입지 않으면 또한 일찍이 이유 없이 흰옷을 입지 않았다."(51쪽)

그런데 유독 영남만 남녀가 모든 흰옷을 입은 모습을 보았으며 특히 젊은 아낙들이 하얀색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청상과부로 의심했다고 했다. 더 이상한 것은 기녀와 무녀(巫女)만이 푸른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는 글을 우리가 배웠던 것과 달라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또 여자 이름은 '심(心)'자로 짓는데, 이를 매우 희한하게 여겼다고 말한다. 이유는 당시 우리나라 여자들 이름을 금매(琴梅), 단월(丹月)의 유(類) 자로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99쪽에는 경상도 방언들을 많이 기록했는데 요즘에는 많이 쓰지 않는 말이라 경상도 사람이 읽기도에 생소했다.

아버지를 '아배씨' 어머니를 '어매씨', 할머니를 '할매씨'로 불렀는데, 요즘은 '아부지' '어머이' '할매'로 부른다. 벼를 '나락'으로 부르는 정도가 지금도 쓰는 사투리였다. 사투리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는 모양이다.

'심생의 사랑 이야기,' '정운창과 성 진사,' '소송을 좋아하는 풍속,' '류광억의 이야기,' '저자의 도둑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물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그려질 뿐 아니라 조선 후기 향촌 사회를 지금 눈 앞에서 보는듯 하다. 소송을 좋아하는 풍속 이야기를 보자.

삼백전 짜리 송아지를 두고 세 사람이 동헌에 소송을 했다. 원님이 "그대들은 이 고을 양반이 아닌가? 또한 노인인데, 송아지 한 마리가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세 사람씩이나 와서 이렇게 하는가 묻자 그들이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소송할 일은 반드시 해야지요"라고 했다.

또 돈 열두 푼 때문에 동원에서 육십리나 떨어진 마을에서 소송을 걸었다. 원님이 소송 경비가 열두 푼이 더 들 것인데 왜 소송을 했는지 묻자. 그가 말하기를 "비록 열두 꿰미를 쓸지라도 어찌 소송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소송을 좋아하는 풍속에 대한 이옥의 생각은?

"그들의 풍속이 매우 억세고 융통성이 없어, 무슨 다툴 일이 있기만 하면 꼭 소송을 하는 것이다."(155쪽)

요즘도 고소 고발이 많은데 소송하는 일도 민족성인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그의 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시대를 평하거나 사회의식을 드러낸 글이 드물지만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표현함으로써 읽는 이들이 판단하도록 한다.

이옥 글을 읽을 때 눈에 띄는 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투리를 그대로 쓴 것처럼 도둑들의 은어, 시정의 음담패설, 욕설 따위 모든 민중이 말과 글을 썼고, 사투리와 여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언(俚諺)>에서 읽을 수 있다. '이언'은 우리나라 민간에서 쓰는 속된 말 내지 속담을 일컫는다. 그는 조선 땅에 살면서 '조선의 이언'을 노래했던 것이다.

차라리 가난한 집 여종이 될지언정/ 이서(吏胥) 아내는 되지 마소.
순라 시작할 무렵 겨우 돌아왔다가 / 파루 치자 되돌아 나간다네.

차라리 이서의 아내 될지언정 / 군인 아내는 되지 마소.
일 년 삼 백 육십 일에 / 백 일은 빈 방으로 지샌다네.

차라리 군인의 아내 될지언정 / 역관 아내는 되지 마소.
상자 속 능라(綾羅) 옷 있다 해도 / 어찌 오랜 이별에 값하리오.

차라리 역관의 아내 될지언정 / 장사꾼 아내는 되지 마소.
반 년 만에 호남에서 돌아오더니 / 오늘 아침 또 관서로 떠난다네.

차라리 장사꾼의 아내 될지언정 / 난봉꾼 아내는 되지 마소.
밤마다 어딜 가는지 / 아침에 돌아와 또 술타령. ('비조' 440~441쪽)

그리고 마지막 엮은 <동상기>는 희곡으로 1791년(정조 15년) 왕명에 의하여 노총각 김희집과 노처녀 신씨의 혼인이 성사된 일을 듣고 사흘 만에 완성한 것으로 총 4절로 구성되었고 우리 문학사에 그 유례가 없는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육담과 음담패설이 혼재된 구어체 문장, 혼례품과 혼례절차, 신랑 다루기 따위를 기록하고 있어 전통 혼례 풍속을 알 수 있다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옥 전집 02-<그물을 찢어버린 어부> 이옥 지음 ㅣ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편역 | 휴머니스트 펴냄 ㅣ 30,000원



완역 이옥전집 2 : 그물을 찢어버린 어부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휴머니스트(2009)


#이옥#문여#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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