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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D 7장에 1만 원, 닌텐도 게임 판매.'

3일 방문한 용산 전자상가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모두 불법복제품을 일컫는 광고다. 사람들은 불법복제품을 찾으러 전자상가로 간다. 최신영화 DVD의 정가는 2만5천 원 정도지만, 불법복제품은 4장에 1만 원이다. 출시된 지 1년이 넘은 영화는 7장에 1만 원이었다.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의 게임을 저장할 수 있는 R4칩도 잘 팔렸다. 약 40종류의 게임이 불법 복제된 2기가(G) 칩은 3만5천 원, 80종류의 게임이 복제된 4기가 칩은 5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개당 약 3만원하는 정품 게임을 80개 정도 구입하려면, 240여만 원을 들여야 한다. 무려 '48배'다.

PC용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가게는 많지 않았다. 용산에서 컴퓨터 관련기기를 판매하는 김아무개씨는 "웹하드와 P2P(개인 간 파일공유)가 증가하면서 PC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가게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용산 전자상가의 주력 복제판매품이 PC용 소프트웨어에서 휴대용 게임기 소프트웨어와 DVD로 대체된 모습이다.

만연한 불법복제... "정품 사면 속는 기분"

 용산 전자상가에서는 불법복제품 파는 상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용산 전자상가에서는 불법복제품 파는 상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최재혁

소비자들이 불법복제 제품을 찾는 이유는 '싼 가격'이다. 일행 2명과 불법 복제된 R4칩을 사러 온 이아무개(23·남)씨는 "정품과 복제품의 가격 차이가 엄청나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품을 사면 속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은 저작권 가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제고를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이는 판매자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정품으로 여러 개를 만들 수 있으니, 다량의 복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매입 원가를 줄이고 이윤을 높이는 손쉬운 방법이다. 전자상가의 한 판매상은 "예전부터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복제품 판매로 인해 소비층이 굳어진 상태에서 정품만 가져다 놓고 판매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온라인 불법시장의 경로인 P2P와 웹하드 역시 음악이나 영화 등을 '공짜(또는 몇 백 원)'로 내려 받기 위해서이니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온라인에 불법파일을 올리는 '업로더'들은 어떨까? 작년 7월, 파일공유사이트에 영화파일을 대량으로 올리고, 이를 내려 받은 이용자들이 낸 사이버머니를 업체와 나눠가진 '헤비업로더(Heavy uploader, 상습적으로 불법저작물을 올리는 사람)' 남아무개(34·남)씨가 징역 10월에 벌금 500만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헤비업로더는 8개월 동안 1억여 원의 이익을 취했다. 지난 3월 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헤비업로더 39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 중 일부는 불법파일을 올린 대가로 웹하드 업체로부터 1000만~3000만 원을 받았다.

'지적 재산권' 바로잡으려면, 10대 잡아들여라?

이처럼 명확히 이윤을 목적으로 파일을 올리는 '꾼'도 있다. 하지만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법무법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람 중 상당수는 그렇지 않았다.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 당한 사람이 주축인 네이버 카페 '저작권 단속 관련 네티즌 대책 토론(회원 수 4만4043명)'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몇 회의 업로드로 고소를 당했는지, 업로드의 동기는 무엇인지, 불법이란 사실을 알았는지' 물었다. 54명에게 답장이 왔다. 54명 중 40명은 10대였고, 나머지는 20대였다.

답장을 조합해 본 결과, 평균 2회 정도의 업로드로 고소를 당했다. 인터넷 소설이나 음악을 블로그나 카페 등에 올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경우는 상업적 이익이 아닌, 단순히 함께 보고 듣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업로드를 한 곳이 상업적 공간이 아닌 개인 블로그나 카페인 점, 횟수가 많지 않은 점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대부분의 P2P와 웹하드는 업로드 시 포인트가 적립된다. 이 포인트를 사용해 자신도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2~3개의 영화파일을 웹하드에 올린 경우는 6건 있었다.

자신의 행위가 불법임을 인식하고 있었던 회원은 거의 없었다. 단 5명만이 불법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박아무개(남·19)씨는 "사이버머니를 내고 다운을 받으니 불법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다른 회원은 "P2P에서 (업로드를) 가능하게 해놔서 당연히 올려도 되는 줄 알았다"며 "주위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올리고 있어 (불법인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관련 산업계는 불법복제 및 다운로드로 인한 피해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저작권보호센터'는 2006년 한 해 동안 불법시장의 합법시장 침해 규모가 2조191억여 원인 것으로 조사했다. 이는 합법시장 규모의 44%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 중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이 1조 1498억여 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음악 4567억 원, 출판 4125억 원을 차지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최우선 과제로 저작권 확립을 꼽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적재산권은 올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강공은 부작용도 낳는다.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에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되어 경찰에 입건된 10대가 251명에서 2669명으로 무려 10.6배나 증가했다.

소송을 대신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법무법인들은 이러한 기류에 편승해 저작권법 고소를 마구 일삼고 있다. 10대들까지 고소하면서, '합의금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터넷 환경 개선과 저작권의 가치에 대한 교육과 홍보는 뒷전으로 미룬 채 10대들만 잡도리 하는 모양새다.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저작권법일부개정법률안'은 '불법 복제물을 올린 누리꾼의 인터넷 계정 정지, 해당 게시판 서비스 중지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저작권 위원회의 위원을 문화부 장관이 임명하는 점, 정지 및 폐쇄 명령권을 문화부 장관이 가진다는 점은 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도 남긴다.

"수용자 인식 바꾸기 위한 교육과 사회적 토론 필요"

저작권법은 불법복제 및 도용된 유체물을 단속하기 위해 태어났다. 소수의 창작자를 제외한 다수의 수용자들에게 저작권법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후 수용자들은 '저작권법'이 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차츰 경험하고 있다.

문화의 토대를 받쳐주는 저작권 보호는 중요하다. 하지만 '토끼걸음'으로 퍼진 인터넷과 달리, 저작권 가치에 대한 인식은 '거북이 걸음'인 상황에서 '단속과 규제' 일변도인 현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는 "저작권자의 권리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정보에 접근할 권리나, 문화생활에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할 문화적 권리와 저작권이 충돌하거나, 저작권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오병일 'IPLeft' 운영위원은 "저작권법이 문화산업 중심적인 정책으로만 향할 것이 아니라 저작권자의 권리와 수용자의 균형을 맞추는 관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불법복제#불법다운로드#저작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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