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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늦는 날의 연속

 

.. 그러나 생활은 남편보다 귀가가 늦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일하며 키우며》(백산서당,1992) 122쪽

 

 '생활(生活)'이라는 말을 아예 안 쓰자고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안 쓰기 어렵다고 해서 씀씀이를 줄이고 다른 말로 걸러내는 일 또한 아예 안 한다면 걱정입니다. 우리한테는 '살다'와 '삶'이라는 말이 있으니, 때와 곳을 잘 살펴서 그때마다 알맞게 걸러내 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귀가(歸家)가 늦는"은 "집에 늦게 들어오는"이나 "늦게 돌아오는"이나 "늦는"으로 다듬습니다.

 

 ┌ 연속(連續) : 끊이지 아니하고 죽 이어지거나 지속함

 │   - 연속 상영 / 연속 매진 / 전쟁은 결국 순간과 순간의 연속이다

 │

 ├ 귀가가 늦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 늦게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 늦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 늘 늦게 돌아오곤 했습니다

 │→ 늦게 돌아올 만큼 바빴습니다

 │→ 늦게 돌아올 만큼 일이 많았습니다

 │→ 늦게 돌아올 만큼 일에 치였습니다

 └ …

 

 운동경기를 하면서 으레 '연속 득점'을 이야기합니다. '연패'란 '연속 패배'이고, '연승'이란 '연속 승리'입니다. 한자말 '연속'은 이 보기글에 쓰이는 다른 한자말 '생활'과 마찬가지로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습니다. 이리하여 우리 입이나 귀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할 테고, 이와 같은 말씀씀이는 어찌할 수 없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연속'이란 무엇을 뜻하는 낱말일까요. '이어짐'을 뜻합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지속(持續)'이라는 낱말도 보이는데, '지속'은 '계속(繼續)'을 가리키고, '계속'이란 "끊이지 않음"을 가리킵니다. "끊이지 않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어짐'입니다. 그러니까, '연속'을 풀이한 국어사전은 "이어지거나 이어짐"으로 풀이한 꼴이라, 말풀이가 겹치기입니다.

 

 ┌ 연속 상영 → 잇달아 틂

 ├ 연속 매진 → 잇달아 동남 / 잇달아 다 팔림

 └ 순간과 순간의 연속이다 → 한때와 한때가 이어진다

 

 써야 할 자리라면 '생활'이든 '연속'이든 써야 합니다. 이 한자말을 넣을 때 한결 알맞다고 느낀다면 이 한자말을 넣을 노릇입니다. 그리고, 구태여 이 한자말을 넣지 않아도 된다고 느낀다면 안 넣으면 됩니다. 나아가, 이러한 한자말에 눌리거나 치이거나 밟힌 토박이말을 헤아리면서 하나둘 살려쓸 때 훨씬 좋다고 느낀다면, 우리 토박이말을 북돋울 노릇입니다.

 

 

ㄴ. 감탄의 연속

 

.. 이거, 오늘은 감탄의 연속이잖아 ..  《탄 카와이/김희정 옮김-라면 요리왕 (17)》(대원씨아이,2006) 173쪽

 

 '감탄(感歎)'은 '놀라움'으로 손질합니다. 그러나 이 한자말을 넣을 때 한결 낫다고 느낀다면 그대로 둘 노릇입니다. 다만, 그대로 두되, "감탄할 일이"나 "감탄스러운 일이"로 손질해 줍니다.

 

 ┌ 오늘은 감탄의 연속이잖아

 │

 │→ 오늘은 감탄할 일만 이어지잖아

 │→ 오늘은 놀랄 일이 이어지잖아

 │→ 오늘은 놀랄 일이 자꾸 생기잖아

 │→ 오늘은 놀라운 일이 끊이지 않잖아

 │→ 오늘은 자꾸 놀라게 되잖아

 └ …

 

 이 자리에서 '감탄'과 '연속'을 그대로 두고 싶다면, "이거, 오늘은 감탄할 일이 연속되잖아"나 "이거, 오늘은 감탄이 연속이잖아"처럼 다듬어 줍니다. 이렇게나마 글월을 추스를 수 있는 마음그릇이라면 더없이 반갑습니다. 그러나, 한자말은 한자말대로 쓰고 토씨 '-의'는 토씨 '-의'대로 붙이고 마는 우리들이곤 합니다.

 

 ┌ 오늘은 혀를 내두를 일만 있잖아

 ├ 오늘은 엄청난 일만 있잖아

 ├ 오늘은 어마어마한 일만 보잖아

 ├ 오늘은 대단한 일만 벌어지잖아

 └ …

 

 우리들은 토씨 '-의'에서 홀가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말씨를 북돋우거나 우리 말투를 살찌우거나 우리 말밭을 가꾸지 못합니다.

 

 낱말 하나하나 돌아볼 줄 아는 눈매를 기르기란 너무 어려울까요. 말투 하나하나 살필 줄 아는 눈썰미를 가다듬기란 힘들까요. 말매무새 다스릴 줄 아는 눈길을 보듬기란 지나치게 벅찰까요.

 

 말에 담는 삶을 생각해 봅니다. 말로 나누는 삶을 헤아려 봅니다. 말로 어깨동무하는 이웃을 둘러보면서 우리 터전을 다시 굳게 디뎌 봅니다. 어제와 오늘과 앞날을 고이 바라보면서 껴안아 봅니다.

 

 

ㄷ. 일의 연속

 

.. 하루 종일 일의 연속이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매일 똑같은 일허면서 도는 거예요 ..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문학분과위원회 엮음-여성운동과 문학 (1)》(실천문학사,1988) 12쪽

 

 "하루 종일(終日)"은 "하루 내내"나 "하루가 온통"으로 손질해 줍니다. '매일(每日)'은 '날마다'나 '나날이'로 손보고, "도는 거예요"는 "돌고 있어요"나 "돌아요"로 손봅니다.

 

 ┌ 일의 연속이죠

 │

 │→ 일이 이어지지요

 │→ 일이 그치지 않지요

 │→ 일이 끊이지 않지요

 └ …

 

 한자말 '연속'을 쓰고 싶다면 "하루 내내 일이 연속이죠"나 "하루 내내 일만 연속이죠"처럼 적어 줍니다. 이렇게 하여 토씨 '-의'를 털어내면 됩니다. 구태여 '연속' 같은 한자말을 쓰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면, "하루 내내 일이 이어지지요"나 "하루 내내 일만 가득하지요"나 "하루 내내 일만 해야 되지요"처럼 적으면 됩니다. 일이 어떻게 이어지느냐를 저마다 다르게 적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일이란 쏟아지는 일입니다. 넘치는 일입니다. 벅차다 싶은 일이고 고달픈 일입니다. "하루 내내 일에 또 일에 그리고 일에 눌립니다"처럼 적을 수 있는 한편, "하루 내내 일만 생각해요"로 적어도 어울리고, "하루 내내 일에 치이죠"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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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의#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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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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