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북 진안군의 내가 사는 지역에는 한참 동안 물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단수가 지난 4일 일주일을 넘기고서야 마을의 공동관정에 파이프를 다시 연결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오늘(12일) 오전부터 다시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산골동네 상수도가 개통된 지 십 년이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공사를 이유로 하루 정도 단수된 적은 몇 차례 있었다. 물론 살지 않던 전에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통보도 없이 딱 끊어져서 안 나오기는 4년째 살고 있지만 처음이었다.

 

일주일 넘긴 단수 사태... 가족 싸움만 늘었다

 

예정되지 않은 단수는 누구에게나 불편과 스트레스를 준다. 당장 아침에 가족이 돌아가며 변을 보는 것부터가 문제였고, 식수가 없으니 아기 물조차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지경이 되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오늘 저녁에, 또는 하루 세 차례라고 약속했던 말들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족들간의 싸움까지 시작됐다.

 

내가 어찌 알겠는가. 상수원 담당직원도 아니고…. 그런데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부부끼리도 싸우게 됐다. 이쯤 되면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는 것은 상투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피폐해진다.

 

결국 이장님에게 전화했다. 이장님 왈 상수원이 말랐다고 했다. 조치는 어떻게 되느냐고 했더니 공사를 한다 한다.

 

"그럼 언제 (물이) 나오는 것이냐."

"한 일주일 정도 걸리지 않겠냐."

 

그 다음에는 면사무소에 전화했다. 토요일이라 담당자가 없단다. 알아보고 전화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전화가 없다. 동네에 다른 이장님에게 전화해 보았다. 다른 일로 바쁘신 듯했다. 답답해졌다. 결국 우리 가족은 토요일 일요일에 차를 타고 나가서 전전했다. 덕분에 외식비 지출이 커졌다. 뭐, 아내는 밥 사먹어서 좋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기도 싫단다. 큰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 동네는 조용할까. 물이 나오지 않은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만나는 사람도 평화로워 보이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생활하고 있다. 마치 프랑스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가 배곯고 있는 시민들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을 것이지"라는 말처럼, "안 나오면 길어다 먹지"나 "사다 먹어"라는 동네 주민들도 있다.

 

그런 것인가. 이미 행정에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버릇이 몸에 익어서인가. 나는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해 보지 않았기에 더더욱 화만 날 뿐이다. 일 주일 동안 단수되었던 우리 마을에 소방차나 살수차가 물을 싣고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장의 방송만 두세 차례. 그것도 조금만 참아달라는 내용이다. 물이 없다면 모를까. 다른 마을들은 임시로라도 조치가 되었다는데 우리 마을만 안 나오고 있단다.

 

'군수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글 올렸더니...

 

지역신문 기자에게 제보도 했지만 뭐 기사가 써질 것 같지 않았다. 2만이 안 되는 작은 군에서 100여명이 사는 마을 전체가 겪는 불편을 군수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수 4일째 되는 날, 군청 홈페이지의 '군수에게 바란다'라는 게시판에 지금 쓰고 있는 글의 반 정도 분량의 글을 올렸다. 일의 경과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조치에 대해서 묻는 글이었다.

 

게시판에 민원글을 올리고 4일이 지난 후 "장기간 가뭄이 계속되고 있어 저수지 수원이 고갈됨에 따근 사전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물이 공급  되지 못해 주민불편을 끼친 점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현재 임시적으로 기개발해 놓은 관정을 이용하여 지방상수원 관로에 연결하여 통수시키고 있는 실정이며 항구적으로 이런 일이 두번 다시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천(주자천) 복류수의 물을 취수할 수 있도록 펌프 2대(20Hp, 30Hp)를 설치중에 있사오니 이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공무원과 군민들이 교육받는 장소에서 내가 민원글을 올린 것이 언급이 되더니, 간담회 때도 언급이 됐다. 좋다.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는 것은…. 문제는 상식을 벗어난 언급 방식이었다. "왜 마을 이장을 통해 전달해야 할 사항을 홈페이지에 또는 민원게시판에 올려서 군의 창피를 주느냐"고 했다.

 

결국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마다 나에게 혹은 아내에게 왜 올렸냐는 투의 말을 던졌다. 그것은 '위협'이었다. 행정 지원 받을 일이 많은데 불이익 받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마을 전체가 나 때문에 더 큰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아내는 힘들다고 당장 글을 내리라고 했다.

 

이 정도면 말 다했다. 나는 지금의 관행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접 알게 해줄 힘이 없다. 이제 '상식적이지 못한 관행'에 대해서 입을 조용히 닫고 있거나 아니면 이렇게라도 내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 

 

또 난리가 한바탕 날 수도 있겠다. 도내 자치단체 청렴도 1위이고 귀농 유치 프로그램 선진 자치단체인 진안군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게시판의 주민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수도민원#상수도고갈#행정민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