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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 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났단다.

 

드디어 검찰이 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니, ‘드디어’라는 수식어는 무언가 기대할 것이 있을 때나 쓰는 말이니 아무리 귀찮아도 첫 문장을 다시 써야만 하겠다.

 

검찰이 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에 대해 예상했던 대로 지극히 편향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건에 대한 검찰의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그 곳에 시너가 있으니 불이 났고, 방화를 한 결정적인 누군가를 색출하지 못했기(못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에 경찰에게는 철거민 5명이 사망한 참사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으며 경찰 1명이 사망한 책임은 증거는 명확하지 않지만 정황상 농성 철거민에게 있다는 것 이다.

 

PD수첩 화면 캡쳐 무허가 용역업체 직원들과 경찰의 교신 내용을 보도하는 장면
PD수첩 화면 캡쳐무허가 용역업체 직원들과 경찰의 교신 내용을 보도하는 장면 ⓒ 이래헌

검찰이 사건 발행 후 어제까지 수사랍시고 사건을 떠안고 정황을 정권의 구미에 맞게 꿰맞추기 위해 수사 기간을 연장하며 씨름을 벌이고 있는 동안 언론은 불법 용역업체 직원들과 합동 작전을 벌인 일이나 검찰과 용역업체 직원의 무전 교신 내용, 용역 업체 직원이 소방 호스로 물을 분사한 것이 현행법을 위반한 사실 등 경찰 진압작전의 불법성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를 속속 확보했음에도 검찰의 결론은 예상한 데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대중들은 이처럼 경찰의 위법을 입증할 증거가 속속 드러나자 검찰의 수사 결과가 조금은 달라지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분통이 터지는 것이리라.

 

검찰 수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분명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풀풀 쏟아져 나오는 것 봤는데 정작 화덕에서는 불을 땐 적이 없다’고 잡아떼는 꼴이니 어찌 속이 아니 터지겠는가?

 

정권의 충복. 이제 [PD 수첩]을 기소해야겠네?

 

중국 진(晉)나라의 범씨(范氏)가 친구들과 사업을 하다가 망하게 되자 혼란을 틈타 이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집안을 염탐해 보니 전각에 매달려 있는 범종이 값어치가 있어 보여 이를 훔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종은 생각보다 무거워 도저히 들고 갈 수가 없었다. 도둑은 종을 조각으로 깨트려 가져가기로 하고 망치로 종을 때리니 큰 소리가 나 도저히 종을 훔칠 수가 없었다. 도둑은 고민 끝에 자기 귀를 막았다. 귀를 꽉 막은 채로 종을 때리니 아무리 때려도 종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속담이나 엄이도종(掩耳盜鐘)의 고사는 스스로 져야할 책임을 남의 탓으로 미루기만 하고, 스스로 아니라고 억지로라도 믿으면 남도 아니라고 믿을 것 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고 후안무치한 정권과 그 충복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런 광대 짓을 마음껏 조롱하기에 충분하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 방귀를 뀌자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한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냄새 참 고약하네!” 방귀를 뀐 사람이 같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책임을 모면한답시고 씩 웃으며 한 마디 했다. “냄새가 그런대로 향기로운 데요?”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웃자! 이럴 때는 그냥 크게 웃어 제치는 거다.

애시 당초 검찰이 용산 참사를 공정하게 수사하리라고 우리가 믿고 있었던 바도 아니지 않는가?

 

PD수첩 화면 캡쳐 사제방패를 들고 건물에 진입하는 용역업체 직원들(Policia는 경찰을 뜻하는 스페인어)
PD수첩 화면 캡쳐사제방패를 들고 건물에 진입하는 용역업체 직원들(Policia는 경찰을 뜻하는 스페인어) ⓒ 이래헌

 

그나저나 걱정되는 일이 하나 있다.

경찰 진압의 불법성을 낱낱이 파헤친 [PD수첩] 같은 애먼 언론들만 또 다시 곤욕을 치르게 생겼다. 수사 결과 경찰 진압이 불법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면 이들 언론들은 또 다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중죄를 범한 것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용산철거민참사#검찰수사#엄이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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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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