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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서남부지역 연쇄 살인범 강아무개씨는 검찰에 송치됐지만, 그의 얼굴 공개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주최로 9일 오전 10시 서울 프레스센터 12층 대강의실에서 열린 '언론의 범죄피의자 얼굴 공개와 인권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은 행사 성격상 날선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지면을 통해 강씨 얼굴을 전격공개했던 <조선일보>와 공개하지 않겠다고 공지했던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들이 참석해 관심을 끌었다.

정권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은 피의자 얼굴 공개에 적극 찬성 입장을 밝혔다. "얼굴 공개에 대한 찬반 논쟁 자체가 필요없다"고까지 했다.

정 차장은 "<조선일보>는 흉악범 인권보다 공익이 우선이라는 보도를 줄곧 해 왔다"면서 "피의자 인권보호가 오히려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것은 과거 언론 선배들이 쟁취한 언론 자유를 스스로 목 조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국언론재단은 9일 오전 10시 프레스센터 12층 대강의실에서 '언론의 범죄 피의자 얼굴 공개와 인권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했다. 발제를 맡은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은 9일 오전 10시 프레스센터 12층 대강의실에서 '언론의 범죄 피의자 얼굴 공개와 인권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했다. 발제를 맡은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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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얼굴을 공개한 뒤 댓글의 90%이상이 찬성 입장이었다. 공익성이 크다는 증거로, 논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판단은 언론사 스스로 하는 것이다. 사법 기관도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경찰 직무규칙을 정한 것은 경찰이 오버한 것이고, 이런 코미디가 없다... 범죄자 가족들은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법률적 공방 벌일 필요도 없다."

정 차장은 "무죄추정 원칙 운운하는데 용의자들 공개 수배하는 것도 무죄 추정의 원칙 위반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반면 김상철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은 '신중론'을 폈다.

김 차장은 "(찬성 입장에) 공감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다만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으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의가 이뤄졌다고 판단되면 그때 공개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뒤 다른 언론들도 경쟁적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언론사마다 충분한 성찰과 고민의 과정은 없었다고 본다. 언론이 대세를 추종하고 시류나 여론에 쉽게 영합하고 상업적인 경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현실 감안한다면, 이후 경쟁적으로 누가 먼저 공개하냐, 누가 먼저 사진 입수해 시선 끌 수 있느냐에 대한 경쟁으로 분명히 갈 것이다. 신정아 사건 같은 경우가 단적인 예다. 당시 언론에서 보도의 가치가 있고 공익에 부합하고 어느 정도 인권 침해하는지 신중하게 고민했어야 한다. 이게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이런 언론의 현실에 문제가 있다."

김 차장은 '선입견'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특별 사면 됐을 때 큰 반발 없었다. 하지만 얼굴 흉악하고 이른바 전형적인 범죄형의 남성이었다면 여론이 과연 그랬을까. 강씨 얼굴이 굉장히 험악한 인상이었다면 사회적 여론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런 것처럼 얼굴 공개하면서 객관적 사실과 상관없이 또다른 편견을 낳을 수도 있다. 신중해야 한다."

김 차장은 <조선일보> 정 차장의 얘기를 반박하면서 "공개수배는 용의자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 범죄가 우려될 때 법원의 영장을 받아서 하는 만큼 이 사안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9일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는 범죄 피의자 강 모씨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한국일보> 김상철 사회부 차장(왼쪽)과 공개한 <조선일보> 정권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이 참석해 관심을 끌었다.
 9일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는 범죄 피의자 강 모씨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한국일보> 김상철 사회부 차장(왼쪽)과 공개한 <조선일보> 정권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이 참석해 관심을 끌었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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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죄 피의자 얼굴 공개에 찬성 입장을 밝힌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는, 언론이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사실인 것처럼 쓰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소송을 통한 판례 홍보 등을 통해 언론사 내부 지침을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정훈 변호사는 "'범죄사실과 범죄자를 명백히 구분하는 것'이 사태의 본질"이라며 "법원도 이런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한 여인이 내연남과 함께, 이혼 소송중인 남편을 감금하고 폭행한 사건의 경우, 범죄 사실은 공적인 관심사일 수 있지만, 법원은 범죄자에 대한 부분은 정당한 알 권리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일심회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범죄사실과 범죄자를 구분하는 것, 이것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핵심이다."

정 변호사는 '인권'이라는 개념을 다시 곱씹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처럼 공개적으로 하는 현장검증은 정당한 방식 아니다. 수사기관은 언론과 다른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언론은 강모씨를 흉악범, 살인범이라고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아무리 물증이 있고 자백이 있어도 그를 피의자로 대우해야 한다. 형사상 절차를 밟고 있는만큼 국가적 약자다. 이를 고려하면 사실 이 문제는 크게 본질에서 어긋난 부분이 있다. 인권은, 다름아닌 '관계'다. 가해자-피해자 구도로는 출구가 안 보인다. 국가와 피의자 관계로 봐야 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결국 피의자 얼굴 공개하는 게 실익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면서 "세심하게 따지는 절차와 원칙에 의해 공개했는지에 대해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알 권리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이것이 호기심이나 궁금증에 맞춰주는 것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한다"면서 "언론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요인 등을 지면에 많이 싣는 것이 진짜 알 권리에 부합된다"고 주장했다.

오늘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패널들은 대체로 '흉악범 얼굴 공개' 입법에는 반대했지만 이른바 '알 권리'의 범위, '공인'에 대한 개념, 얼굴 공개를 언론사 자율에 맡기는 여부,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공개 실익 여부 등에 대한 입장을 좁히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라운드 테이블'이 앞으로도 계속 마련되어야 할 이유다.


#범죄피의자#얼굴 공개#인권#조선일보#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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