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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에서 발견된 음란성 명함전단
1월 3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에서 발견된 음란성 명함전단 ⓒ 이상규

지난달 31일 저녁이었습니다. 인근 세미나 참석을 마치고 선릉역으로 가려던 순간,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의자쪽에 명함 크기의 광고물(일명 명함전단)이 있던 겁니다. 그것을 두 눈으로 가까이서 보니까 음란성 광고였더군요. '옥외광고물관리법'에 위반되는 엄연한 불법 광고물이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이런 것을 돌려?'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선릉역 외에도 신림-신대방-강남역 근처에서 명함전단 및 그외 다른 불법 광고물을 봤기 때문에 보통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요즘에는 명함전단이 주택가와 학교 주변(초중고등학교 포함)에 마구 뿌려지고 있어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죠. 청소년들 정서를 해칠 뿐더러 거리 환경까지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공기관에서는 명함전단을 중심으로 주기적인 단속을 벌였지만, 요즘에는 음란물 광고업자들의 수법이 '지능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예전에는 지하철 출구에서 사람들 몰래 명함전단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사람이 많은 곳이면 무차별로 명함전단을 뿌려서 더 문제입니다. 앞에 있는 사진처럼 지하철역 주변 의자를 비롯 지하철역 출구 난간, 상점 외관, 공중전화부스 같은 곳에 살포되고 있어서 청소부가 광고물 수거하느라 고생하고 있죠.

6년 전, 1시간 7000원에 명함 전단 돌릴 뻔(!)

저는 음란 광고물, 그 중에서도 명함 전단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6년 전이었던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저와 무관하게' 명함전단을 돌릴 뻔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죠. 그때가 만 19세였으니까 법적으로는 미성년자였습니다(그때는 만 20세 지나면 성인이었으니). 당시 음란성 광고물을 접한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겁니다.

음란 광고물을 접한 것은 본의 아니게 어느 모 유명 알바 사이트에 '낚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하던 고등학교 식당이 방학으로 쉬게 되면서 다른 알바 자리를 구하려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 퇴짜를 맡다가 어느날 알바 사이트에서 '1시간 7000원 전단지 배포'라는 문구를 봤습니다.

무슨 내용의 전단지를 돌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고, 서울 지하철 2호선 00역 0번 출구에서 3시간 알바한다는 얘기만 있었죠. 그 당시 알바 사이트에서 불량 알바를 철저히 단속한다는 공지 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전단지 배포해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단지 관련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알바해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그쪽에서 바로 OK 했습니다. 무슨 알바냐고 물어보니까 다음날 아침에 나오면 알게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 재차 물었더니 그때도 같은 대답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1시간 7000원'이라는 유혹 때문에 바로 끊었죠. 지금의 저 같았으면 알바 하지 않겠다고 바로 말했을텐데, 연이은 알바 퇴짜에 아빠가 무릎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셔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터라 1시간에 7000원이라는 돈을 벌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죠.

그 당시 1시간 7000원은 상당히 많은 돈이었습니다. 당시 최저임금이 2000원 넘을까 말까였고, 대학교 입학하기 전 모 대형마트에서 알바할 때 1시간당 2600원 받고 일했으니까 약 3배 정도 되는 액수였던 겁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약속장소에 가서, 광고업자들이 있던 자동차를 찾아 차량 내부 뒤쪽에 앉았습니다. 앞쪽에는 덩치가 엄청 큰 험상궂은 아저씨가 2명 있었습니다. 그것도 혼자왔던 터라, 아저씨들 표정이 무섭게 느껴질 수 밖에 없더군요. 조수석에 탄 안경낀 아저씨가 저에게 명함전단을 지급했습니다. 내용물을 본 순간, 저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생소한 광고물을 봤습니다. 어린 나이에 음란 광고물을 사람들에게 일일히 배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그래서...

필자 : "이거 나눠주면 불법인데 꼭 돌려야 해요?"
아저씨 : "거참~말 많네. 이게 뭔 불법이야. 그냥 돌리면 될 것이지. 경찰이 뭐라고 해도 걸리지 않으니까 신경쓰지마. 이거 40~50대 남자들에게만 주면 되니까 절대로 젊은 애들이나 여자들에게 돌리면 안돼. 야. 너 근데 몇 살이야? 굉장히 어려보인다"
필자 : "만으로 19세인데요"
아저씨 : "뭐야. 나이도 어리잖아. 아니 뭐 이딴 녀석이 들어왔어. 이거 미치겠네 진짜. (계속 어이없어 하다가) 그냥 여기까지 왔으니까 돌리고 가. 이미 1명 투입되었으니까 너도 조금있으면 돌려야지"

결국 이들의 정체는 불법광고물을 돌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차량 속으로 교묘하게 숨어서 배포를 진행하던 것이었죠. 알바 사이트에서는 무슨 내용의 전단지를 돌리는지 아무 얘기가 없었는데,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었던 겁니다. 그것도 알바 사이트가 당시 유명했던 곳이어서 '이곳에 불량 알바 구인은 올라오지 않을거야'라고 믿고 있었는데, 완전히 '낚시질'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전단지의 정체를 알게 되니까 제가 직면한 사회 현실이 어찌나 더럽고 추했던지요. 저도 모르게 나쁜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에게 닥친 앞날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차량에서 계속 딴 생각을 하다가,

아저씨 : "야. 너 뭐해. 내 말 안들려? 우리가 차량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을꺼니까 도망갈 생각 하지마. 잘들어. 지하철 출구 앞에 서서 전단지 200장 뿌리는거야. 사람이 전단지 버리면 무조건 주워야 하고 쓰레기통에 있는 것도 모두 수거해서 다시 돌려야 해. 누군가 화장실에 버리면 내가 주워서 너에게 줄 거니까 그것까지는 신경쓸것 없고. 청소부나 다른 누군가가 너에게 이거 왜 돌리느냐고 야단치면 싹싹 빌어서 죄송하다고 그래."
필자 : "(의도적으로 태클걸며) 그때 차량으로 도망가시려고요?"
아저씨 : "아~진짜 너무하네. (큰 화를 내며) 걍 들으란 말야. 어찌되었건 이거 3시간 동안 돌리란 말야. 알아들었어?"
필자 : "제일 궁금한게 있는데, 1시간에 7000원이니까 3시간하면 21000원 주셔야 하는거 아시죠?"
운전석 아저씨 : "그거 걱정하지마. 어차피 돈은 바로 줄거니까 200장만 돌리면 돼."
아저씨 :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되니까 바로 투입해."

저는 결국 불법 알바를 하기 직전까지 몰리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만약 전단지를 돌렸다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이거 절대로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저씨의 신경질적인 어조와 무서운 표정 때문에 첫 대면에서는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어딜 나가든 절대로 나쁜짓 하지 마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새겨 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신 상태여서 나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1시간 7000원 알바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저씨에게 계속 태클을 걸며, '알바 하지 않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꺼냈죠. 그래서 저는 아저씨가 투입하라는 말에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필자 : "(명함전단을 차량 기어쪽에 내려놓으며) 이거 안 할래요. 엄연히 불법 알바인데 누가 하겠어요. 못하겠습니다. 갈게요"
아저씨 : "(빈정거리며) 알았어 그냥 가. 너 같은 애 꼴도 보기 싫다."

다행히 명함전단은 돌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아저씨가 '못한다'고 말한 저를 때릴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는데 폭행을 가하지 않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그때는 약했던 때였으니) 한편으로는 1시간 7000원을 벌지 못해 아쉬었지만 나쁜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용기'를 발휘했던 제 자신을 위안삼았습니다.

알바생을 고용하기 위해 유명 알바 사이트에서 불법임을 속이고 구인까지 했던 아저씨가 정말 나빴더군요. 이런 사람이 사회에서 존재하고 있던 것이 놀랐습니다.(그 당시 접한 사람들 중에서 말이죠.)

그때의 일을 계기로, 저는 알바 사이트에서 제 나름대로 불량 알바들을 철저히 가려내서 지금까지 좋은 일감을 얻으면서 일했습니다. 회사가 불분명하고, 회사명 없이 사람 이름만 기재되어 있고(예명일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곳보다 돈을 많이 주고, 무슨 일을 하는지 단순하게 기재한 것은 무조건 '불량 알바'로 간주했습니다. 회사 같은 경우에도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지, 인터넷 검색창을 필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감지되면 알바를 하지 않았죠.

제 아무리 유명 알바 사이트라도 정보가 부실하면 저 같은 피해사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유명 알바 사이트에 올라오는 정보를 무조건 맹신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알바 사이트들끼리 불량 알바 선별이 강화되어서, 6년 전 제가 당했던 사례는 요즘엔 흔하지 않죠.

어찌되었건, 음란 내용을 담은 명함전단을 비롯 다른 퇴폐적인 광고물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불법 광고를 상습적으로 일삼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 사람들 얼굴 찌푸릴 수 밖에 없네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pulse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명함전단#불법#알바#광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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