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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법문(心地 法問) 마조 도일(709-788)

마조는 혜능의 제자인 남악의 제자로 계보상 정리되어있지만 신라왕자 출신인 홍인의 제자 무상스님의 두타수행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종밀스님(780-841)은 기록하고 있다.

남악 회양(칠조)이 마조 도일(팔조)에게 심인을 전해주는 마경대(魔境臺)의 얘기는 중생들에게 좌선의 의미를 올곧게 설명하고 있다.

형악의 전법원에서 마조가 좌선하고 있을 때 마조의 법그릇을 알아 본 남악이 마도에게 묻는다. 

“그대는 왜 좌선을 하고 있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남악이 부근에서 벽돌 하나를 주워 숫돌에 갈기 시작하였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실 겁니까?”
“거울을 만들까 하네”
“벽돌이 거울이 될 리가 있습니까?”

이에 남악은 일갈(一喝)한다

“벽돌이 거울이 될 수 없듯이 좌선으로 부처가 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조의 질문에 남악은 심지법문(心地法問)으로 마조의 마음을 연다.

마음은 모든 종자를 갖고 있어
촉촉한 비를 만나면 어김없이 싹이 튼다.
삼매의 꽃은 모습이 없는데
무엇이 파괴 되고 또 무엇이 이뤄지랴.

심지함제종 心地含諸種
우택실개맹 雨澤悉皆萌
삼매화무상 三昧花無相
하괴복하성 何塊復何成

마조의 입실제자는 서당, 백장 남전 등을 포함화여 139명에 이르고 이들 모두 각자 나름대로 일종의 종주를 이뤘으니 마조의 가르침이야말로 천하의 선문을 환하게 밝힌 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선일미(茶禪一味), 농선병행(農禪竝行) 운문 문언(? ~ 949) 

운문은 광동성 소주의 운문산 광봉원을 창시한 문헌 화상을 말한다. 설봉 의봉의 제자이며 5가7종의 하나인 운문종의 개조이다.

성철스님은 중국 선종 5가의 종풍(宗風)을 위앙의 근엄함, 조동의 세밀함, 임제의 통쾌함, 운문의 고고함, 법안의 간명함으로 평했다. 이를 통해 다선일미, 농선병행의 운문의 선풍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학인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간시궐! (乾屎橛)”

간시궐은 대나무를 얇게 만들어 대변 후 밑을 닦는데 사용했던 물건이다.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 학승의 정신 나간 소리에 ‘마른 똥막대’란 말로 꾸짖어 학승이 본 마음을 찾도록 불호령을 내렸다.

또,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난 직후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한 것에 대해 선사는 “만일 당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몽둥이로 때려죽여서 개의 먹이로 주었을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평으로 선의 본질을 강조하였다. 

선사는 말과 글을 부처를 죽이는 독약처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를 얻는 길은 오직 사소한 일과 중요한 일의 분별없는 참선을 통해 가능하며 우주 만물의 이치는 다반사(茶飯事)같이 작고 사소한 일 일지라도 깨어있고 집중하는 마음만이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운문은 찾아온 중에게

“요즈음 어디 있다 왔나?”
“서선 화상에게서 왔습니다.”
“서선 화상이 요즈음 무슨 말을 했나?”

운문의 물음에 중은 두 손을 쭉 내밀었다.
이에 운문은 중을 한대 때렸다.

“제게도 할말이 있습니다.”

역전을 노리는 중이 운문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운문이 두 손을 쭉 내밀었다. 중은 아무런 대꾸를 못했고 운문은 다시 중을 한대 더 때렸다.

상대의 마음을 훤히 들어다 보고 있는 선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평상심(平常心) 조주 종심(778~897)

조주 스님은 남전(南泉)선사의 문인이다. 스님은 관음원에 살던 종심선사(從諗禪師)이며 산동성 조주 사람이다. 

조주는 선문답과 화두를 많이 남긴 스님이다. 중생들이 진로문제로 스승과 대화를 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스승님 제가 법을 구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생을 위해 가르침을 펴야 하겠지”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에게 이미 깨달음의 인연이 닿아 곧 깨달음의 경지에 들겠네”

그러나 스승인 남전선사와 조주화상은

“불법이 있음을 아는 이는 어디로 갑니까?”
“산 밑 시주 집에 한 마리 물소가 되는 거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밤 삼경에 달이 창에 비쳤다.”

선문답으로 마음을 통하고 전했다.

나는 선문답이란 난해한 암호문자 정도로 여겼지만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으면서 한 점 보태거나 뺄 수 없는 명쾌함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조주 나이 20세 즈음, 깨달음을 얻을 때 스승 남전선사와 나눈 선문답이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의 마음이 도다.”
“그래도 닦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려 하면 그대로 어긋나 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망각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툭 트여서 넓은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

많은 도에 관한 정의와 도를 묘사한 글과 말을 읽고 들었건만 아직도 무지몽매한 어둠을 헤매고 있으니 도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 평상심을 잘 간직해야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라고 조주선사는 답하였다.

“도는 닦을 것이 없으니 다만 물들지 말라”는 스님의 가르침으로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의미를 찾아야겠다.

무위진인(無位眞人) 임제 의현(? ~ 867)

임제선사의 휘는 의현 속성은 형씨로 조주 남화 사람이다. 처음 출가 후 교조의 전통에 따라 경과 율을 배웠다. 교종의 한계를 느낀 임제는 선지식을 찾아 백장선사의 법맥을 이어온 황벽선사를 만나 수행하고 인가를 받았다. 다음 대우선사를 친견하여 법을 전수받았다.

6조사 혜능 때까지 주로 양자강 이남에 머물던 선종은 차나 ‘한잔 며셔라(끽다거[喫茶去])’로 교화한 조주와 ‘참사람(무위진인[無位眞人])’을 외치는 임제의 선풍에 의해 선불교는 하북은 물론 산동의 중생들에게까지 이른다.

임제종은 중국의 5가 7종 중 우리나라에 전해져 법맥을 이어온 종파이며 우리나라 대표종단인 조계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종파이다.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국사에게 법맥을 전한 서당과 지장선사가 마조-백장-황벽으로 이어지는 홍주종의 선사들이며 임제와 같은 법통이다. 또, 그 후 1300년대에 조계종의 중흥조인 고려 말 태고 보우국사가 임제선사의 18대 법손인 석옥, 청공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임제가 황벽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 과정 또한 과연 선사들이나 하는 행위들이다라는 생각을 갖는다.

황벽은 문하의 수행자들에게 설법할 때, 대우스님을 소개한다. 이를 들은 임제는 대우를 만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찾아간다. 대우의 초암에서 임제는 자기의 유식함을 자랑하기 위해 저녁 내 유가론과 유식에 관한 애기를 한다.

“ 노승이 홀로 살고 있는 초막까지 먼 길을 찾아온 것을 생각하여 하룻밤 묵어가게 허락했거늘, 그대는 내 앞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고약한 냄새나는 방귀만 뀌어대는가!”

하면서 방망이로 임제를 후려치면서 쫓아버렸다. 임제의 자초지종을 들은 황벽은

“대우선사께서 그대를 만나신 것을 이글거리는 불덩이 같이 좋아했거늘 그대는 헛되이 왔다 갔다만 하는가?”

황벽에게도 혼이 난 임제는 다시 대우를 찾아간다.

“엊그제는 부끄러움도 모르더니 어찌하여 다시 찾아왔는가?”

후려치는 대우의 방망이를 피해 다시 황벽에게 되돌아오는 길에 임제는 대우의 방망이 뜻을 헤아리게 된다.

“이번에는 헛되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황벽의 물음에

“한 방망이로 부처의 경계에 들었습니다(일봉하입불경계 一棒下入佛境界).”

임제는 황벽과 대우선사들의 밖에서 알을 쪼아주는 가르침에 힘입어 깨달음의 알을 깨고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임제는 대우가 입적할 때까지 10년 동안 시봉하고 황벽에게 다시 돌아온다. 임제는 하루를 만 량 같이 쓰는 무위진인의 삶(시진출가  是眞出家  일소만량황금 日消萬兩黃金)을 살았다.

지금까지 10분 선사들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과 삶과 가르침에 대해 달리는 말을 타고 산을 보는 격으로 살펴보았다. 깨달음의 과정, 삶 그리고 가르침의 방식이 열 분 다 다르지만 결국 모두 한가지를 가르치며 그곳을 지향하고 있다.

내가 만일 열분 선사들 중에 한분에게

“ 그 한 가지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라고 물어봐야

‘똥집 막대기’

‘뜰 앞의 잣나무’

아니

‘몽둥이 한방’ 일지도 몰라.


뜰 앞에 잣나무 - 도우 스님의 禪이야기

도우(道雨) 지음, 방남수 엮음, 화남출판사(2007)


#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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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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