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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상조회사의 광고(기사내 특정 업체와 관련 없음).
 한 상조회사의 광고(기사내 특정 업체와 관련 없음).
ⓒ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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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조회사가 많이 보이는데, (가입을) 말리고 싶다. 나중에 소비자만 피해 본다."

지난 1월 29일 수화기 너머 배연우(가명·33·경기 군포)씨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그는 "상조업체에 가입하지 말고, 가족끼리 친지들끼리 돈을 모으는 게 낫다"며 "안 그러면 나처럼 돈만 날리게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가 이처럼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는 B상조에 돈을 떼인 탓이다. 그는 지난 2002년 5월 일시불로 59만원을 내고 이 회사의 관혼상제 서비스에 가입했다. 하지만 2005년 5월 결혼하면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 했지만, 추가요금을 받는다고 해 포기했다.

이후 2008년 11월 계약 해지를 신청했지만, B상조는 "상품권 형태로 가입한 것으로 해지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배씨는 "가입할 때 상품권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이후 소비자원을 통해 이 회사와 타협점을 찾으려고 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나중에 알아보니, 상조업과 관련해서 법제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보호를 못 받고, 피해를 당하면 구제방안이 없다고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고속 성장 중인 상조업... 소비자 피해도 크게 늘어

배씨의 말대로 현재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상조업법은 없다. 최근 상조회사의 광고가 쏟아지는 등 상조업은 경기 불황과 관계없이 고속 성장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 보호 장치가 전무한 탓에 피해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상조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400여개의 상조회사가 영업을 하고 있고, 여기에 가입한 회원만 300만명에 이른다. 전체 계약금액으로는 4조원이고, 실제 납입 총액만 해도 1조원에 달한다. 가입회원 1인당 평균 계약금액은 120여만원이다.

피해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상조회사 관련 상담건수는 2003년 58건에서 2007년 833건, 2008년 1374건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불만사항으로는 계약해지에 따른 과다 위약금 요구(35.1%), 계약해지 거절(29.7%) 등이 많았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주로 중소업체에서 피해가 일어나지만 큰 업체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세 업체의 난립에 있다는 게 한국상조연합회 쪽의 의견이다. 현재 자본금 5천만원만 있으면 누구나 상조업을 할 수 있다. 정명근 한국상조연합회 사무총장은 "5천만원을 내고 사업자등록만 하면 된다, 5천만원이면 동네 구멍가게 여는 수준 아니냐,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사람들이 업체를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조업체에 돈 떼여 아기 수술 미뤄"

장례식장 최근 상조회사의 광고가 쏟아지는 등 상조업은 경기 불황과 관계없이 고속 성장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 보호 장치가 전무한 탓에 피해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 장례식장 최근 상조회사의 광고가 쏟아지는 등 상조업은 경기 불황과 관계없이 고속 성장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 보호 장치가 전무한 탓에 피해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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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아예 회원들의 돈을 떼먹고 사라지는 곳도 적지 않다. 이런 피해를 당한 박수진(가명·32·서울 구로동)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박수진씨가 SNRG라는 상조회사에 가입한 건 지난 2005년 5월. 외동딸인 박씨는 부모님을 위해 한 달에 3만원씩 60개월을 납입하면 상조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 2개에 가입했다. 하지만 박씨는 2008년 11월 아기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약을 결정했다.

지금까지 납입한 300여만원 중 위약금을 물더라도 최소한 2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박씨는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 사정이 힘들다, 1월 중순까지 주겠다"고 전해왔다. 회사에 "급하다,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했지만 "어려워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됐다.

12월에 들어서자 회사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박씨는 소액재판을 하려 법원에 들렀지만, 회사 재산이 있어야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그는 소비자원에 이 사실을 알렸고, 소비자원이 이 회사를 찾았지만 회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박씨는 "우리에겐 큰 돈이었다, 이 돈을 받지 못해 결국 아기 수술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며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지만, 이제는 생각만 하면 스트레스 받으니 생각 안 하고 있다, 돈 받는 건 거의 포기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SNRG 피해자 모임 카페가 만들어진 상태다. 12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한 이 모임은 채권 추심을 준비하고 있다.

박씨는 "저렴한 가격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모든 걸 다 해준다고 해서 기대가 많았는데, 뒤통수를 맞은 셈으로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TV에 광고한다고 다 좋은 회사가 아니다, 언제든지 망할 수 있으니 잘 알아보고 가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조 관련 법안 시급히 통과 안 되면...

 늦었지만 공정위에서는 오는 2월을 목표로 상조업을 규율하는 내용을 추가한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늦었지만 공정위에서는 오는 2월을 목표로 상조업을 규율하는 내용을 추가한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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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박씨와 같은 피해가 앞으로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조업 설립 요건이 강화되기 이전에 서둘러 설립하느라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곳이나 경기 불황 탓에 회원들이 해약을 많이 하는 회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명근 사무총장은 "양심 불량인 영세업체가 많이 있는데, 전체 회원수가 1만명 이상으로 실질적인 운영이 가능하고 회사 재정상황을 알 수 있는 곳은 전체의 50%밖에 안 된다"며 "최대 100만명이 그렇지 못한 업체에 가입해 있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부처 내에서 상조업을 관리 감독하는 곳이 없다. 2007년 10월 정부 부처협의를 통해 상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하기로 했지만, 관련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공정위에서는 상조업 관련 부서조차 만들지 못한 상황이다.

공정위는 2007년 12월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상조서비스 표준약관'을 승인했지만, 강제성이 없는 탓에 큰 실효성은 없었다. 현종환 공정위 약관제도과 조사관은 "몇몇 대표 업체들이 표준약관을 따르고 있다"면서도 "회원들의 돈을 보호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은 표준약관을 벗어난 범위"라고 말했다.

공정위 특수거래과 관계자는 "상조서비스는 돈을 먼저 내고 나중에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회사가 부도나고 잠적하면 소비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만약 큰 상조업체가 도산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뒷짐 지는 정치권... "큰 피해 우려"

늦었지만 공정위에서는 오는 2월을 목표로 상조업을 규율하는 내용을 추가한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설립 기준을 자본금 3억원을 갖춘 법인으로 까다롭게 하고, 소비자 피해 보상 보험 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공정위 특수거래과 관계자는 "이 법안을 최대한 빨리 제출한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국회 상황으로 볼 때 법 제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미 지난 17대 국회 때 안명옥 전 한나라당 의원이 상조업법을 발의했지만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 역시 지난해 7월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 파행 등으로 아직까지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계류 중인 상황이다. 정무위원회 양당 간사 역시 이 법안 논의에 적극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신학용 의원 쪽은 "쟁점 법안에 포함되지 못해 많은 검토는 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검토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간사인 박종희 의원실 관계자는 "추가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2월에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명근 사무총장은 "시급한 민생 법안인데 정무위원회 어느 의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등 이 법안의 시급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모두 뒷짐 지고 있다"며 "이 법이 빨리 통과되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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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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