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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미국의 안보 및 경제적 이익과 맞아떨어지는 곳에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판촉하고 진작시켰다. 반면 민주주의가 미국의 중대한 이익과 충돌하는 곳에서는 민주주의의 판촉이 경시되거나 아예 무시되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한 프로젝트’ 회장인 토머스 캐로서스(Thomas Carothers)의 말이다. 그는 지난 2004년 <중대한 소명:민주주의의 진흥에 대한 시론>에서 미국의 ‘민주주의 판촉(democracy promotion)'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었다.( <촘스키, 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158면, 시대의 창 펴냄)

 

아프간 대선 3개월 연기 보도를 보며 다시금 촘스키의 책을 빼들었다.

 

아프간 대선 3개월 연기, 누구의 이익일까?

 

아프가니스탄 선거관리위원회는 올해 5월 이전에 치러야 하는 대통령 선거를 당초 일정보다 3개월 가량 연기해 8월 20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치안 불안’이었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법’에 의한 것이었다. 아지줄라 로덴 아프간 선관위원장은 치안 부재로 투표가 불가능할 경우 선거를 연기할 수 있는 법 조항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아프간의 대선 연기에 대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시간 벌기라는 분석(연합뉴스, 1월 29일)이 있다. 카르자이가 대선을 앞두고 현지 주둔 외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이슈화하고, 외국군의 작전권을 제한하는 협상을 요구하는 등 돌아선 민심을 잡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새 아프간 전략에 따른 시간 벌기라는 분석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아프간의 선거 연기 발표 하루 전인 지난 27일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새 아프간 전략의 일환으로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에 대한 강경노선을 취할 작정”이라고 했다(뉴욕 타임스). 게다가 오바마 행정부는 아프간에 올 봄 2개 전투여단을 증파하고 여름까지 1개 여단을 추가 파병할 것이다(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1월 27일 상·하원 군사위원회).

 

아프간의 대선 연기의 명목상 이유가 아닌 실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프간 대선 연기 보도에 2005년 1월 이라크의 지방선거가 치러지기까지의 과정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2005년 1월 이라크 선거, 미국과 영국은 연기시키려고 했다

 

2005년 1월 이라크에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선거를 연기시키려고 했다. 아야톨라 시스타니는 자유와 독립 및 민주적 권리를 염원하는 민중의 결의를 받아들여 신속한 선거를 요구했다. 이라크 민중들은 미국이 선거를 허용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을 때까지 비폭력 저항을 계속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선거가 미국의 발의로 이루어진 것처럼 잽싸게 꾸미기 시작했다(같은 책 159~160면).

 

2005년 1월의 지방선거에 대해 2005년 3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선거가 가능했던 이유는 점령 당국이 제시한 세 안을 거부한 아야톨라 시스타니의 강경한 입장 덕분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부시 행정부 8년 민주주의는 확산되었나?

 

퇴임을 앞둔 지난 3일 미국 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미국인들이 모를 수 있는 부시 행정부(2001~2009)의 100가지 기록'이라는 자료에서 ‘이라크, 아프간 독재정권으로부터 5천만명 해방 및 민주주의 확산’을 꼽았다. 과연 그럴까?

 

다시 촘스키(Avram Noam Chomsky)의 말이다.

 

“부시와 블레어가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거듭해서 내세웠던 구실은 ‘단 하나의 의문’, 즉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할 것인가?’였다. 그러나 수개월 후, 그 단 하나의 의문은 고약한 방향으로 해소되었다. 그러자 침략의 진짜 이유가 이라크와 중동에 민주주의를 전하려는 부시의 ‘메시아적 소명’에 있었다는 것으로 재빨리 대체되었다.” (같은 책 214면)

 

당초 WMD 폐기를 목표로 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침략과 점령이었기에 민주주의는 ‘확산’되었다기보다는 ‘판촉’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어찌됐든 2009년 올해는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선거 이외에도 중동의 정치판도를 가르는 선거들이 치러진다. 중동 평화 유지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는 2월 10일 총선이 예정돼 있고, 또다른 축이라 할 수 있는 이란에서는 6월 12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바야흐로 중동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오바마 취임 이후 미국의 외교노선은 과연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부시행정부의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됐던 민주주의 ‘확산’, 촘스키의 표현에 의하면 ‘민주주의의 판촉’은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프간 대선 연기#이라크 지방선거#민주주의의 확산#민주주의의 판촉#노엄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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