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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시간차를 두고 한국과 미국에서는 아주 대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200만명의 환영 인파 속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취임했고, 한국에서는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5명의 용산철거민과 1명의 경찰특공대원이 사망했다. 한쪽에서는 희망과 감격의 눈물이 흘렀고, 다른 한쪽에서는 절망과 분노의 눈물이 흘렀다.

 

이걸 두고 '보수의 책사' 혹은 '상생의 전도사'로 불리우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묻는다.

 

"미국과 한국 모두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국가인데 어떻게 이렇게 엇갈리는 사건이 일어났을까?"

 

윤 전 장관은 "두 사건의 성격이나 차원은 달라서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소통과 통합의 관점에서 보면 큰 의미를 주는 사건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명박·노무현, 말에 관한 한 낙제점"

 

윤 전 장관은 29일 저녁 7시 30분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에서 마련한 신년특강의 네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특강의 주제는 '한국정치, 소통과 통합의 길을 찾다'였다. "반세기 한국정치의 중심과 주변을 꿰뚫어 보고 관용·상생의 경륜과 식견을 가진"(최상룡 고려대 교수) 그에게 적합한 주제였다. 

 

윤 전 장관은 "민주정치의 본질은 소통"이라는 본인의 소신을 내보이면서 특강을 시작했다. 그는 "소통없이 통합은 불가능하고, 통합없이 민주주의를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타협과 대화를 통한 절충의 문화기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의회라는 뜻의 'Parliament'는 라틴어 'Parla'에서 나왔다. 이것은 '말하다'는 뜻이다. 의회는 말을 통해 국정은 운영하는 곳이다. 말을 통한 소통의 능력, 통합의 능력이 민주주의 수준을 말해준다."

 

윤 전 장관은 "그런 점에서 국회에서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로, 즉 말이 아닌 몸으로 소통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확인시켜준 것"이라며 소통이 부재한 국회 상황을 꼬집었다.

 

이어 윤 전 장관은 "일반 정당이나 국회도 그렇지만 국가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전·현직 대통령의 소통능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현 대통령은 모두 말에 관한 국민에게 낙제점을 받은 것 아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이 천박하다는 평가를, 이명박 대통령은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소속 의원으로부터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 대통령의 경우 '오럴 헤저드'라는 말이 한동한 유행했다. 그럴 정도로 말에 관한 한 국민으로부터 낙제점을 받았다."

 

"소통이 안되는 게 아니라 소통 자체를 무시하고 있어" 

 

윤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제기한 경제살리기와 국민통합이라는 국정목표는 소통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며 세가지 차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상태를 분석했다.

 

먼저 집권층 내부와의 소통이다. 윤 전 장관은 "옛날에는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과 집권당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없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당과 청이 분리됐다. 그래서 원활한 국정운영을 수행하기 위해선 소통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어떤가? 그런 소통의 중요성에 비해 소통이 안되고 있다. 취임하고 나서 청와대와 당 사이에 엇박자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윤 전 장관은 집권층 내부와의 소통이 안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김형오 국회의장의 '폭로'를 들었다.     

 

김 의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디어법은 국회의장도 한나라당 의원도 국민도 몰랐다, 그렇게 급한 법이었다면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나"라고 당청정간 소통부재를 꼬집었다는 것. 

 

윤 전 장관은 "국회의장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데 안 믿을 수 없지 않나"라며 "이것은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소통 자체를 무시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야당·시민단체 등 경쟁관계에 있는 비판세력과의 소통이다.

 

윤 전 장관은 "집권 내부와의 소통이 이 정도라면 비판세력과의 소통은 안 물어봐도 알 수 있을 정도"라며 "비판세력인 야당과 소통하는 걸 보면 소통이라기보다 대결과 제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지적했다.

 

"작년 정기국회에서 새 예산안을 통과시켰는데 그걸 통과하자마자 입법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고 나와서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이자'는 말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민주주의가 여당과 야당이 입법전쟁을 하는 제도인가? 이것 두 가지만 봐도 (야당과) 소통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윤 전 장관은 "강자인 집권당이 전쟁을 하겠다며 질풍노도처럼 상대방을 몰아붙이면 앉아 죽겠다는 약자가 어디 있나"라며 "그런 과정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나오지 않았냐"고 말했다.

 

"(질풍노도같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민주적인 생각은 아니다. 반대세력을 제압하려는 모습이지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모습은 아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 보여준 모습을 보라. 민주당이 다수당이니까 경제부양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음에도 대통령이 의회에 가서 상하원 공화당 의원을 만나 직접 설득했다. 그렇다고 공화당 의원들이 많이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 자체는 높이 평가했지 않나. 그런 모습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든다."

 

"후보시절 '설득의 리더십'이라고 자부하더니..."

 

세 번째는 국민과의 소통이다.

 

윤 전 장관은 "초기 내각과 청와대(비서진)을 구성했을 때부터 '강부자' '고소영' 때문에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했다"며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인사를 한 것이지만 국민과 소통했으면 국민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극심한 불신을 불러왔다. 국민과 소통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러다가 촛불시위가 나왔다. 직접적 원인은 쇠고기 파동이지만, (촛불시위는)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하지 않으니까 일종의 경고, 엘로우 카드를 꺼낸 것이다. 대통령 자신도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것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은 소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대국민홍보를 강화하고 국정운영을 강경하게 가져가는 쪽으로 갔다. 홍보기획관실도 새로 만들고 직접 라디오연설에 나선 것도 다 대국민홍보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소통부족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국민홍보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걸 보면 자기 생각을 국민에게 잘 알리지 않는 것을 소통부족으로 해석한 것 아닌가 싶다"며 "그렇게 대국민홍보를 강화했지만 국민의 평가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이것은 소통이 상호작용이라는 걸 간과한 것"이라며 "집권내부, 비판세력, 국민과의 소통이 안 되면 정권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청 복원사업에서 보여준 '설득의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만들 때 상인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때 상인들을 1000회가 넘게 만나 끈길기게 설득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 직접 만나 얘기를 들었는데 '상인들을 설득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는 설득의 리더십이 있다고 자랑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청계천 상인을 설득한 리더십은 왜 발휘되지 않는지 의문이다."

 

"소통부재가 장기화되면 정치위기 심화된다"

 

이어 윤 전 장관은 "소통부재가 장기화되면 정치위기가 심화된다"며 "얼마 전 이 대통령은 라디오연설에서 국회에서 폭력을 쓴 게 정치위기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 정치위기는 훨씬 전인 작년에 찾아와 지금은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 전 장관은 소통 부족으로 인한 정치위기는 '리더십의 위기'와 '대표성의 위기'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내일신문>이 조사한 걸 보면, 취임할 무렵인 2월 대통령 지지도가 5점 척도 50.2였는데, 촛불집회가 일어난 5월에는 17.6%를 기록했다. 그 후로 6개월간 국정지지도가 20% 초반을 넘긴 적이 없다. 국민의 20% 정도만 지지한다면 나머지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70%의 공간이 비어있다는 것이다. 이게 장기화되면 심각한 위기다. 권력관리의 측면에서 이렇게 빈 공간을 오래 두면 위험하다."

 

윤 전 장관은 "정당 지지도를 보면 한나라당은 30%, 민주당은 10% 안팎이고 지지정당이 없는 사람이 60%에 육박한다"며 "이것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라는 두 대표를 다 불신한다는 의미"이라고 진단했다.

 

"이것은 대표성의 위기이자 의회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다. 작년 국회 파행 훨씬 전부터 한국정치의 위기가 찾아왔고, 이게 (지금까지) 지속돼 왔다. 다수 국민이 국민의 대표로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불신하는 현상이 계속되면 경제위기 극복이 어려워진다. 경제위기 극복의 중심에는 국가지도자와 국회가 서야 하는데 두 대표가 불심받고 있으니 어떻게 경제위기를 극복하나. 그런 점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위기 극복이 어렵다."

 

윤 전 장관은 "요새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여야가 기존 지지세력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한나라당은 촛불시위 전 중도적, 포용적 자세를 바꿔 상당히 강경한 기조를 보이고 있고, 야당도 특정지역에 바탕을 둔 지지세력을 결집시켜 대여투쟁하겠다고 하고 있어 정치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3의 정치세력 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아" 

 

그렇다면 윤 전 장관은 정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이 질문에 그는 "묘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윤 전 장관은 "짧은 청와대 근무경험을 통해 터극한 건 이 세상에 묘수란 없다는 것"이라며 "묘수를 찾아야 하는 다급한 상황일수록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슨 문제이든 국민에게 정직하게 얘기해야 한다. 국민은 관대해서 이해해준다. 잘못을 인정하고 잘하겠다는데 그러지 않겠나? 그런데 이걸 꼼수를 써서 넘어가면 국민은 그것이 꼼수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정부 불심만 키우고 (문제해결은) 훨씬 어려워진다.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 한다."

 

윤 전 장관은 "소통과 통합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생활 속에서 내면화해서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지도자나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선 우선 국민이 진정한 의미의 시민, 근대적 의미의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자기 손으로 뽑은 지도자를 불신하는 것만으로 주권자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제대로 된 사람을 뽑고, 그 이후엔 딴짓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대안이란 '추상적'이거나 '이상적'이라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 점을 의식했든지 윤 전 장관은 "공공선을 바탕에 둔 시민의 존재성" 혹은 "합리적 공중"의 개념을 빌려와 "우리가 합리적 공중이 되는 것만이 한국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 전 장관은 "사회 일각에서는 제3의 정치세력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많이 얘기한다"며 "제3의 정치세력 형성도 중요하겠지만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한 인물을 키워나가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 전 장관은 '제3 정치세력의 출현 가능성'에 적지 않은 기대감을 걸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윤 전 장관은 "정치권 밖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 많다"며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계기가 없었을 뿐이지 이렇게 국민의 불신이 심하면 그런 분들이 뜻을 모아 행동하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지금 의외로 그런 제안을 많이 한다"며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대결의 현대사가 소통부재를 낳았다"
 

윤여준 전 장관은 이날 특강에서 한국사회에 소통이 부족한 배경으로 8·15 해방 이후 진행된 '대결의 현대사'를 들었다.

 

윤 전 장관은 "소통부족을 초래한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만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이는 역사적 연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방 이후 우리의 현대사는 이데올로기의 역사였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대결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해방공간에서 좌우가 충돌했고, 남북이 분단됐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고, 이후 남북은 계속 물리적 충돌을 해왔다. 이후에도 민주 대 반민주 등 소통이 단절된 대결구도의 역사가 이어졌다."

 

윤 전 장관은 "권위주의 시절에는 억업과 배제, 통합 대신 국론통일이 지배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절충이나 타협 등 소통의 문화가 발붙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전 장관은 "권위주의 시절에는 집권당 총재를 겸하는 대통령이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 했다"며 "이것인 한국민주주의를 왜곡시켰는데 권위주의 정권이 끝난 이후에도 이런 현상은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다 알다시피 평생을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분들이자 의회민주주의자였다. 그런데 이들도 취임한 후에는 야당을 성가진 존재, 국정의 돌림돌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여야간 극한 대결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온순한 저도 본회의 농성을 3번인가 했을 정도다."

 

윤 전 장관은 "노무현·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도 그런 잔재가 완전 없어지지 않았다"며 "국회를 민의의 전당보다는 통치의 도구로 생각하는 모습인데 이는 소통·통합의 정치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꼬집었다.

 

또한 윤 전 장관은 "여야가 서로 싸움을 계속하다 보니 국민들이 정치, 정치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국가지도자를 선택할 때 정치 중심에 있는 사람보다 중심에서 멀리 있거나 인연이 별로 없었던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생긴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자칫 잘못하면 검증되지 않는 지도자를 선택하게 된다"며 "지난 대선 때 국가지도자의 중요한 자질과 관련된 것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도곡동과 BBK로 선거를 다 치르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윤여준 #희망제작소#소통#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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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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