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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기대했던 내 잘못인가. 대통령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적어도 책임자는 즉각 파면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경찰 특공대를 투입한 서울 경찰청장은 즉각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러나 용산 참사가 있은 지 사흘이 지났지만 책임자는 파면되지 않았다. 청장은 물러나지도 않고 있다. 대통령은 언론 뒤에 숨고, 붉은 색 넥타이를 맨 청장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말로 국민들의 염장을 질렀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국민의 눈치를 봐가며 여론을 저울질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내정자에게 정식 임명장을 주겠다는 말인가? 그러면서 청장으로 하여금 죽은 5명의 배후를 밝히라고 명령해서 죽은자들에게 역공이라도 펴겠다는 심사인가?

 

지난해 촛불집회가 있었을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들었다고 하면서 사과하던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사과한 후에 유모차를 끌고 촛불 시위에 참가했던 젊은 엄마들까지 비인간적인 행위로 몰아붙이며 다그치던 수법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사과할 필요조차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말인가?

 

느닷없는 지하벙커가 등장하고 서민들을 상대로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은 마치 서민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만 같았다. 가난한 서민들은 언제라도 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테러범쯤으로 인식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런 서민들은 조금만 틈을 보이면 진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은 명백하게 드러난 과잉 진압의 책임을 물어 서울 경찰청장을 파면해야 한다. 그리고 행정안전부 장관까지도 감독 불찰의 책임을 물어야한다. 정말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면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다시는 그런 불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권력의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한다.

 

불행은 늘 사소한 것의 부주의에서 출발한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후회한 들 소용없는 일이다.

 

기독교 장로라니 ‘회개(悔改)’라는 말은 모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금 대통령은 본인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회개해야만 한다. 회개는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신에 대한 약속으로 알고 있다. 국민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진실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해야한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어물쩍 넘기려한다면 그건 대통령의 재앙일 뿐 아니라 국가의 재앙임을 알아야 한다. 시간은 대통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한겨레 필통에도 싣는다


#대통령#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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