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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설하는 오바마
오바마 미국 대통령연설하는 오바마 ⓒ 오바마 대통령 홈페이지

형.

형은 나를 전혀 모르지만, 나는 형을 알게 된 지가 벌써 몇 년째네. 그래서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냥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형은 젊은 대통령이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까 이런 내 스스럼 없음을 즐겁게 받아줄 거라고 믿어.

 

형.

먼저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한 걸 진심으로 축하해. 특히나 전임 대통령이 재임하면서 세계 평화도 많이 손상되고, 경제도 많이 어려워져서 힘든 일이 많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형에게 거는 기대가 클 테니까 그 기대에 꼭 부응하는 좋은 대통령이 되길 바랄게.

 

형.

그 기대를 보여주듯, 형의 취임식에는 역대 최대인파인 200만명이 워싱턴에 모여들었고 전세계에서 10억명 이상 시청자가 TV를 통해 취임식을 지켜봤다고 하더라.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에 사는, 60억 중에 한 명인 나도 새벽에 졸음을 참아가면서 형의 취임식을 봤어. 나는 그동안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챙겨 본 적도 없고, 올해 있었던 우리나라 대통령 취임식도 보지 않은 터라 형의 취임식을 보고 싶어 하는 내가 스스로도 좀 놀라웠어. 먼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형은 미국 사람들 뿐 아니라 형이 이야기했듯 케냐의 작은 마을과 같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기대를 받고 있다는 거야. 형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겠지.

 

형.

그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형에게 관심을 갖고, 형에게 기대를 할까. 미국 대통령이 세계의 대통령이라지만 그래도 남의 나라 대통령인데, 자기 나라 대통령도 아닌 형에게 이토록 마음을 주는 이유는 무얼까? 첫번째 이유는 물론 형이 역사상 초유의 흑인대통령이라는 이유 때문이겠지. 킹목사가 죽음과 맞바꿔가면서까지 외쳤던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세상"이라는 꿈이 이루어졌다는 흥분과 설렘 때문일거야. 흑인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뿌리깊은 미국의 두려움을 이겨낸 역사의 전진에 대한 떨림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나는 형이 피부색만 흑인이 아니라 형의 조상들과 아버지가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깊이 보듬는, 그리고 흑인뿐 아니라 여러가지 편견과 잘못된 인식으로 굳어져 버린 많은 차별과 반목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 그런 면에서 형이 어제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가 교육을 받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했던 말을 실천하면 좋겠어. 그리고 그런 생각이 미국이 영향을 주고 있는 세계를 대할 때도 나타났으면 좋겠어.

 

형.

형은 묻지마 식으로 괴물처럼 커온 미국식 시장주의와 힘만 믿고 펼쳐온 일방주의식 외교로 미국과 세계가 힘들어 하는 가운데 대통령이 됐어. 다행히도 형은 이런 일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미국이 가진 힘이 아니라 지도력으로 세계와의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형의 생각에 나도 동감이거든. 내가 형의 취임식을 새벽에 지켜 본 것도 형에게 이런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 형은 어제 이슬람세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다른 점 때문에 갈등하고 반목하기보다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대화하고 찾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 나는 그 말이 제일 맘에 들더라. 특히나 힘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와 공존을 이야기할 때 멋있는 법이잖아. 아무쪼록 형이 미국대통령하는 동안 세계가 좀 더 평화로워지고, 함께 한걸음씩 발전하면 참 좋겠다.

 

형.

그래서 한가지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그건 형이 대통령하는 동안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지금의 시대가 나, 내 가족, 내 조직과 같이 나의 이해관계가 걸린 것으로 '이웃'의 범위를 한정해서 살아가는 '벤뎅이 속알딱지' 같은 때잖아. 그래서 다른 집 아이가 어떻게 되든 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짓밟고 올라서는데 혈안이 되어있고, 내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얼마든지 죽여도 되는 무서운 세상이 된 것 같아. 냉정하게 형은 내 나라 대통령이 아니라 엄연히 미국 대통령이야. 그러니까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인 것이 당연하겠지.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마찰을 일으키고 갈등하게 되는 일도 있을거야. 뭐 그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마음 상해 하지 않을게. 그렇지만 무슨 일을 하든 내 이웃은 내 가족, 내 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세계인이라는 넓은 시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좀 더 대화하고, 좀 더 배려하고, 좀 더 사이좋게 지내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특히나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의 대통령이니까 형에게는 더욱 중요한 덕목인거 같아. 형이 이웃의 지평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넓혀간다면 전쟁과 테러, 가난과 굶주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형.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이웃의 지평을 넓히기는 커녕, 자기를 뽑아준 국민마저도 자기 말 안듣는다고 잡아가고,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는 일이 벌어져서 마음이 참 아파. 그래서 형이 말한 대화와 공존 그리고 보편적인 인권 이야기들이 더 가슴에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부디 건강하게 미국과 세계를 위해 기대 이상의 업적을 남기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면 좋겠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잖아. 그러니까 더 열심히 일해야지 않겠어? 언젠가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도 형이 오겠지. 그렇게 전세계로 돌아다니면서 갈등과 반목을 뿌리지 않고, 평화와 인권을 실어나르는 형의 모습을 기대할게.

 

형.

마지막으로 내가 살고 있는 한국 이야기 좀 할 게. 형도 알다시피 한반도가 분단이 되어 있고, 갈등하고 있잖아. 특히 미국도 이런 상황에 깊이 개입이 되어있기에 큰 책임을 가지고 있어.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힘겨운 노력으로 조금씩 조금씩 갈등을 화해와 협력으로 바꾸어왔어, 그런데 그 일들이 요즘 힘에 부치는 것 같아. 특히 북한 핵문제가 내가 살고 있는 땅의 평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형의 전임 대통령이 대책없이 겁만 주고, 으르렁대다가 결국 정책방향을 선회해서 뒤늦게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는 중이지.

 

형.

형에게는 한반도가 미국의 이익에 관련된 작은 나라에 불과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나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곳은 삶의 터전이고, 피땀 흘려 민주주의와 경제를 발전시켜 온 긴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이야. 그래서 진심으로 부탁할게. 앞으로의 북한 핵 문제를 풀어가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일해주기를 바라. 다시는 이 땅에 전쟁과 갈등이 일어나지 않고,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세계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형도 일조해주기를 바랄게.

 

형.

이제 취임했는데, 내가 말이 너무 많았지? 더군다나 내가 미국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그래도 그만큼 형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즐겁게 받아줘. 다 형이 자랑스러워서 그런거니까 너무 부담갖지는 말고, 앞으로 하나하나씩 잘 해나가길 바랄께. 물론 내가 형한테 이야기하고 기대한 것들이 우리나라 대통령에게서도 보였으면 좋겠다. 앞으로 계속 형이라고 불러도 되지? 그럼 안녕.  

덧붙이는 글 | 권오재 블로그 '오재의 화원'(http://vacsoj.tistory.com)에도 실었습니다.


#오바마#미국대통령#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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