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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대운하 사업의 사전 단계'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난달 15일 기본 계획을 발표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경북 안동, 전남 나주 등지에서 착공식이 열렸고 각 지자체는 정부가 약속한 막대한 예산을 타내기 위해 하천종합개발 기본설계 계획을 앞 다퉈 제출했다. 이 중 대다수가 이미 계획하고 있던 하천정비사업을 4대강 정비사업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의 효과로 선전했던 ▲ 경제위기 극복 ▲ 홍수 및 가뭄 대비 ▲ 지역경제활성화 등이 달성될 수 있을지 여부는 검증되지 않았다. 심지어 하천정비사업에 앞서 시행되어야 할 유역종합치수계획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이번 4대강 정비사업에 배정된 예산 14조원 중 낙동강 유역에만 6조원이 넘는 예산이 배정돼 있어 한반도 대운하 사전 단계라는 의혹만 더 짙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14일 하루 동안 <생태지평연구소>, <녹색연합>, <환경정의> 등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4대강 정비 사업구간으로 지정된 경북 상주시에서 칠곡군까지의 낙동강 유역 일부를 직접 둘러봤다. 또 대구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만나 현재 추진 중인 낙동강 정비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경북 상주 상풍교] 낙동강 '정비'는 이전부터 계속돼 왔다

 

경북 상주시 사벌면과 예천군 풍양면을 잇는 상풍교.

 

지난 12월 31일자로 낙동강 하천정비사업이 완료된 구간 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집중호우 및 홍수시기에 발생한 기존 제방의 취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제방의 높이를 약 2m 높이고 폭을 두 배 정도 보강하는 공사가 진행됐다.

 

제방은 완성됐지만 공사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준설 작업 등으로 교각 뿌리가 휑하니 드러난 상풍교 아래에는 제방공사에 투입됐던 덤프트럭 4대가 주차돼 있었고, 제방 아래 공사로에는 트럭과 중장비가 오갔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제방마루의 폭은 약 7m. 덤프트럭 2대가 오갈 수 있을 정도다. 생태지평연구소 명호 연구원은 "홍수위가 각 하천마다 다른데도 일괄적으로 제방의 폭과 높이를 보강했다"며 "지난 2007년 8월 감사원도 똑같은 사안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지난 2007년 건설교통부와 부산국토관리청 등을 상대로 '하천관리·정비사업 추진실태'를 실시한 결과 같은 점을 지적했다. 사실 제방에 '누수방지공법'을 적용한 경우에는 제방의 폭을 4m 정로만 설치해도 홍수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건교부가 일괄적으로 제방의 폭을 7m까지 설치하도록 기준을 정해 불필요한 제방공사가 이어지고 예산이 낭비되게 된 것이다."

 

명호 연구원은 이어, 제방보강공사가 또 다른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불필요하게 높아진 제방 때문에 집중호우 시 물이 빠지지 않아 주변 농지가 물에 잠기는 경우가 발생하고 한쪽의 제방만 높아지면 물길이 달라져 반대편의 강변이 침식되기 때문에 그쪽의 제방도 보강 공사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상풍교를 떠나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출입통제 표지가 선명한 강제배수시설과 풍양면 쪽 강변에서 진행 중인 공사현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경북 상주시 경천대] "지금 이 강을 손봐야 할 이유가 있나?"

 

두 번째 목적지인 상주시 경천대 관광지는 상풍교와 그리 멀지 않았다.

 

경천대 관광지는 낙동강 1300리 물길 중 경관이 가장 좋기로 유명하다. 전망대 위에 올라서면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기암절벽을 굽이쳐 지나가는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명호 연구원은 "지금은 강물이 얼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지난 4월 답사 당시에는 강 속의 물고기들도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고 말했다.

 

이날 경천대 전망대에 오른 관광객들도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대구에서 온 정연하씨는 "이런 곳을 파헤치겠다는 정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 모습야말로 1백만불짜리 가치가 있다"고 단언했다. 정씨는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강을 개발해서 도움 받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외국은 개발한 곳도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천대 관광지에서는 4대강 정비사업에 포함된 자전거 도로의 '미래'도 엿볼 수 있었다.

 

상주시가 지난 2007년 발표한 '낙동강 자전거 여행길' 중 일부인 이 도로는 상풍교 인근에 조성된 제방부터 경천대로 향하는 산길을 따라 만들어지고 있었다. 폭 4m의 자전거도로 양 옆으로는 보도블록과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다. 양 옆에 조성된 보도블록이 산 능선과 자전거 도로를 완벽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녹색연합의 최승국 사무처장은 "멀쩡한 산길을 끊어 도로를 내놨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도로를 이용할 것인지 의문이다"며 혀를 끌끌 찼다.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은 "14조원이나 드는 예산을 들여 강을 손보겠다면 그만큼 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실제로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며 "수조원을 들여 공사를 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경북 구미시] 철새 쫓아내고 습지 헐어 종합운동장 만든다?

 

경북 구미시 지산동부터 고아읍 괴평리까지 이어지는 4.26km 구간은 4대강 정비사업 선도사업지구다.

 

지난 11월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구미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 자료를 살펴보면 구미시는 하천부지 63만8천평을 개발해 종합운동장 1곳, 축구장 10곳, 야구장 2곳 등 체육시설들을 집중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업에 소요될 예산은 323억원.

 

김상화 강살리기 네트워크 공동대표는 군데군데 현수막과 깃발이 꽂힌 하천부지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손이 향한 곳은 낙동강 유역 내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인 해평습지였다.

 

"지난 1999년 겨울 처음 해평습지를 찾은 흑두루미가 처음 200여마리에서 이제 2000~4000마리 정도로 늘어났다. 그래도 작년 5월까지 환경단체와 구미시가 협의를 통해 지난 99년부터 해평습지를 철새도래지로 보호해왔다. 그런데 이번 정비계획에는 이런 해평습지 일부 지역까지 포함돼 있다. 해평습지와 그 배후인 하천부지가 변형된다면 철새들이 다시 다른 곳으로 쫓겨나야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번 4대강 정비사업이 얼마나 연구나 검증이 안 된 상태에서 추진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김 대표는 이어, "지금의 강 살리기는 오로지 사회성, 경제성, 문화성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진정한 강 살리기는 생태성, 환경성, 하천성 등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수질 개선을 위해 하천정비사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사실 낙동강의 경우 수질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며 "오히려 4대강 정비사업은 강을 죽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곳곳에 웅덩이... "이대로는 건설세력만 이득 얻을 뿐"

 

 

답사단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 인근 강변도로에서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구미시 상류까지 굽이쳐 흐르던 낙동강은 이곳에서 물길이 군데군데 끊겨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무분별한 골재채취가 낳은 결과였다. 골재채취가 완료된 곳에는 파이프가 흉물처럼 남아 있었고 임의로 만들어진 보에 갇힌 강은 호수처럼 변해 있었다.

 

명호 연구원은 "골재채취의 경우, 채취량이 50만㎥를 넘으면 환경성영향평가를 받기 때문에 대부분 업자들이 그보다 적은 채취량을 신고해 평가를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답사단이 있는 현장 역시 신고된 골재 채취량은 43만 7천㎥였다.(*건조한 모래골재 1㎥의 경우, 약 1600 ~ 1700kg 정도 된다)

 

김 대표는 "현재 칠곡군 지역에 채취하고 있는 골재량만 연간 160만㎥ 정도 되는데 업자들이 골재채취 이후 하상과 경사도 복원에 소홀해 이렇게 된 것"이라며 "무분별한 골재채취는 하상과 하천망, 취수량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저 곳에 있는 돌보는 이곳의 하우스 농가 주민들이 요구해 만든 것이다. 골재를 채취하다보면 하상이 낮아지고 지하수맥이 교란되기 때문에 정작 인근 유역 농민들이 써야 할 농업용수를 얻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골재채취 업자들이 강수량이 풍부한 여름에는 돌보를 막아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강수량이 적은 겨울에는 돌보를 일부 터놓는다."

 

김 대표는 이어, "지자체는 재정자립을 위해서 이 같은 업자들에게 계속 허가를 내주고 있다"며 "강이 퇴적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골재채취가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난개발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볼 일 보러 갈 때와 나갈 때 태도가 다르다더니 지금 골재채취 업자들이 하는 모습이 딱 그 모양이다. 이렇게 문제가 있다면 정부는 그 문제를 사회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검증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4대강 정비사업 역시 예전 운하 사업 때 책정했던 14조원을 가지고 밀실에서 판을 짠 것 아닌가. 이런 식의 사업으로는 건설업자 등 기득권에게만 이득이 될 뿐이다."

 

[대구광역시 시민단체] "4대강 정비사업, 실체가 없어 대응하기 어려워"

 

앞서 살펴본 경북의 지자체들과 마찬가지로 대구광역시도 이번 4대강 정비사업을 경기활성화의 기회로 보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대구광역시는 지난 7일 신천·금호강 종합개발 기본설계 최종보고회를 갖고 이 지역을 4대강 선도사업지구로 선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12월 작성된 '대구 낙동강 정비 및 연안개발 기본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논천·위공지구를 물류항 겸 복합산업단지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의 주운계획까지 포함돼 있어 이번 4대강 정비사업이 '운하 1단계 사업'이라는 의혹이 더욱 짙어진 상태다. 

 

이와 관련해 대구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2월 초 내 4대강 정비 사업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정비사업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외의 구체적인 대책은 세우지 못한 상태다.

 

구태우 대구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현재 하천정비계획 중 일부인 수중보 설치, 준설작업 등이 기존 운하 사업 계획과 같은지 여부를 보고 있는 중이지만 구체적인 정비 계획이 나오지 않아 대응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구 사무국장의 말처럼 문제가 된 12월 보고서에서도 '주운계획'은 "하천정비 우선 추진 후 주운 필요성이 입증되면 영남권 주민의 공감대가 형성된 후 주운 방안을 검토한다"고 완곡하게 표현돼 있다.

 

이와 관련해 김해동 계명대 교수는 "4대강 정비사업은 실체가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밝혔다.

 

"배가 있으면 운하고, 배가 없으면 정비사업이라고 말할 정도로 4대강 정비사업과 운하 사업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에게 '정비사업이 사실상 운하와 관련돼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면 이들은 '필요성이 입증되면 한다고 했지, 지금 운하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는 식으로 빠져나간다. 현재 4대강 정비사업의 선도사업으로 예정된 것들도 실체가 없다. 다 지자체가 기존에 추진하던 하천정비 사업계획을 4대강 정비 사업에 넣은 것들이다."


#4대강 정비사업#한반도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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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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