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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분양 피해자들
사기분양 피해자들 ⓒ 최병렬

 

자기 집이라고 믿었던 아파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실제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을 2008년 마지막 날 만났다. 바로 안양 비산동 대림조합아파트 사기분양 사건 피해자들이다. 12월 31일 오후 4시경,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비상 대책위 사무실을 방문했다.

 

지난 9월 20일, 안양시에 대규모 사기분양 사건이 발생했다. 조합장 김모씨가 임의 조합원 을 모집한다는 명목으로 대림산업과 부동산·브로커들과 짜고 아파트를 이중 분양한 것이다.

 

이날 김씨는 조합 사무실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김씨는 이런 방법으로 무려 140여 가구를 이중 분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피해액만도 약 360억 원에 이른다.  

 

피해자들은 생각보다 우울한 표정은 아니었다. 몇 억씩 사기당한 사람들치고는 표정이 밝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피해자 약 20명이 웃는 얼굴로 반겨줬다. 하지만 질문을 하자마자 쌓였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사기분양 피해자 정아무개씨는 '한 해 마지막 날인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믿을 놈 하나도 없다. 대림산업·안양시 모두 나쁘다. 대림은 근본적으로 나쁘다. 하지만 더 미운 것은 안양시다. 안양시는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사과 한마디 없었다. 또, 유감 표명도 없었다. 안양시장은 담당 공무원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는데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관공서를 믿으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정씨가 참았던 화를 터뜨리고 있는 이유는 조합장에게 돈을 사기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림산업으로 입금시킨 돈마저 대림이 순순히 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안양시장이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2일, 안양시 공무원(6급)이 구속됐다. 사기사건 피의자 새로본건설 대표 김모씨로부터 아파트 사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다. 하지만 이필운 안양시장은 배찬주 건축국장을 통해 짧은 유감 표명만 했을 뿐,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돈 돌려줄 테니 더 이상 책임 묻지 말라?

 

 지급확인서와 반환 신청서
지급확인서와 반환 신청서 ⓒ 이민선

사기분양 사건이 터지자마자 대림산업은 "대림 통장으로 입금된 돈은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림산업은 그 대신 피해자들에게 수긍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된 반환신청서에 서명할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피해자 대다수는 아직까지 돈을 찾지 않고 있다.

 

대림산업은 돈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피해자들에게 '대림지역주택조합과 대림산업주식회사에 더 이상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는 반환신청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대림산업은 피해자들이 대림산업으로 입금시킨 돈을 '오류입금'으로 표현했고 반환신청서 제출처를 '대림산업'과 '비산동 대림지역주택조합' 공동명의로 표기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한다. 공동 명의가 된다는 것은 영수증이 두 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대림산업은 영수증도 두 개를 요구했다고 한다. 대림산업으로 한 개, '비산동 대림지역주택조합'으로 한 개.

 

피해자들은 이 문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대림지역주택조합'은 빼달라고 요구했다. 조합에 대한 각종 민형사상 소송에서 불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합명의가 있으면 재판정에서 혹여 피해자들과 조합이 이미 합의를 했다고 오인받을 수 있다고 한다.

 

피해자 정씨는 이 문제를 설명하며 "대림산업이 이렇게 치사하게 나올 줄 몰랐다" 며 분통을 터뜨렸다.

 

돈을 돌려주는 날짜도 대림산업 마음대로 정했다. 1차 지급 날짜는 지난 12월 9일에서 10일 이틀간이었고 2차는 12월 16일에서 17일까지였다. 2번에 걸친 지급 기간 중, 대림이 요구한 문구가 있는 반환신청서에 서명하고 돈을 찾은 피해자(비대위 소속)는 5명뿐이다. 대림산업에 분양대금을 입금시킨 비대위 소속 피해자는 63명인 점을 감안하면 10%도 채 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반환 신청서에 도저히 서명할 수 없었다. 당연히 돌려주어야 할 돈을 돌려주면서 대림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대림에 입금시킨 돈을 '오류입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대위 주장에 대해 대림산업 김아무개 부장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사실과 다르다"면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문구를 넣은 것은 우리 회사에 입금된 돈을 돌려받은 뒤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는 일반적인 뜻"이라고 밝혔다.

 

또 지역조합과 대림산업 공동 명의로 표기하라고 한 것은 "재건축 자체가 조합이 주체가 되어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조합 명의를 빼달라는 주장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림 명의의 통장이지만 재건축 자체도 조합에서 한 것이고 통장도 조합에서 위탁관리했기 때문이다.

 

사기당한 돈 행방 찾아야 하는데... 아직 오리무중

 

 비산동 아파트 조감도
비산동 아파트 조감도 ⓒ 대림산업

돈을 돌려받기 위해 주민들은 감옥에 있는 조합장 김씨에게 지급확인서까지 받아와야 했다. 대림에서 "돈을 돌려받으려면 조합장 지급확인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지난 12월 4일, 감옥에 있는 김씨에게 달려가 지급확인서를 받아왔다. 

 

지급확인서는 피의자 김씨가 자필로 작성했다. 김씨는 "임의 분양 등 이중분양 피해자 모두에게 사업주체인 조합과 대림산업㈜ 명의 통장으로 입금된 피해자 입금분 및 조합 확인서로 명시되어 있는 금액(이자 포함)을 공사도급계약서상의 지급순위보다 최우선하여 지급하는 것을 확인합니다"라고 썼다.

 

피해자 정씨는 '조합 확인서로 명시되어 있는 금액'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문맥으로 보아 피의자 김씨가 조합 명의로 영수증을 써주고 피해자들에게 받은 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돌려주라는 것을 보면 김씨가 대림산업에 입금시켰을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하지만 대림은 피의자 김씨에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전한다.

 

이 문제에 대해 대림산업 김아무개 부장은 "왜 그런 문구를 써넣었는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피의자 김씨가 본인이 개인적으로 받은 돈마저 대림에게 돌려주라고 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씨가 개인적으로 받은 돈의 행방은 대림에서도 알 수 없고 검찰 수사를 통해서 밝혀져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이 사기당한 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찰과 검찰이 수사해서 돈의 행방을 찾는 길 뿐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경찰과 검찰은 돈의 행방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연말인데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고 어째서 사무실에 나왔느냐"고 묻자 피해자 이아무개씨는 "특별히 할 일도 없고요.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혹시나 좋은 소식이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도 피해자들은 검찰과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대림산업 이중분양 사기 사건은?

사건은 지난 9월20일 터졌다. 9월20일은 비산동 대림 아파트 입주자 사전 점검일 이었다. 피해자들은 이날 자신들 이름이 입주자 명단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날 조합장 김씨는 사무실에서 피해자들에게 책임 추궁을 당하다가 경찰에 연행된다. 이틀 후인 22일에는 시행사인 새로본 건설 대표 김씨(48)도 조합장과 공모한 혐의로 긴급 체포 됐다.

 

피의자 조합장 김씨는 임의 조합원을 모집한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들을 현혹시켰다. 조합장은 원 조합원에 결원이 있을시 19세대까지 임의로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다. 김씨는 임의 조합원 100세대를 모집했다.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이중, 삼중 분양을 한 것이다. 안양 인근 부동산을 통해 계약을 한 다음 계약금을 조합 통장으로 입금 시키게 하는 방법이었다.

 

또, 직원용이란 명목으로도 피해자들을 현혹시켰다. 일반 분양 아파트 중 직원용으로 빼놓은 것이 있는데 특별히 분양해 준다고 속인 것이다. 이 말에 속아 계약한 사람도 약38명이나 된다. 대림 아파트는 총 486가구다. 조합원용 282가구 일반분양은 204가구다. 비산 대림아파트는 재개발 방식 개발 이었다.

 

지난 11월12일에는 새로본 건설 대표 김 모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안양시 공무원 최씨(45세, 6급) 가 구속됐다. 지난 2007년 9월 중순께 안양시청 휴게실에서 대림주택조합아파트 시행 대행사 대표 김씨(48·구속)로부터 아파트 사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5천만원을 받은 혐의다.

 

대림산업 직원도 연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12월4일, 시공사 대림산업 전 주택사업팀장 김모(44) 씨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전 팀원 홍모(41) 씨를 불구속입건했다. 사기분양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아파트를 불법 분양받은 혐의(배임수재)다. 하지만 대림 직원에게 내려진 구속영장 신청은 기각됐다.

 

시공사 대림산업은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사전에 이중분양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도 피해자다" 라고 줄곧 주장해 왔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대림산업 공신력을 믿고 계약했고 대림통장으로 입금도 시켰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며 대림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대림아파트 사기분양 사건은 재개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총망라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사건이다. 공신력을 담보할 수 없는 조합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됐다는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또, 건축 관련 사기사건에는 필히 공무원이 연루된다는 '풍문' 이 증명된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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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안양시 #대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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