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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경기가 어려워져서 판매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죄송한데요. 당분간 할머니께서 할 일이 없네요. 이제 그만 나오시고, 내년 봄에 일 생기면 연락 드릴테니까 그 때 다시 나오세요."

 

한참을 뜸 들이다 어렵게 말씀을 드렸다.

 

 "회사가 어려우면 당연히 그만 나와야죠. 어쩌것습니까?  팀장님이 나오지 말라면 나오지 말아야죠....."

"생활비는 어떻게 하세요? 누구 식구 중에 돈 버는 분 있으세요?"

"아무도 없당께요. 어쩌것어유? 어디든 일거릴 찾아봐야지유.... 저희도 예전에는 잘 살았어요. 자식하나 잘 못 둬 가지고....흐흑...."

 

정할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흐느낌으로 바뀐다.

 

    정할머니는 우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시는 분인데, 올해 연세가 68세시다. 고운 얼굴에 한눈에 뵙기에도 궂은일을 할 분 같지 않아 보였던 게 정할머니의 첫인상이었다. 1년 전부터 우리 회사의 빈 통을 세척하고 스티커 붙이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해 오셨는데, 꼼꼼한 일처리와 성실함으로 빈틈이 없을 뿐더러 젊은 사원들에게도 항상 친절한 미소와 따뜻한 말로 덕담을 건네주셔서 모두가 좋아했던 이웃집 할머니 같은 분이셨다. 간식이라도 싸 올라치면 젊은이들 고생 많다며 사과 한 쪽도 혼자 드시는 법이 없이 나누어 주셨던 자상한 할머니셨다.

 

    정할머니는 공직에 있다 정년퇴직하신 남편과 부족한 것 없이 넉넉한 생활을 해 왔으나, 외동 아들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IMF 이후의 경기하락에 따른 자금압박에 의해 연쇄도산이 발생하면서 남편분의 퇴직금, 집, 땅까지 전재산을 모두 날리게 되었고, 게다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이후에 며느리의 가출로 손자, 손녀의 양육까지 떠맡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아들도 무직인 상태로 나가 있고, 손자를 포함한 4식구의 생활이 오직 정할머니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라 할머니의 소일거리나 용돈벌이 수준으로 생각하고 말씀드렸는데, 실상은 육칠십 만원 남짓한 돈으로 집세 내고, 남은 돈으로 생활비를 하고 있었으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신세한탄을 하시며,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시는데, 회사 입장에서 무작정 일도 없는 판국에 월급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세계적인 경기 하락에 따라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처지라 선뜻 이웃돕기를 하자는 말이 안 나왔으나, 할머니의 어려운 처지가 알려진 이후에 팀원들에게 이웃돕기 화두를 던지고 보니 십시일반 많은 사원들이 동참해 주었다. 자율적인 참여 속에 20여 명의 팀원들이 참여하여 모은 돈이 근 100만원에 달했다. 모은 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할머니께 전달되도록 하였다.

 

    지난 월요일에 정할머니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였다. 인자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예쁘고, 씩씩한 손자, 손녀까지 어려운 가정형편이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가족이었다. 학교성적도 뛰어나 장학금을 받고 있는 손자(초등 6년)는 한때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돈을 벌어 할머니 고생 그만시키겠다고 하여 할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었으나, 이제는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겠다는 다부진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아이들만 바라보며 사신다는 정할머니의 넋두리가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능성 높은 희망이기에 기쁘기도 하였다. 정할머니께서 팀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며 다시 눈시울을 붉히시니 나까지 짠해진다.

 

   학창시절에는 매년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꼭 있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쌀도 가져가고, 돈도 모아 가져갔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 언제부턴가 연말 이웃돕기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남의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내 가족, 내 것에 대한 집착은 커졌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과 소외된 이웃에 대한 배려는 점점 사라져버렸다. 정할머니 돕기 행사는 팀원들과 함께 한 일회성 이웃돕기 행사였지만 정할머니 보다 오히려 마음이 얼어있던 나와 팀원들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준 일이었다.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볍게 느껴지고, 차가운 겨울바람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새전북신문에도 기고하였습니다.


#불우이웃돕기#한솔케미칼#과수팀#황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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