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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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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사원의 부조(浮彫)

지난 2월 6일부터 2월 10일까지 인도네시아를 다녀왔다. 인도네시아 정부 초청으로 족자(Yogyaeta)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이 자기가 안내를 할 테니 다녀가라고 아비를 불렀다. 동남아, 특히 적도를 걸친 상하(常夏)의 열대지방은 여행한 적이 없기에 선뜻 아들과 함께 그의 청에 응했다.

4박5일 동안 강행군으로 많은 걸 보고 돌아왔다. 가장 감명 깊고 내 폐부를 찌르며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은 족자 시내에서 42킬로미터 떨어진 보로부두르(Candi Borobur)사원에서 본 석가의 생애를 그린 한 부조(浮彫, 릴리프)였다. 석가의 전생 설화를 담은 그 부조는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새였다.

 보로부두르 사원의 부조
 보로부두르 사원의 부조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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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보로부두르사원을 소개하는 영상관에서 딸의 통역으로 전해들은 그 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에 몸통이 하나고 머리가 둘인 새가 있었다. 한 머리의 새는 날마다 좋은 음식만 먹고 살았다. 그런데 다른 한 머리의 새는 나쁜 음식만 먹거나 굶주릴 때가 많았다.

어느 날 늘 나쁜 음식만 먹거나 굶주리는 새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니 매우 화가 났다. 나는 왜 날마다 악식을 하거나 굶주리는가?  여러 날이 지나도 자신의 처지가 개선되지 않자 그만 독이 든 음식을 먹었다. 독이 몸통으로 내려가자 다른 머리의 새조차도 그만 죽어버렸다. 결국 몸통은 하나고 머리가 둘인 새는 모두 죽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이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바로 몸통이 하나고 머리가 둘인 새가 우리나라의 처지가 같다고. 일제로부터 해방의 기쁨도 몇 날뿐이었다. 38선이라는 쇠사슬이 우리 국토를 두 조각냈고, 그로 인해 원래 한 나라인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된 두 나라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다. 전쟁으로 수백만의 전상자를 냈고, 일 천만 이산가족들이 한평생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

 전방 소대장시절의 필자
 전방 소대장시절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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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지금도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살고 있다. 나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야만시대를 살아온 느낌이다.

그 당시 어느 날 밤 홍수로 강물이 역류하는데 괴물체가 남쪽으로 밀려왔다. 그걸 본 초병의 신고로 전부대가 비상이 걸렸다. 조명탄을 쏘아 올리며 전 부대원이 몇 시간 사격 끝에 잡은 괴물체는 홍수에 떠내려 온 송아지였다.

다행히 10여 년 전부터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그렇게도 그리던 금강산 뱃길도 열리고 경의선도 연결되어 개성을 오가는 평화 속에 언젠가 다가올 통일의 그날을 기다릴 즈음, 정권이 바뀌자 이즈음 역사의 수레바퀴가 되돌아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열린 금강산 길도 끊어지고, 남북교류의 상징 개성공단 가는 길도 점차 좁아져 간다는 보도다. 애써 이룬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평화(平和)'의 의미

'평화(平和)'의 사전 풀이는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다. 평화(平和)라는 한자말을 나누어 풀이 하면 ‘평(平)’은 “고르다”요, 화(和)는 벼 화(禾)와 입 구(口)의 합성자로 화(和)는 곧 입에 밥을 가득하다는 뜻으로, 평화란 모든 백성들이 골고루 나눠먹을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목회자인 오랜 친구를 만났더니, 그는 전 정권이 북한에 너무 많이 퍼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핵이 되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북한을 돕지 말아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산마을에서 만난 사람도 왜 우리가 북한에 쌀이고 비료를 퍼주었느냐고, 게거품을 물면서 지난 정권을 성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력으로 북한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더 이상 듣기가 거북하여 내가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모두 잿더미가 될 거라고 하였더니, 원자탄을 한두 방 북한에 떨어뜨리면 아주 쉽게 끝날 거라는 무서운 말도 서슴지 않았다.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이 생전에 세상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고 하시더니, 이제야 그 말씀이 끄덕여진다. 우리 주변에는 평화의 참 뜻도 모르고, 해방 후 50년 동안 냉전교육에 골수까지 매파가 된 사람이 너무 많다.

지난 16일 노벨평화상 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 갔더니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러 제언들이 쏟아져 오랜만에 큰 위안이 되었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국대사(오른쪽 두번째)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서 '미국 신정부와 한반도 평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국대사(오른쪽 두번째)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서 '미국 신정부와 한반도 평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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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일시적으로 주춤할 수는 있지만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화해 협력의 길에 들어선 남북관계가 다시 불신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날에도 많은 시련을 이겨냈듯이, 앞으로도 남과 북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화해 협력을 통해 평화와 통일의 길로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 임동원(전 통일부장관)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북한과 무엇을 주고받았습니까? 첫째, 우리는 김영삼 정권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권까지 13년 동안 쌀과 비료 등 20억불 상당을 북한에 주었습니다. 연평균 1억 5000만 불, 국민 1인당 5천 원 정도가 됩니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던 서독은 20년 동안 동독에 600억불을 주었습니다. 연평균 32억불을 준 것입니다. 우리의 20배입니다. 많이 줄수록 교류가 왕성하게 되어 동독 사람들은 서독을 동경하게 되고 공산당을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동독은 서독에 자발적으로 합류해서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둘째,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긴장완화와 평화를 얻었습니다. 50년 동안의 냉전에서 화해 협력의 시대의 길을 연 것입니다. 우리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북한 영토 내로 진출했습니다. … - 김대중(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 참석하여 '남북간 대화와 협력을 복원시키자' 주제로 연설을 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 참석하여 '남북간 대화와 협력을 복원시키자' 주제로 연설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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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이 겨레를 구원하는 길

두 시간 남짓 계속된 여러 연사(제임스 레이니 주한미국 대사, 이토 나리히코 일본 중앙대 명예교수 등 4인)들의 강연을 듣는 내도록 내 머릿속에는 보로부두르사원 회랑 벽면에 새겨진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새가 마침내 죽었다는 부조의 이야기가 떠나지 않았다.

일찍이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에서는 "전투하지 아니하고 적군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것이다(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하여, "싸워서 이기는 것은 최하 책이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 책이다"라고 최상의 승리는 평화로 상대를 굴복시킴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분단에 책임이 있는 나라의 사람보다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더 반평화적이고 호전적임에 어안이 벙벙하다. 냉전으로 나라가 망한 뒤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반평화 반통일 세력이 날뛰는 것을 막는 게 바로 이 나라, 이 겨레를 구원하는 길이리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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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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