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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스런 손길로 손님의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강의하는 이발사 김창호(66)씨
 정성스런 손길로 손님의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강의하는 이발사 김창호(66)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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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관세음보살이 아니고 남무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나무 관세음보살 그러더라고요, 그거 아주 잘못 된 겁니다. 옛날에 몇 번 만났지만 청담스님의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좋은 말씀이 참 많습니다."

이번에는 불교 강의였다. 그렇다고 이곳이 어느 사찰이거나 불교경전을 강의하는 대학은 아니다. 불과 서너 평쯤의 작은 공간, 종로 이용원이었다. 강사는 이발사 김창호(66)씨, 수강생은 이발하는 손님들.

서울에서도 한 복판인 종로2가 보신각 울타리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이 작은 이발소가 이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은 것은 꽤 오래 전 부터다. 십여 년 전 한때 단골 이발소였던 이곳을 지나는 길에 우연히 들른 것은 지난 15일 저녁때였다.

이발소의 모습은 입구가 달라진 것을 빼면 십여 년 전이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비좁은 공간에 이발의자 세 개가 놓여있고 대기석에 두 명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며 말없이 이발에만 열중하는 다른 이발사들, 그리고 부지런한 손놀림 속에서도 쉬지 않고 입으로는 열심히 강의(?)하는 김창호(66)씨의 모습도 변함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여전히 건강하시고, 일하면서 강의 하는 모습도 변함없군요?"
"아! 예, 누구신가 했더니 더 멋쟁이가 되셨네요, 아직도 직장에 다니시고요? 들어와 좀 앉으세요?"

십여 년 만에 찾았는데도 주인 김창호씨는 옛 단골손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10여 년 전 옛 단골 이발소를 찾다

내가 이 종로이발소 단골이 된 것은 부근 직장에 근무할 때였다. 이발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다른 이발소와는 달리 이곳은 우선 기다리는 시간 5~10분에 이발하는 시간도 5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좋았다.

두 번째로 좋은 이유는 이발료가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보통 이발료가 1만원에서 1만 5천원일 때 이곳은 2천원이었다. 하긴 지금도 이곳은 이발료가 4천원이었다. 염색까지 해야 9천원. 이곳보다 더 싼 이발소가 있느냐고 물으니 "남들이야 얼마를 받건 이곳은 이곳만의 요금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좋았던 이유는 주인 이발사의 구수한 입담이었다. 이발소에 들어서면서부터 듣게 되는 주인 김창호씨의 강의는 이발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그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김창호씨가 근무하는 시간이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니까 밥을 먹는 시간이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모두 김씨의 일하는 시간이자 강의시간이었다.

"이 이발소를 찾는 손님들은 어쩌면 김창호씨의 강의가 좋아서 찾아오는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강의를 듣다가 슬쩍 그를 추켜세워 보았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이발소는 정신적인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찾아오는 것은 맞습니다."

그는 자신의 강의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손님들은 과연 그의 강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발하는 시간 내내 강의하는 30년 전통의 저렴한 종로이발소 주인 김창호씨

"구수하고 좋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이발만 한다면 그것도 좀 딱딱하고 그렇잖아요?  저 양반 아는 것도 많고 재미있는 분입니다."
"모르는 것이 없어요, 만물박사라고나 할까요? 정말 유식해요."

이발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몇 사람에게 묻자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쩔 땐 좀 짜증 날 때도 있어요,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로 너무 유식한 척 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도 잠깐이니까 그냥 들어주고 나오죠, 허허허."

벌써 5년째 단골이라는 50대 신사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역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창호씨는 자신의 강의와 30년 전통의 이 이발소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루 종일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쉬지 않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저력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으니 '책'이라고 한다.

살고 있던 건물을 헐고 신축을 잘못하는 바람에 전에 거주하던 노원구 상계동에서 살지 못하고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서 출퇴근 한다는 그에게 책 읽을 시간이 나느냐고 물었다.

"출퇴근하는데 두 시간씩이나 걸리는 걸요, 당연히 시간이 없지요, 요즘은 책 읽을 시간이 화장실에서뿐이에요. 그래서 우리 집 화장실엔 항상 책이 비치되어 있지요."

나이 70세를 바라보는 김씨는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그렇게 책을 읽어 쌓은 내공으로 손님들에게 강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손님들의 그의 강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유명 인사들도 많이 거쳐 간 종로통 명물 이발사의 삶과 행복

그의 강의는 세상사 전반에 걸쳐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종교와 철학까지 그의 강의 영역은 그야말로 무제한이다. 저렴한 이발료를 받아 생활하지만 그가 이곳에서 일하는 시간은 항상 행복한 시간이라고 한다. 사는 형편과 자녀들은 어떠냐고 물었다.

"어허허! 거참, 이렇게 일해서 얼마나 벌겠어요, 돈이 없으니 상계동에서도 버티지 못하고 경기도로 이사 갔지요,  그래도 아들 둘은 다 잘 풀렸습니다. 아버지가 돈이 없으니 아예 저희들이 스스로 자립하더라고요."

몇 년 전에 한 번 쓰러져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건강도 더 좋아졌다고 한다. 하루 수십 명씩의 손님들을 접대하면서 손님들을 상대로 하루 종일 강의를 하는 김씨는 늙을 틈도 없는 것 같았다. 십여 년 전에 비해 전혀 늙지 않고 건강한 모습이 그랬다.

"우리 이발소, 이래봬도 정신적인 수준이 있는 분들이 찾는 곳입니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명사들도 수없이 다녀갔지요."

그가 말하는 이름들을 들으니 정말 그랬다. 그러나 그 유명인들의 이름은 절대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것이 그의 부탁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유명 인사들도 대부분 그의 강의를 들었을 것이다. 이발소를 찾는 모든 사람은 그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기 때문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넉넉한 인상에 오늘도 손님의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강의에 열중하고 있을 김창호씨와, 이곳을 찾는 수많은 가난한 손님들에게 이 겨울이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종로이발소#김창호씨#강의하는 이발사#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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