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일차] 걸은 거리 ESTELLA - LOS ARCOS 21.7km
오늘도 여지없이 등 뒤에서 동이 튼다. 아침해의 배웅을 받는 사람처럼 새벽길을 나섰다. 한국과 거의 비슷한 계절인지라 새벽 공기가 마냥 신선하게 느껴진다. 올빼미형인 내가 아침잠에 대한 미련이 없어진 것은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찍 잠자리를 찾아들다 보니 아침형 인간처럼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겠는가.
산티아고 길을 걷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짜고 기름지고 찬 음식 위주로 먹다보니 화장실 가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허리가 줄어든 느낌이다. 몸무게를 재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고 있는 것 같다. 아침이면 늘 따끈따끈한 국이 생각나서 마른 미역이라도 한 봉지 가져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딱딱한 바게뜨에 치즈 같은 것들로 허기를 해결하니 평소 차고 기름진 음식이 맞지 않던 내 장이 견뎌낼 재간이 있으랴. 뒤에 이 길을 걷는 한국 사람들은 비상용으로 마른 미역 한 봉지 정도는 준비하시기 바란다. 마른 미역이라는 것이 물에 불리면 한 봉지로도 50일 정도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양이 될 것이다. 물론 값도 아주 저렴하고.
이곳 사람들은 주식이 빵과 고기이다 보니 질은 차지하고라도 쌀은 비교적 싸게 살 수 있다. 계란과 채소도 있으니 계란프라이를 하거나 스크램블 에그 볶음밥을 해먹어도 좋으리라. 아침마다 미역국을 끓여 먹고 길을 나선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물론 경비도 절약되고.
무엇을 찍은 사진인지 알 수 있을까? 다양한 모양의 돌들이 많은 나라이기에 콘크리트로 만든 건축물보다 돌을 쌓아서 만든 집들과 성당, 다리들이 많은데 사진의 저 돌은 방석 같은 모양이다. 그 돌로 지붕을 덮었다. 맨 아래에 네모난 돌들을 깔고 그 위에 둥글넓적한 타원형 돌들을 깔았다. 글쎄, 어떻게 무게를 버티는지 모르겠지만 비바람에 견디기 아주 좋을 것 같다. 돌 사이사이에 이끼가 잔뜩 끼어서 집이 아주 고풍스럽고 예쁘다.
길가의 레스토랑 마당이다. 옛날 옛적 우리나라에도 말이나 소가 끌던 수레가 있었지. 우리나라 우마차와 달리 바퀴가 카우보이가 활약하는 서부영화에서 볼 수 있는 마차처럼 바퀴의 테두리는 쇠로 만들었다.
오래된 마차를 버리지 않고 마당에 세워둔 채 꽃을 얹어두니 그야말로 예쁜 꽃수레가 되었다. 레스토랑 마당을 따로 꾸밀 필요가 없어 보인다.
혼자 걷는 이국 땅 시골 위에서 언제나 나의 동행은 내 그림자와 배낭이다. 가끔 내 그림자를 보노라면 참으로 정겹게 느껴진다. 사진을 찍으니 생각한대로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보다 훨씬 더 순례자나 방랑자처럼 보인다.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 해줘서 고맙다.
특이한 나무는 아니지만 족히 몇 백 년은 견디며 살아왔을 것 같은 고목들이 오솔길 옆에 드문드문 서 있다. 매년 길 위에 떨어진 채 썩어가는 낙엽들이 즐비한 숲길을 걷는다.
이런 길들만 나타나면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 같다. 사진으로 찍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진다. 자연 그대로인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더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남아 있는 옛길이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필요하지 않아 잊히고 있는 옛길을 함부로 포장하거나 보존한답시고 손대지 말고 그대로 놔뒀으면 좋겠다.
한낮인데도 숲길로 들어가면 어둠컴컴할 정도로 녹음이 우거져 있다. 이 숲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 쉬 짐작이 간다. 사실 이런 길들은 길옆이 흙이라서 군데군데 허물어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워낙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인지라 쓰러진 나무조차 그냥 방치하고 대신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수 있게 길옆으로 밀어놓기만 했다.
허물어지기 쉬운 길은 양 옆에 돌담이나 벽을 쌓아서 보호를 했는데 허물어져 내린 곳에도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순례자들이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이 길은 아마도 낙엽에 덮여 흔적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허물어진 길옆은 돌담을 쌓아서 보호를 했는데 허물어져 내린 곳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이 길을 지나다니는 순례자들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낙엽에 덮여서 흔적을 제대로 찾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알베르게 도착하면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는 부엌이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자기네 나라 음식을 만들어서 같이 먹는 경우가 좋종 있는데 아쉽게도 한국 음식은 재로를 구할 수 없고 비슷한 재료가 있어도 양념거리들이 맞지 않아서 만들어 줄 수 없었다. 음식솜씨가 꽤 좋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내 옆의 아가씨는 독일인으로 19살인데 골초인 라파일라. 손가락으로 FKY를 가르키는 미국인은 J.T. 이름이 참으로 간단하다. 길에서건 알베르게에서건 나만 보면 반가워서 하늘을 가르키며 “moon"이라고 나를 큰 소리로 부르곤 했다.
J.T는 팬케이크를 만들어주겠노라고 온 동네에 떠벌리고 다녔는데 다음날부터 행방이 묘연해져서 모두들 팬케이크가 날아갔다면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에는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 수도원에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 따로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생수병으로 한 병 정도 채워가는 것은 허용하는데 너무 많이 가져가려다가는 수도꼭지 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 찍히게 된다. 오른쪽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오는데 생수 맛보다 훨씬 맛있다.
우리나라의 술 공장이나 생수 만드는 공장에도 이런 수도꼭지가 생긴다면 어떨까? 너도나도 술을 따라가려고 해서 손해가 막심해질까?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야 술을 전혀 마시지 않지만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그네들의 삶이 부러웠다.
십분의 일이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니, 한두 마디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스페인 말로 신나게 스페인의 역사와 산티아고 길에 대해 설명을 해주던 두 아가씨. 왼쪽이 까르멩이고 오른쪽이 마리아인데 둘다 간호사다.
까르멩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한참 설명을 하다가 답답하던지 자기 책을 나에게 선물로 준다면서 책장 앞에 사인을 해서 건네주었다.
저런 신작로가 연 이어서 15km정도 이어진 길을 상상해보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수평선은 볼 수 있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접하기 어려운 지평선이 계속된다. 야트막한 언덕들을 대여섯 개 정도 넘고 나면 마을이 보이겠지, 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해발 650m 되는 곳인데 언덕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마을에 있는 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오늘은 열 개쯤을 넘어서야 중간에 조그만한 마을이 나타났던 것 같다. 마을 바에서 커피를 한잔 하고 또 길을 떠난다.
산티아고 길 정보 |
스페인은 약값이 비싸니 한국에서 출발할 때 상비약을 미리 구입해서 가는 게 좋음. 교회광장 지나서 나가는 길에 기부제 알베르게가 있음. 오후 2시30분에 오픈. 이 곳에는 다양한 알베르게가 있는데 무조건 등록하지 말고 시설을 둘러보고 가격을 확인한 뒤 등록하는 게 좋음. |
길가에 앉아 잠시 쉬거나 급한 볼일이라도 볼라치면 함께 걷던 사람들은 벌써 저만치 멀어져서 까마득한 점으로 보이기 일쑤다. 오 분도 채 안 걸린 것 같은데 길 위에서는 먼 거리가 되는 것이다.
언덕을 하나 지나 내려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수확이 끝난 밀밭과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는 포도밭. 포도밭 길을 걸으면 탐스럽게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연히 실뱀을 발견했다. 굵기가 성냥개비만 하고 길이는 젓가락만 하다. 길을 가다가 발견하고 뒤집힌 줄 알고 지팡이로 뒤집었더니 곧바로 뒤집는다. 알고 보니 이 녀석은 특이하게도 등 색깔이 우리나라 뱀과 달리 옅은 색이었고, 배의 색깔이 짙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뱀인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