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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따뜻하게, 지구는 시원하게’  2005년 8월 첫 출항하여 2014년까지 10년 동안 동아시아 환경과 평화를 위한 항해를 계속할 예정인 피스&그린보트는 2008년 그 네 번째 마을의 문을 열었습니다.
▲ ‘마음은 따뜻하게, 지구는 시원하게’ 2005년 8월 첫 출항하여 2014년까지 10년 동안 동아시아 환경과 평화를 위한 항해를 계속할 예정인 피스&그린보트는 2008년 그 네 번째 마을의 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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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확대된 공동체, 확대된 세계를 보여줄 수 있고,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너무 기쁘다."

지난 10월 오마이뉴스와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가 공동으로 실시한 '우리 가족 그린 특종 공모'에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우수작으로 뽑혀 수상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아내의 말입니다. 일상 중에도 늘 공동체생활을 꿈꾸며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우리 부부의 기대를 담아낸 대답이기도 합니다.

환경과 평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의 글로 커다란 행운을 얻었습니다. 송구스럽고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피스앤그린보트라는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더 확대된 공동체, 더 확대된 세계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보리라는 기대감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사실 각각 50개월, 16개월 된 두 아이가 있는 우리 가족에게 비행기나 급행열차, 버스를 이용해 먼 나라를 장기간 다녀오겠느냐고 제안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거절할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좁은 비행기나 버스, 급행열차 안에서 엔진의 커다란 소음을 들어가며 오랜 시간을 버텨줄 유아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 부부가 철없는 부모라 할지라도 그렇게까지는 용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가져보며 우리는 병원에서 미리 약도 처방받고 혹시나 생길 비상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계획도 세워가며 결국 피스앤그린보트를 탔습니다. 우려의 눈빛을 보내는 주변의 시선도 애써 모른 채 하면서 그렇게 우리 네 가족은 7박8일의 길고도 먼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급하지도, 시끄럽지도, 좁지도 않은 그곳 '그린보트'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마을 노트에 정갈하게 붙여오신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시던 일본의 한 어르신
▲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마을 노트에 정갈하게 붙여오신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시던 일본의 한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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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우리가족이 경험한 새로운 공동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평균 시속 33km의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피스앤그린보트는 급하지도,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이 마을 안에서는 빡빡한 일정에 쫓겨 허둥댈 필요도 없고, 준비된 프로그램에 반드시 참가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갑판에 누워 눈부신 햇살을 만끽하거나,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도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이 연주하는 피아노곡을 감상하며 마냥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넓은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일출과 일몰을 보며 사우나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빠른 여행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여유로움인 것입니다.

이 마을에는 매일 매일 실시간으로 전하는 숨 가쁜 뉴스도 없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경제를 걱정하거나 정부정책에 허탈감과 박탈감을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식당 앞에 놓여진 작은 테이블에 그날 펼쳐질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적혀진 선내 신문이 유일한 소식지입니다. 휴대폰도 필요 없고, 인터넷도 필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8일간 휴대폰 벨소리와 진동음을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휴식이었습니다.

이 마을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길어야 10여분 걷기만 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작은 공간입니다. 그래서 하루 세 번 식당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하루 이틀 인사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 얼굴을 익히게 됩니다. 특히나 우리 가족처럼 최연소 참가자라는 독특하나 배경이라도 있으면 더더욱 사람들에게 각인되기도 합니다.

피스앤그린보트에서 '마을 공동체'를 봤습니다

이 마을에는 환경운동가나 평화운동가, 소설가, 여행가, PD, 가수처럼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냥 평생 모은 돈으로 소원하던 크루즈여행을 떠나온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미안해하며 아이들과 함께 떠나온 엄마들도 있습니다. 연수차 온 회사원들도 있고, 중요한 시험 앞두고 머리 식히러 온 수험생도 있고, 엄마의 추천으로 혼자 오게 되었다는 홈스쿨러, 그냥 친구 따라 오게 되었다는 청년, 어느 여대 앞에서 미용실을 한다는 남자 청년,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온 어린이들까지 무지갯빛처럼 다양한 삶의 모양새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 마을에 모인 것입니다.

이 마을엔 말도 어눌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곳에서는 능숙한 일본어, 영어, 한국어가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인사 하나도 어설프고, 궁금한 것 하나 물어보는 것도 큰 일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눌한 일본어나 영어, 한국어를 하는 사람을 비웃거나 탓하지 않습니다. 얼굴에는 언제나 웃움과 친절함만이 가득합니다.

차별도 없습니다. 나와 다른 머리모양, 옷차림, 얼굴모양, 피부색… 아무도 그 차이를 두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름이 공존하는 이 마을은 그러한 차이가 자랑입니다. 그리고 나의 개성없음을 아쉬워하거나 다른 이의 개성을 부러워합니다. 경쟁도 없고, 서열도 없고, 눈치볼 일도 없는 이곳은 그야말로 서로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마을공동체 그것이었습니다.

이 마을에 함께 하신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님은 "나는 이곳에서 마을공동체를 보았다"며 "서울에서도 듣지 못했던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와 청년들의 활기찬 함성소리, 아기 엄마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며칠 함께 지내는 동안 우리가 자연스런 마을공동체를 일궈내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바다 위 우리 마을은 그렇게 8일간 흘렀습니다

갑판에서 나누는 공동식사 다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식사시간은 그 자체로 나눔의 축제입니다.
▲ 갑판에서 나누는 공동식사 다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식사시간은 그 자체로 나눔의 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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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우리는 피스앤그린보트라는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언어의 장벽과 나이, 개성, 가치관,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은 여러 이웃들에게 좋은 내용의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나눠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며 서로 어울려 돌보며 뛰어놀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교육과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환경과 평화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선내에서 일어나는 어렵고 힘든 일에는 서로 돕고 위로하며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우리는 11월 22일 고베항을 출발하여 이시가키(오키나와), 기륭(대만)을 거쳐 27일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키나와 이리오모테섬의 맹그로브 숲과 시라호 산호촌, 모래별 해변으로 유명한 다케토미섬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느꼈으며, 원주민들과의 사탕수수 체험과 해변의 쓰레기를 치우는 시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은 자연스런 하나임을 깨달았습니다.

맹그로브 숲, 산호촌, 지우펀의 탄광마을, 아류해상공원 등 내 앞에 펼쳐진 자연이 나의 삶 그자체임을 깨닫게 해준, 국경을 넘나드는 바다 위의 우리 마을은 8일간 그렇게 흐르고 흘렀습니다.


#파스앤그린보트#공동체#환경#평화#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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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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