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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기독교 교리는 태생적으로 내세를 지향한다. 나 역시 내세 지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 간다'는 아주 간단 명료한 이 교리는 보수 기독교가 가진 필연이자, 숙명이다. 이 필연 때문에 보수 기독교는 배타성을 가졌고, 타종교와 진리에서 만남은 보수 기독교에서는 아직도 요원하다.

 

나 자신이 믿고, 따르는 이 교리는 언제나 타종교를 믿고,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이들과 만남이 이루어질 때마다 고통스럽게 한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대하지만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인할 수 없는 필연과 숙명이 나를 지배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타종교를 정죄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타종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생겨난다.

 

타종교를 정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한 기독교는 생명을 잉태하는 종교가 아니다. 정죄하는 마음이 가득 하니 길거리에서 광신도라는 소리를 들어면서 '예수천당'을 외친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간다는 교리가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은 진리일지라, 다종교 사회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길거리와 지하철에서 외쳐지고, '돈'에 스탬프로 찍는다면 선한 일이 아니다.

 

원래 진리란 자기 희생을 동반해야 생명을 발한다. 예수와 바울, 베드로가 간 길이 그 길이다. 자기 희생. 하지만 우리 시대 길거리와 지하철에서 행해지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거룩한 외침이 아니라 '소음'일 뿐이다.

 

특히 '돈에 스탬프로 성경 구절를 새겨 넣는 일'은 간단하게는 돈을 훼손하는 일이지만, 크게는 자본에 예수를 파는 행위다. 성경 구절은 돈에 놀림감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주어진 계시가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주어진 계시이다.

 

성경은 온통 거룩하게 살아가라 말한다. 가난한 자 특히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라 말한다.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다 말했다. 예수님을 말씀하셨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누가복음 7:22)

 

한 마디로 예수는 자신이 가난한 자를 위해 왔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들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면서 '예수천당'만 외친다는 것은 부끄운 일이다. 진리란 원래 자기 희생을 먼저 동반해야 한다. 예수님과 바울, 베드로가 자기 희생을 통하여 진리를 전했다.

 

그 진리를 따른다면 교회는 예수천당 이전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대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가난한 자와 고아, 과부를 위한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생명을 위한 종교라 했지만 지난 촛불 정국 때 많은 한국 교회와 목사들은 생명을 파괴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생명을 사랑하는 촛불을 경멸하기에 바빴다.

 

'예수천당'이 왜 외면 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었다. 예수천당이 그토록 절박하고, 예수를 모르는 자들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려나오는 외침이라면 먼저 예수님이 간 길을 가야한다.

 

진리 자체는 외면하면서 목소리만 큰 것은 '소음'일뿐이다. 광신도란 미쳤다는 뜻인데 이는 가짜로 미쳤다는 말이다. 예수께 진짜 미쳤다면 소음뿐인 '예수천당'을 외치지 말아야 한다.

 

외침은 자본에 팔린 교회와 권력에 팔린 교회를 향해야 한다. 외침은 생명을 외면하는 교회와 권력이 되어버린 목사를 향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예수께 미친 자의 모습이다. 정말 예수께 미친 목사가 되고 싶다.


#보수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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