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있어 다시 찾고 싶어야 명소인데 성읍민속마을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을 떠올리면 난 으레 장사(물건 파는)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 혼자 여행할 때는 가지 않았다. 안 사면 그만이지만 민속마을로 지정해놓고 물건을 팔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고, 때문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주차장이 있기에 차를 댔더니 한 여자분이 반색을 하며 나왔다. 그리고 가이드를 하겠다며 우리를 한 집으로 안내했다. 그 분은 청산유수로 집 구조며 옛날 생활 방식을 이야기 해주고는 대문 있는 쪽 헛간 문을 열었다. 거기가 바로 상품을 파는 곳. 이런 식이라면 동남아 쪽, 한국인 관광객 상대 상행위와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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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읍민속마을 사람냄새가 나는 집은 밖에서 엿보기만 해도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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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똥돼지 지금은 인분을 먹고 살지 않지만, 제주 흑돼지는 유명하다. 맛도 아주 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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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파는 것은 오미자 엑기스와 말 뼛가루. 그 여자분 약효를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장황하지는 않았다. 아마 이 분, 우리를 보자마자 알아챘을 것이다. 짠돌이라는 걸. 나는 여행에서 절대 물건을 사지 않는다. 오일장 외에는. 이런 때 가장 유효한 질문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이거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해?' 이 물음 하나면 쉽사리 물건에 손이 가지 않는다.
우리 생각을 눈치 챘는지 그분,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한다. '제주' 하면 감귤이나 해산물인데 이쪽 동네는 바다와도 멀고 감귤도 잘 안 된단다. 열매가 잘고 맛이 없다나. 때문에 자신들은 이런 식으로 생업을 이어간다고.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청정한 관광지, 제주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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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현성 남문성곽 500년 현청 소재지로 성곽 안이 넓고 잘 정비돼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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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타고 성곽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신랑 덕이다. 예전에 성읍민속마을은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바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는데, 이제야 제대로 성곽을 보게 되었다. 성곽은 훌륭했다. 성곽 안은 산책하면서 한 바탕 놀고 가도 될 정도로 넓었다. 정의현성이라고 하는데 현청 소재지로 5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물건을 파는 안내자가 있었다. 주로 단체관광객들에게 접근해 안내를 하는데 우리는 또 그 사람들이 접근할까봐 눈치를 봐가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제주에는 민속오일장이 있는데 오늘이 장날이었다. 이제 제주시로 들어갈 차례였다. 성산에서 제주시까지는 먼 거리. 지도를 샅샅이 살피던 이 남자 은근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산굼부리만 들렀다 가자. 아유 여기 아부 오름이 있는데, 영화촬영지래. 그곳까지 들렀다 가는 건 어때?"지도를 들여다보니 그 길 근처에 비자림도 있다.
"그러면 아마, 비자림도 가고 싶을 걸. 그러다간 오늘 제주시엔 들어가지도 못할 거고, 그러면 아마 오일장은 포기해야 할 거야." 내 말이 그럴 듯했는지 이 남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냥 달린다. 그래도 제주시에 들어가서 두 군데는 들렀다. 삼성혈과 관덕정, 그리고 그 다음이 민속오일장이었다. 오일장이면 대부분 난전에 장을 차리는데 제주는 실내였다. 제주에 특히 비가 많이 오기 때문인지. 그래도 이렇게 큰 장이 오일에 한 번만 열린다니 이해가 가지 않아 상인에게 물었다. 다른 날도 열려 있긴 한데 장날처럼 풍성하진 않단다.
장은 정말 컸다. 여느 시골장보다 풍성하고 사람도 많았다. 섬나라답게 대표 주인공은 생선. 그 중에서도 갈치와 고등어가 제일 탐이 났다. 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야지 마음 먹었지만, 글쎄.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칼을 비롯해 농기구며 한약재, 청소용구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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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주인공 제주의 대표적인 산물은 역시 갈치와 고등어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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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용할 물품 오일장에 반드시 등장하는 일용할 물품들...역시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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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있었다. 나는 이상한 과일을 보고 마치 무엇에 감전된 사람처럼 다가갔다. 감귤과 함께 있었는데, 핑크빛에 연두색 뿔이 여럿 달린 과일이었다. 이름은 용과라고 써 있었고, 크기에 따라 가격도 매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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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과일 감귤과 용과. 아직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 용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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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과일인가요?"
"아, 용과요. 과일이지요."
"이건 어떻게 먹어요?"
"그냥 껍질 벗겨서 먹는데, 달착지근하고 기관지에 좋아요." 나는 구경만 했다. 왠지 자주 접하지 않은 먹을거리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장을 돌아다니면서 몇 번을 망설였지만 결국은 사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봐도 용과라는 과일은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궁금하다. 그 과일 나무나 속이... 그런데 울 신랑은 자두를 골라놓고 나를 불렀다. 마땅치 않았지만, 흥정을 다 해놨으니 어쩔 수 없이 샀다. 돌아서면서 노파심에 물었다.
"이 자두 제주에서 나나요."
"아니요. 육지 것입니다. 제주에는 감귤 종류밖에 없어요. 이런 거 다 육지에서 오는 겁니다."에그, 육지에서 배로 실어오느라 몇 날 며칠 걸렸을 테니, 뭔 맛이 있겠는가. 보기에는 아주 좋아보였지만 맛은 영 젬병. 오는 날까지 울 신랑 먹어치우느라 애썼다. 난 자두와 친하지 않아서 도와 줄 수도 없었고.
오늘은 제주 시내에서 자기로 하고 드디어 고대하던 고등어 갈치회를 먹으러 간다. 오일장에서 멀지 않은 노형동에 잘 하는 식당이 있단다. 물항식당이라고. 이름 값을 하는지 초저녁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처음이라 주문하는데도 갈팡질팡. 갈치와 고등어를 같이 먹고 싶다니까, 한 접시에 같이 나오는데 4만원이란다.
"그럼, 쯔끼다시나 매운탕도 나오나요?"
"손님 여긴 그런 식당이 아닙니다, 매운탕을 드시려면 따로 시키셔야 돼요."점잖게 타이르는 종업원에게, 나 한 방 먹었다. 유명한 식당이라 찾아 왔는데, 유명하기 때문에 손님에게도 고자세인지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어회는 맛있었다. 난생 처음 먹어 보는 건데, 갈치회는 그저 그렇고 고등어회는 달착지근한 게 감칠 맛이 났다. 굳이 참치회와 비교한다면 참치보다 단맛이 약간 더 나고 얕은 맛이 혀에 착착 감기는 맛이었다. 제주에 몇 번을 와도 군침만 흘리고 돌아갔는데, 이럴 땐 같이 다니는 보람이 있다. 갈치회, 고등어회맛을 다 보고 소주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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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치, 고등어회 이렇게 한 상이 나온다. 회에는 무조건 매운탕이 따라 나온다는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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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하면서 숙박할 곳을 물었더니 바로 뒤쪽에 숙박시설이 많단다. 많이(소주 두 잔) 마신 건 아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술 기운도 있어 빨리 쉬고 싶었다. 한 군데는 물으니 5만원이라고 한다. 혹시나 하고 옆에 있는 호텔에 가 물으니 4만원이란다. 4만원짜리 호텔도 시설이 아주 좋았다. 여행을 다녀보니 비싸다고 꼭 좋은 건 아니었다. 가격은 붙이기 나름이라는 거 마지막 날에 알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제주는 10월 초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