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1월 13일 밤 11시 30분 KBS 신관 8층은 몹시 분주했다.

<시사투나잇> 마지막  생방송 시작 45분 전이었다. '막방'(마지막 방송)임에도 이들은 화면 하나, 리포팅 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편집실 808호에서는 최필곤 PD와 이명우 PD가 서로 의견을 조율하며 편집에 한창이었다.

810호에서는 우현경 PD가 마지막 원고를 가다듬고 있었고 사무실에서는 송재헌 CP가 강희중·박사임 앵커와 함께 멘트를 손질하고 있었다. 작가들도 원고를 꼼꼼히 손보며 '막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작진들이 "정치적 개편"이라며 2주일 넘게 피켓시위를 하는 등 반발했지만 결국 <시사투나잇>은 가을 개편에서 '폐지'되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시사투나잇>은 금요일 방송이 없기 때문에 이날이 마지막 방송. 가을개편 날짜인 11월 17일부터 이 시간에는 <시사 360>이라는 프로그램이 신설된다.

막방 <시사투나잇>, 첫방송처럼 긴장 팽팽

 <시사투나잇>팀은 13일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해체된다.
<시사투나잇>팀은 13일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해체된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13일 밤 11시 30분께, KBS 신관 808 편집실에서 최필곤 PD(맨 왼쪽)와 이명우 PD(앉아있는 이)가 편집에 열중하고 있다.
13일 밤 11시 30분께, KBS 신관 808 편집실에서 최필곤 PD(맨 왼쪽)와 이명우 PD(앉아있는 이)가 편집에 열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밤 11시 55분이 되자 최필곤 PD와 이명우 PD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이동했다. 최 PD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입을 놀린다. '헌법불합치'라는 단어가 영 꼬이는 모양이다.

"헌법재판소는 종부세에 대해... 위헌... 헌법불합치... 헌법불합치... 헌법 불합치."

지하 1층에 내리자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이 PD는 편집실로 가 테이핑 작업을 한다. 이미 이지희 PD가 먼저 내려와 작업중이다. 최 PD는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간다. 작업을 마친 이지희 PD가 뛰어나가고 곧 이명우 PD도 완성된 테이프를 들고 쏜살같이 밖으로 내뛴다. 생방송 10분전이다.

지하 1층 TV 14 부조정실 앞에는 PD와 작가 등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오간다. 강희중 박사임 앵커는 분장을 마치고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송재헌 CP도 '마지막 Q'를 위해 부조정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여러 PD 선후배들의 '위로방문'도 이어진다. 지하 1층 복도에 어느덧 40여 명의 선후배 PD들이 <시사투나잇> 스태프들을 격려하기 위해 차례로 도착한다. 일부 선배는 후배들을 껴안아주고 머리를 만져주며 다독인다. "고생했다."

 <시사투나잇> 생방송 10여분 전, KBS 신관 지하 1층 부조정실에서 PD와 작가들이 방송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시사투나잇> 생방송 10여분 전, KBS 신관 지하 1층 부조정실에서 PD와 작가들이 방송 준비에 여념이 없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정치적인 개편, 마음이 아프다"

이날 방송이 없는 일부 <시투> PD들은 부조정실 한 켠에 서서 동료들의 방송 준비를 지켜보고 있다. 어젯밤에 본인의 <시투> 마지막 방송을 했던 김정희 PD에게 조심스럽게 소회를 물었다.

"마음이 아프죠. 정상적인 개편이 아니라 정치적인 개편이었잖아요. 보셨다시피 원고 만들고 편집하고 매일 밤 이렇게 전쟁이거든요. 초긴장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죠. 그래도 스태프들이 소신과 상식을 바탕으로 만든 프로그램인데 외부 논란에 의해 폐지되고... 오늘이 마지막 방송이니... 마음이 참...."

부조정실이 시끌해졌다. 생방송 시각이 임박한 것이다. 밤 12시 15분 송재헌 CP가 "3(번 카메라) 스탠바이" 라며 카메라 대기 순서를 외치고 'Q'사인을 넣는다.

<시사투나잇> 타이틀과 함께 특유의 '타잔 로고송'이 흐른다. 오늘도 광고가 7개나 붙었다. 984번째 방송이자 마지막 방송이 시작됐다. TV 13 부조정실에 모여 있던 선배 PD들은 타이틀 배경을 보며 "아, 저거 내가 만들었는데..." "저건 내가 넣었잖아"라면서 한마디씩 한다. <시사투나잇>을 거쳐간 PD들은 줄잡아 70여 명, 대부분의 PD들이 '<시투>'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종부세 위헌 결정 소식이 끝나고 '<시사투나잇> 5년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랩과 함께 흐른다. 2003년부터 <시사투나잇>이 다뤄왔던 주제들이 지나간다. 맨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다.

"아직 못한 말들이 남아 있는데... 아직 못한 말들이 남아 있는데..."

코너가 끝나자 13 부조정실에 있던 PD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지난 5년 걸어온 길에 대한 자축이면서 후배들에 대한 격려다.

강희중 앵커는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시사투나잇>은 소외된 이웃을 취재했고 자본과 정치 권력을 비판해 왔습니다. 누군가는 얘기했어야 할 주제입니다.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의 가치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밤 12시 54분, 준비된 방송이 모두 끝나고 송 CP가 마지막 엔딩 사인을 넣었다. 스태프들의 제작현장을 찍은 화면에 12명 PD들 이름이 함께 흘렀다. 배경음악은 'November Rain'

'송재헌 강희중 정병권 김정희 최필곤 이지운 이지희 우현경 김명숙 조영중 김범수 안상미'

이 화면까지 모두 끝나자 '<생방송 시사투나잇> 끝'이라는 엔딩 타이틀이 떴다. 평소 같았으면 '다음주 월요일밤 12시 15분에...'라고 떴어야 했다. <시사투나잇>은 이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다음주 월요일밤..." 자막은 뜨지 않았다

 '<시사투나잇> 끝'을 알리는 엔딩 타이틀. <시사투나잇>은 984회로 끝으로 폐지됐다.
'<시사투나잇> 끝'을 알리는 엔딩 타이틀. <시사투나잇>은 984회로 끝으로 폐지됐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방송이 끝나고 송 CP가 엔지니어들과 '마지막 악수'를 하는 순간, 정병권 PD는 손가락을 안경 안으로 넣어 두 눈을 누르고 있었다. 눈물을 참기 위해서다. 안상미 PD, 이명우 PD, 많은 작가들도 눈시울이 벌개졌다. 최필곤 PD는 부조정실 구석 의자에 멍하니 앉아 일어설 줄 몰랐다.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부조정실 밖으로 나오자 복도에서 기다리던 선후배 PD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줬다. "<시사투나잇> 파이팅" "멋있다" "잘했다" "고생했어"

단체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몰려가자, 그 곳에서는 송 CP가 눈물을 흘리는 박사임 아나운서를 위로하고 있었다.

 <시사투나잇> 마지막 방송이 끝난 뒤 부조정실에서 나오는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는 PD들
<시사투나잇> 마지막 방송이 끝난 뒤 부조정실에서 나오는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는 PD들 ⓒ 오마이뉴스 전관석

 <시사투나잇> 마지막 방송이 끝난 뒤 울먹이는 박사임 앵커를 송재헌 CP가 다독이고 있다. 맨 왼쪽은 강희중 앵커
<시사투나잇> 마지막 방송이 끝난 뒤 울먹이는 박사임 앵커를 송재헌 CP가 다독이고 있다. 맨 왼쪽은 강희중 앵커 ⓒ 오마이뉴스 전관석

단체사진 촬영까지 마친 새벽 1시 8분, 스튜디오 불이 하나둘씩 꺼지는 동안 한 스태프가 세트를 철수했다. <시사투나잇> 로고가 찍힌 빨간 패널은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을 것이다.

방송을 마친 최필곤 PD는 인터뷰 요청을 하자 몇 차례 말을 하려다가 복잡한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면서 꺼렸다. 우현경 PD는 "명치 끝이 아리아리하다"라고 했다.

"내가 맡았던 프로그램 중 처음 없어지는 겁니다. 너무 아쉽네요. 저 <시사투나잇> 세트, 로고 하나하나가 다 아쉽습니다."

이지희 PD는 "시원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섭섭하다"면서 "오늘은 녹음이었는데도, 방송 나가는 것 들으면서 생방송때처럼 떨렸다"고 말했다.

 방송이 끝나고 스튜디오 불도 꺼진 뒤 한 스태프가 세트를 분리하고 있다. 빨간색 <시사투나잇> 세트는 더이상 쓰이지 않을 것이다.
방송이 끝나고 스튜디오 불도 꺼진 뒤 한 스태프가 세트를 분리하고 있다. 빨간색 <시사투나잇> 세트는 더이상 쓰이지 않을 것이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송재헌 <시사투나잇> CP는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과분한 사랑 받고 끝내는 것 같습니다. <시사투나잇>같은 프로그램은 PD들이 제작하면서 배우는 프로그램입니다. 사회가 관심 못 가졌던 부분들, 낮은 곳, 어두운 곳 이런 부분들을 취재하면서 많이 배우게 되죠. 그래서 PD들이 많이 성장합니다. 물론 마지막이란 게 아쉽긴 하지만 <시사투나잇>에서 PD들이 쏟았던 정신이 언젠가는 또 다른 프로그램에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 정신, KBS에서 절대 죽지는 않을 겁니다."

뒤풀이는 KBS 정문 근처 호프집에서 열렸다. 새벽 2시가 가까워졌는데도 100여 명의 사람들이 좁지 않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이전 앵커였던 오유경 아나운서도 참석했다.

먼저 김덕재 PD협회장이 <시사투나잇>에 격려의 말을 전했다.

"<시사투나잇>의 폐지로 우리 사회는 '통로'하나를 잃었습니다. 위험한 사회가 됐습니다. <시사투나잇>은 막을 내렸지만 우리는 <시사투나잇>을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KBS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결연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시투>는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PD협회는 <시투>의 정신이 유지될 수 있도록 싸우겠습니다."

"시사투나잇, 잘 싸웠다"

 <시사투나잇> PD, 작가 등 스태프들과 선후배 동료 PD등 100여 명은 KBS 정문 근처 호프집에 모여 '종방 뒤풀이'를 했다
<시사투나잇> PD, 작가 등 스태프들과 선후배 동료 PD등 100여 명은 KBS 정문 근처 호프집에 모여 '종방 뒤풀이'를 했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술이 몇 순배 돌았지만, 분위기가 마냥 침울하지는 않았다. 김덕재 회장은 그 이유를 아는 듯 했다.

"<시투> 제작진들이 이렇게 강고하게 싸울 줄은 몰랐습니다. 만일 <시투>가 맥없이 물러났다면, PD저널리즘의 정신, 다시 회복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 싸워줬습니다. 그래서 PD 정신은 계속 살았습니다. 우린 그걸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시투>사수 투쟁은 진 싸움이 아니라, 이긴 싸움입니다."

1회 방송때부터 줄곧 <시투>팀에서 일했다는 한 프리랜서 PD는 "낮은 곳을 향하는 KBS PD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 의미에서 <시사 360>도 그리 큰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여러 테이블을 돌던 한숙자 메인 작가는 맨 먼저 "PD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네요. <시사투나잇> 멘트들은 민감하잖아요. 문장 하나하나 더 조심하게 되고... 그런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혹시 잘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시사투나잇>은 PD 메인 작가 보조... 이런 구조가 아니거든요. 모두 내일처럼 소신갖고 일했기 때문에 더 아쉽네요. 사측과 제작진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 프리랜서들은 뭘 할 수가 없어 불편하고 미안했지요."

이지희 PD와 최필곤 PD가 손을 내젓는다.

"이 작가들 없었으면 우리 방송 못했습니다. PD들이 개편에 반발하며 시위하는 동안 작가들이 두배 세배 일했어요. 그래서 방송 나갈 수 있었던 거죠. 우리가 고맙고, 미안합니다."

날이 밝도록 진행된 뒤풀이에서 <시사투나잇> 스태프들은 이렇게 서로를 찬양해주고 위로해줬다.

새벽 5시께 먼저 일어나 귀갓길에 올랐다. 집에 돌아와보니 벌써 한 포털사이트에는 '생방송 시사투나잇(2003년 11월 3일~2008년 11월 13일 방송종료)'라고 떠있었다. 하지만 <시사투나잇> 홈페이지에는 100개가 넘는 누리꾼의 '지못미 <시투>' 글이 올라와 있었다.

"시사투나잇 5년을 정리하는 랩을 들으며 눈물까지 나더군요. 시청자인 내가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제작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소중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상황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졸음 참으며 시청했던 5년. 시사투나잇 덕분에 우리가 사는 사회를 항상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뉴스 보게 해주셔서 감사했던 5년이었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을 하시더라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임해주신다면 시사투나잇처럼 좋은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문영림)

"시사투나잇은 없어져도 우리 마음속 하나하나에 시사투나잇은 평일 밤이 되면 어김없이 시작될 것입니다. 나라의 미래를 정말 걱정하는 우리의 대변인 시사투나잇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송진석)

"오늘 랩으로 지난 5년간의 시사투나잇을 정리하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그 랩의 맨 마지막 구절을 들으며 저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못한 말들이 남았는데.... 아직 못한 말들이 남았는데..."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구절이었습니다."(최정우)

"시투를 만드시는 여러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정말 많은 부분의, 사회 일들을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작은행동이나마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 우리라는 공동체, 한국인라는 자각을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고경희)

 <시사투나잇> 시청자게시판에는 '지못미 시투' 글이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오고 있다.
<시사투나잇> 시청자게시판에는 '지못미 시투' 글이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오고 있다. ⓒ 시사투나잇

[관련기사]
☞ 종합병원 입원한 종부세, 하지만 최종심은 국민의 손에
☞ 오바마, 왜 그리 자동차산업에 목매나
☞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드림팀, 꼭 꾸려야 하나?
☞ [E노트] 미네르바 "이제 마음에서 한국 지운다"


#시사투나잇#KBS#송재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