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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끝났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미국 대통령 선거는 예상대로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미국 극보수 우파의 몰락,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출현.

 

그러나 이번 미국 대선은 미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에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부시로 대변되는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와 패권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것과 함께 군산복합체와 석유 기업 등 기업과 자본의 이해에 철저하게 봉사했던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도 그 기세가 상당히 꺾일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이번 미국 대선은 '오바마 대 매케인'이 아니라 '오바마 대 부시'의 구도로 전개된 측면이 적지 않다. 매케인은 부시의 그림자를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공약과 정책에서 부시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완패했다.

 

선거가 아닌 부시에 대해 사설 쓴 까닭

 

미국 현지 시각으로 4일, 투표 당일 발행된 <뉴욕타임스>는 선거와 투표에 관한 사설 대신 부시에 관한 사설을 실었다. 앞으로 누가 되느냐에 주목하기보다는 부시 미 대통령이 남은 77일의 잔여기간에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를 우려했다. 부시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분초를 다퉈가며 잔여기간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미국을 더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이자 경고였다.

 

'시간은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또 얼마나 많은 피해가'(So Little Time, So Much Damage)'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사설은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그리고 그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법마저 무시하며 시민사회에 대한 공공연한 사찰과 검열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시의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석유 재벌들을 위해 수백만 에이커의 국공유지에 대한 유전 개발권을 허용하고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경보전과 생태계 보전을 위한 각종 규제를 크게 완화하려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금융위기 국면을 활용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지원받는 금융기관들에 면세 혜택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무책임한 금융기관들이 오히려 덩치를 부풀리는 데 미국민들의 세금을 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근본주의로 무장한 부시와 그의 사람들은 낙태가 불가피한 경우에 까지 일체 의료기관 종사자들이나 공공의료 서비스 기관으로부터 일체의 조언이나 협조를 받을 수 없도록 낙태 관련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선거 당일 언론들은 보통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거나, 아니면 이번 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정리하는 사설을 쓰거나 논평을 내놓는 게 보통이다. 그런 점에서 <뉴욕타임스>가 투표 당일 사설을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과 앞으로의 전망에 할애하지 않고, 부시의 남은 임기에 주목한 것은 이례적이다.

 

일찌감치 오바마 지지를 공개 표명했던 <뉴욕타임스>로서는 이를 통해 이번 선거가 '부시에 대한 심판'이 돼야 한다는 점을 에둘러 시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투표 당일 사설에서까지 부시와 그의 사람들이 잔여 임기 중에 미국 사회에 얼마나 더 큰 해악을 끼칠지 경고하고 나선 것은 '부시 시대'에 대한 혐오감과 반감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4년 뒤 한국 신문엔 어떤 사설이 나올까

 

주목되는 것은 <뉴욕타임스>가 경고하고 있는 일들이 한국 사회에서 판박이처럼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기존의 법과 제도까지 무시해가면서 인권을 무시하고 시민사회에 대한 감시와 검열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나 석유자본 등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경이나 생태계 보전을 위한 각종 규제를 해체시키고 있는 것, 그리고 금융위기 국면을 활용해 결국 거대 금융자본의 이해를 위해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고 있는 것 등이 그렇다.

 

낙태 권리를 제약하려 하는 부시 행정부의 기독교 근본주의 경향 역시 한국판 버전으로 생생하게 재연되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어찌 보면 4년 후 한국 신문에 등장할 사설을 미리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분명한 차이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77일 남은 부시의 잔여임기가 그토록 걱정된다고 했지만, 한국은 아직 4년 넘게 남았다. 미국은 그 끝이 보이지만, 한국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 큰 차이다.

 

<뉴욕타임스> 11월 4일자 사설 '시간은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또 얼마나 많은 피해가…(So Little Time, So Much Damage)'를 요약 소개한다.

 

 

시간은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또 얼마나 많은 피해가...

미국인들이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기꺼이 투표장에 나설 때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4일 현재 77일의 잔여 임기를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환경과 인권, 그리고 낙태권을 비롯한 많은 것들에 대한 규제와 법률들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런 시도들 가운데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 역시 임기 마지막 시기에 주요 정책에 결제를 한 적이 있지만, 부시가 하려는 것은 마치 건물을 철거할 때 사용하는 거대한 쇠뭉치(wrecking ball)가 될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이 그 내용을 파악해 그 피해를 바로잡자면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릴 지모를 일들이다.

 

부시가 떠나면서 우리에게 남겨 준, 혹은 남겨주려고 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인권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부시 행정부가 미국인의 권리를 얼마나 침해했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을 정도다. 지난달 마이클 무카세이 법무장관은 FBI가 별다른 혐의점이 없다 하더라도 미국민에 대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합법적인 단체 등에 정보원을 투입할 수 있고, 도청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용의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요원들의 신분을 속이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거 인권 단체 등에 대한 수사기관의 염탐 활동 때 활용하던 방법들이다.

 

부시행정부는 또 국토안보부 설립 취지와 그 근거를 분명히 하고 있는 의회의 입법 취지는 물론 미국민의 프라이버시 보호권을 능멸하려 하고 있다. 국토안보부 설립법은 국토안보부 프라이버시 담당관으로 하여금 미국민의 사생활을 영향을 미친 활동들에 대해 매년 보고서를 제출토록 하고 있으며, 이 보고서에 대해서는 국토안보부나 백악관이 일체 간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최근 이같은 법률이 국토안보부나 백악관 관계자가 보고서를 사전에 검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보고서의 첨삭이나 변경을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메모를 발표했다. 조지 오웰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환경

 

부시행정부는 대기오염 방지 및 수질개선과 멸종위기의 희귀종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특히 부심하고 있다.

 

미스터 부시, 더 정확하게는 딕 체니 부통령은 마치 빌 클린턴의 환경 보호정책과 기존의 환경 보호 관련 입법들을 해체하고, 그들의 친구인 기업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백악관에 입성한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다행히 우려했던 것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환경단체들과 용기있는 의원들, 그리고 시민들의 항의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여전히 그러한 시도를 멈추려 하지 않는다.

 

더크 켐프트론 내무부 장관은 최근 정부 프로젝트가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가의 과학적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는 규제에 중대한 예외를 두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북아메리카산 이리를 멸종위기 동물 리스트에서 다시 제외하려 시도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곧 산업시설을 증설할 경우 최신 오염 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 대기정화법의 규제도 완화하려 하고 있다. 자연보호나 시민 휴식을 위한 가치가 높은 지역의 대기 청정을 위해 의회가 오랫동안 고수해왔던 국립공원 인근의 화력발전소 설치 규제를 대폭 완화하려는 시도도 최종적인 관문만 남겨놓은 상태다. 이와 함께 광산의 유독 폐기물을 강이나 계곡에 폐기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도 완화하려 하고 있다.

 

또 아무런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수백만 에이커의 국공유지에 석유 및 가스 개발권을  허용한 데 이어 수백만 에이커의 석유 매장지에 대한 상업적 개발을 허용하려 하고 있다. 이는 석유업체들도 그리 서두르고 있는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낙태권

 

마이클 레빗 보건부장관은 낙태나 피임, 그리고 낙태 후 건강을 위한 정보 접근을 어렵게 하는 새로운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법도 의사나 간호사들이 낙태에 간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레빗 장관은 이에 더해 보건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로 그 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으며, 낙태에 대한 조언은 물론 생리조정의약품이나 심지어 강간 피해자의 응급 피임 등에 대한 객관적인 조언이나 설명 같은 행위도 금지하려 하고 있다.

 

기타

 

부시 행정부는 최근 수 주 동안 불순한 시도를 진행시키고 있다. 미 국세청은 무책임한 대출로 막대한 손실을 본 금융기관들에 대한 세금 면제 조치를 지난 9월 발표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JP모건 체이스나 여타 금융기관들은 이제 막대한 구제 금융을 받아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으며, 이같은 경향은 새로운 세금 혜택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미스터 부시가 결코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도 있긴 하다. 그는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하지 않기로 작심한 것이 분명하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부시 행정부의 가장 수치스런 상징이자, 법의 지배를 결정적으로 농락한 대표적인 사례다.

 

부시는 말로는 관타나모 수용소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로버츠 게이츠 국방장관 역시 관타나모 폐지를 강력 건의했다. 실제 수용소 폐지방안이 마련돼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미스터 체니가 이에 반대했고,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안을 검토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그는 이 일을 후임자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식이 있긴 하다. 부시는 2009년 1월 20일 백악관은 떠나게 되지만, 그가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것은 11월 20일까지고, 각종 법안이나 주요 정책의 개정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은 12월 20일까지라는 점이다. 그 이후의 일은 단지 '시안'에 불구하고 그의 후임자가 쉽게 폐기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백악관은 이 같은 데드라인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미대선#부시#이명박#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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