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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카핑 베토벤>을 보고난 후 한 친구에게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평소 우리가 알고있는 베토벤은 귀머거리에다 까탈스럽고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인물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굉장히 인간적인 측면을 조명했더라는 얘기를 하자 평소 과묵한 그 친구는 그답지 않게 서둘러 내 말을 부정했다.

"나는 베토벤이 그렇게 고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않아. 그가 작곡한 음악들을 들어봐.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을꺼야."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를 볼때마다 그 친구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드라마를 끌고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아마도 강마에(김명민 분)라는 캐릭터가 아닐까싶다. 베토벤만큼이나 비슷한 강마에. 강마에 버전으로 이야기하자면 '똥덩어리, 치매, 날라리, 카바레, 쌈닭…' 로 지칭되는 인물들이 모두 매력있는 캐릭터지만 그 재기발랄, 독특함속에서도 절정은 단연 강마에 자신이다. 아무리 독특하고 매력있는 캐릭터라고 해도 강마에를 따라올수는 없다.

강마에, 과연 사과할 것인가?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 MBC

강마에가 매력있는 이유는 단지 그 독설이나 파격적인 행동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강함과 유약함을 모두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천재이자 지독한 노력파이기도 하고 나르시즘에 빠졌지만 한없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기도 하다. 지독한 냉소주의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따뜻한 인간적인 속살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은 드라마가 시작하면서 이미 예견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그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냥 한순간에 가슴을 활 열어젖혀보일 것인가. 아니면 뜨거운 눈물이라도 흘리면서 여리디 여린 속내를 들여보일 것인가. 그 순간이 왠지 아슬아슬했었다. 한편으로는 제발 그러지않길 바라면서.강마에게는 가혹한 말이겠지만 제발 진부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다소 약간은 느슨해진 감이 없지 않았던 8화에 이어 지난 10월 8일분(9회)에서는 석란교향악단원들과 강마에의 갈등이 최고조를 이루면서 긴장감을 자아냈다. 지휘자의 사과를 요구하는 단원들과 절대로 사과를 할 수 없다는 강마에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오갔다. 단원들의 거센 항의에 수세에 몰린 강마에는 결국 사과를 하기로 다짐하고 단원들 앞에 선다.

단원들에게 사과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하던 강마에. 마지막부분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에서 말을 잠시 흐리다가 갑자기 힘주어 '사과를 하지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심이 아니기때문입니다'라고 못박았다.

시청자중에는 그 대목에서 강마에가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까. 하지만 난 아니었다. 그러면 너무 시시하다. 강마에가 정말 시시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건 정말 현실에서나 있을법한 우울한 이야기다. 타협하고 계산하는 사람은 현실에서 질리도록 보아왔다. 드라마에서까지 그렇게 닳고 닳은 사람을 보고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사과를 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큰소리치는 그 모습에 나는 얼마나 통쾌했던가.

그 대신 강마에는 단원들의 권리와 대우를 확실하게 보장해줄 것을 약속한다. 대신 프로연주자로서 갖추어야할 연습량과 의무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못박는다. 더 이상의 타협은 없었다. 강마에다운, 강마에스러운 모습이다. 어쩌면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그다운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싶다.

악장의 뒷모습도 아름다웠다

강마에만 멋질까. 악장이 오케스트라를 떠나는 장면을 눈 여겨본 청취자는 얼마나 될까. 그는 강마에의 출중한 능력과 카리스마, 실력을 인정했지만 역시 그의 독설, 냉소, 오만을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떠난다. 욕하면서 투덜투투덜 떠나는 게 아니라 환한 웃음과 격려의 말을 남기고 떠난다. 억수로 퍼붓는 비속에서 우산을 편뒤 바이올린을 소중히 껴안고 오케스트라를 떠났던 악장의 모습이 아름다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장면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또 하나 더 있다. 지휘자 강마에와는 별개로 또 다른 프로연주자로서의 자존심도 함께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계속 오케스트라에 남았다면, 아니 어쩌면 극흐름상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도 어쩌면 '똥덩어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 갈길을 찾아 당당히 떠나는 그 악장도 강마에만큼이나 '멋진놈'이다. 마에스트로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끝까지 안되는 것이었기에 타협하지 않았다. 멋지지않는가.

강마에가 단원들에게 사과를 하지않자 사과를 종용하러 온 첼리스트 정희연(송옥숙)은 강마에에게 이렇게 넌지시 충고하는 장면이 있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 고개를 숙이고 싶지않아도 고개를 숙여야할 때가 있어. 그러니까 너만 굉장히 특별한 것처럼 그렇게 굴지마."

그 말에 공감은 하면서도 그러나 강마에만큼은 그렇지않았으면 했다. 고개를 숙이고싶지 않을때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때일수록 오히려 고개를 더 꿋꿋이 쳐드는 그런 인물로 남았으면 한다. 궁정과 타협하기 싫어 궁정을 뛰쳐나온 베토벤처럼.


#강마에#베토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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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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