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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길들이 얼마나 잘 뚫렸는지 모른다. 영동고속도로로 굽이굽이 넘던 대관령 길을 모두 굴을 뚫어 질주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 덕에 지난 3일의 여행은 한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연휴라 밀리는 차들 때문에 옹골차게 시간을 허비하긴 했지만.

 

이번에 군에 간 아들을 면회하면서 설악산을 중심으로 있는 두 고개들을 넘어볼 기회를 얻었다. 미시령과 한계령이 그것이다. 굳이 양양과 속초, 강릉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아들의 요구에 따라(외박은 부대가 위치해 있는 동네에서만 가능하다) 설악산 주변을 관광하기로 한 것.

 

때로 인생에는 오르막이 있다

 

아들은 곧이곧대로만 하는 녀석이다. 우리 부부 또한 거기에 못지 않다. 그러니 소위 '범생이들만'의 여행 잔치가 벌어질 수밖에…. 부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곳은 아예 생각도 못하다 보니 설악산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창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산이 아들 부대 가까이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설악산을 돌아보는 것으로 1박2일 아들의 면회 일정을 잡았다. 걸어서 설악산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좋은 감상은 없을 테지만 그것은 체력이나 시간 여건상 불가능하다.

 

하는 수 없이 두 개의 고개를 넘고 한 개의 골짜기를 등반하는 것으로 우리 식구의 설악산 구경 계획표가 작성되었다. 한 개의 골짜기 여행 기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에는 두 고개 여행 기사만 쓰기로 하겠다.

 

이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미시령은 미시령터널이 생겼다. 약간의 통행료를 지불하면 꾸부렁대는 옛길 대신 금방 속초 쪽에서 인제 쪽으로 달려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미시령의 옛길을 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만남의 광장 오른 쪽으로 난 옛길을 택해 방향을 잡았다.

 

앞에서 트럭 한 대가 힘겹게 기어오르고 있다. 이런 때 대한민국 운전자들이 잘 참지를 못한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말자' 다짐을 했기에 그 뒤를 잘도 참으며 따라 올랐다. 트럭이 내뿜는 매연을 피할 요량으로 좀은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갔다.

 

때로 우리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야 할 때가 있다. 너무 힘들다고 심술만 피우지 않았는지. 다른 이들이 나의 앞길을 막았다고 불평만 해대지 않았는지. 너무 돌아가는 길이 지루하다고 게으름을 피우진 않았는지. 이런 생각들이 주마등 되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 새를 못 참고 추월하는 택시며 승용차가 어찌나 고마운지. 그들에게 트럭의 매연은 다 뒤집어쓰라고 하고 나는 멀찌감치 따를 수 있으니 말이다. 모처럼 여유 있는 운전을 해 보니 그 맛이 쏠쏠하다. 늘 한가로운 여행을 하듯 이리 멋진 운전을 해 보리라 다짐을 하며, 인생을 운전함에도 이러면 좋겠다 싶었다.

 

미시령 옛길의 정취가 나의 옛날을 떠올리게 하다

 

차를 댈 곳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내 자그마한 차 한 대 댈 데가 없으랴' 하는 여유로 잠시 기다리니 저만치서 차 한 대가 빠진다. 얼른 대고 차창을 여니 세찬 바람이 옷깃을 밀고 들어온다. 아직 여름이라고 푸념하며 지냈는데 내 사는 동네의 기운하고는 사뭇 다르다.

 

"여보, 추워요. 점퍼 걸쳐요."

 

아내의 충고가 귓전을 때릴 때까지 멍하니 밖만 쳐다봤다. 아내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점퍼를 걸치고 나가니 딴 세상이 위아래로 질펀하다. 휴게소 건물 뒤쪽으로도, 앞쪽으로도 장관인 산등성이들이 자기 자랑을 하며 고개를 내밀고 '나를 봐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직은 얇게 가을이 물든 산의 나무며 풀잎들의 모습이 꼭 엷은 화장을 한 여인네 모습이다. 아직은 짙지 않은 화장이 어떤 면에서는 더 아름다운 법, 미시령은 그렇게 얇게 가을 화장을 하고 나를, 내 가족을 맞아줬다. 참 자연은 정겹다. 언제 봐도 미시령은 그 모습으로 살갑다.

 

누가 말했던가. '휴게소는 들르라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 가족은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휴게소로 들어섰다. 첫 번에 내 눈에 띈 물건은 메밀로 빚은 큼지막한 떡, 내 눈빛을 알아챈 아내가 돈을 지불한다. 한입 베어 먹으니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

 

아들 녀석도 맛있는 모양이다. 크게 문 입이 탐스럽다. 아내만은 "별로네"라고 상인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말한다. 나중에 "왜 별로야?"라는 내 질문에 "봉평에서 먹던 메밀 부꾸미와는 비교가 안 돼요"라는 것이다. 아내 말을 들으니 나도 동의가 갔다.

 

다시 한 번 망원경 옆에 서서 사진도 찍고 바람도 맞았다. 미시령 한 가운데 서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내 인생에도 이런 고개가 있었다는 생각을 생뚱맞게 했다. 지난 몇 년간 치렀던 자지러지던 인생의 고비 맛이 새삼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싸늘하다 못해 한파였던 그 맛….

 

한계령의 더 고운 맛에 취하다

 

난 '이 고개를 내려가며 과거의 내 인생고개도 다 내려와야 한다'라고 억센 다짐을 했다. 막 가을이 부스스 색깔들로 들고 일어나는 모습이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다. 용대리를 지나 다시 한계령을 오르며 아까 봤던 미시령의 가을 하고는 또 다른 정취를 느꼈다.

 

미시령이 엷은 화장을 한 여인네라면, 한계령은 한계를 모르고 찍어 바른 연지와 곤지가 선연한 예쁜 새색시다. 같은 설악산인데도 미시령 쪽과 한계령 쪽은 아주 다르다. 한계령은 이미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고나 할까. 벌써 울긋불긋 오색찬란하다.

 

한계령 하나만으로 봐도 오를 때와 내려올 때가 또 다르다. 오를 때는 그렇게 붉은 태를 내던 산들이 내려올 때는 다시 검푸른 색이 더 많다. 사람들은 같은 인생이라고 다 행복 아니면 불행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고개와 저 고개가 다르듯, 오를 때와 내려올 때가 다르듯, 인생 또한 불행과 행복이 교차한다.

 

많은 이들이 인생을 고개에 비유한다. 인생을 산에 비유한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그냥 비유만은 아닌 듯하다. 이번에 설악산의 두 고개를 넘으며 인생의 고개 또한 이런 스릴과 만감이 교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직도 두 고개 위에 섰을 때 불어오던 바람이 내 마음 속에서 일렁인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라도 고개를 넘듯 여유롭게 넘어 온 맘으로 맞다 보면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인생 고비마다 순간마다 차오르리라. 행복이라 부르면 행복이다. 불행이라 부르면 불행이다. 아들과 헤어지며 건넨 한 마디에 더 큰 힘이 주어진 것을 아들 녀석은 알려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시령#한계령#설악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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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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