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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경기도 양수리 갑산공원에 탤런트 故 최진실의 분골함이 안치되었다.
4일 오후 경기도 양수리 갑산공원에 탤런트 故 최진실의 분골함이 안치되었다. ⓒ 유성호

탤런트 최진실씨의 죽음을 놓고, 이를 상업적·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 2일 오전 최씨의 사망 소식이 속보로 전해지자, 대다수 언론사들은 이 사안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국민들의 충격과 뉴스의 파괴력을 감안한다면 그럴만하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언론은 자살자의 이름과 사진,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언론 스스로 정한 '자살 보도 권고기준'마저 무시했다. 오죽하면 언론 보도를 본 누리꾼들이 "진짜 악플러는 누리꾼이 아니라 루머를 부풀렸던 언론과 기자들"이라고 했을까.

 

최진실씨를 두 번 죽인 건 비단 언론만이 아니다. 최씨의 시신이 화장터로 운구되기도 전에, 여권은 소위 '최진실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터넷 재갈법을 부랴부랴 다시 띄웠다. (6일 오전 최진실씨 유족들이 '최진실법'에 대해 실명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칼럼 주제상 불가피하게 이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한 양해를 바란다.)

 

최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모든 원인을 악플이라고 명쾌히 단정하고, 최진실의 이름으로 악을 단죄한다는 식의 논리를 부추겼다. 아직까지 최씨가 왜 죽었는지,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복잡다단한 인과관계의 실타래가 하나도 풀리지 않은 상태인데도 말이다.

 

이어 경찰청은 여당이 펼쳐놓은 '최진실 좌판'에 새로운 물건을 납품하듯, 오늘(6일)부터 한 달 동안 전국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 및 악성댓글에 대해 집중단속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감 첫날,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몇 달 동안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인터넷상 비판 보도와 댓글들을 관리하는 사실상의 인터넷 사찰반을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 자료들은 고스란히 검찰과 경찰에 넘겨졌다.

 

최진실씨 사망 사건에 대한 애도 치고는 너무나 계산 속이 훤히 드려다보인다. 악플의 문제는 그야말로 악플에 대한 처벌로 푸는 게 맞다. 인터넷 전반을 잠재적 범죄소굴로 몰고가는 건 다분히 정략적이다. 요리에 사용되는 칼이 어쩌다 살인도구로 쓰였다고 해서 칼 사용을 금지하거나, 음주사고가 벌어진다고 해서 금주령을 내리는 것처럼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일이다.

 

최진실씨 앞에서 좌판 벌이는 언론-여권-경찰

 

 지난 7월 30일 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당선 확정 뒤 지지자들과 함께 축하의 떡케잌을 자르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당선 확정 뒤 지지자들과 함께 축하의 떡케잌을 자르고 있다. ⓒ 유성호

'최진실법'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언론이나 정치권이 관심을 보여야 할 입법 사안은 오히려 '공정택(감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7월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언론들은 앞다퉈 서울시 교육감이 사실상 대한민국 '교육 대통령'이라며 그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런 자리에 당선된 공정택 교육감이 선거운동에서 뿐만이 아니라 선거자금에서도 사설학원 관계자로부터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면, 공정택 선거운동본부의 총괄본부장이었던 최명옥(종로M학원장·학원총연합회 부회장)씨와 수도학원 이사장인 이재식씨에게서 7억여 원의 선거자금을 빌렸다는 것이다. 이는 공 교육감이 서울시 선관위에 제출한 '정치자금 수입·지출부'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공 교육감쪽에서는 "최씨는 사제지간이며 이씨는 공 교육감의 매제인데다 개인적 친분으로 빌려준 것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사교육 문제'를 풀겠다는 교육감이, 설령 빌린 돈이라고 할 지라도 사설학원을 등에 업고 선거를 치러 당선됐다면, 이후 펼쳐질 교육정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최근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이 통계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8년도 상반기까지 소득별 가구 소비지출 현황을 보면 상위소득 10%의 교육비 증가율은 46.3%에 달하고, 하위소득 10%의 교육비 증가율도 16.9%나 된다고 한다. 교육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상·하위 소득계층 모두 사교육비 지출은 계속 늘어난다는 게 우리 교육의 현 주소다. 그런데 사설학원이 물심양면으로 밀어줘 당선된 교육감이 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을까.

 

국내외 경제 여건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태에서, 서민 가계는 주거비와 교육비라는 갈수록 무거워지는 돌덩이에 짓눌리고 있다. 어느 하나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억제해야 마땅할 서울시 교육감이 사설학원의 돈까지 빌려 선거를 치르고도 별 일 아닌 듯 치부한다면, 사교육비 감소에 대한 기대치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이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이후 교육감 선거는 대형 사설학원들의 스폰서 경쟁의 대리전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언론은 최진실씨 사망 사건에 보여준 순발력과 세심함을, 정부 여당은 인터넷재갈법을 밀어붙이려는 치밀한 전략과 뚝심을, '최진실법'이 아닌 '공정택법'에 적용해야 마땅하다. 진짜 문제는 '최진실법'이 아니라 '공정택법'이다. 제발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라.


#최진실법#공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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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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