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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서남부권 인근에 위치한 아파트단지. 이미 주변은 아파트 숲으로 둘러쌓여 있다.
 대전 서남부권 인근에 위치한 아파트단지. 이미 주변은 아파트 숲으로 둘러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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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가 마을 입구를 스쳐 지나갔다.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였다.

불도저 굉음이 한창인 대전 서구 도안동 일대에서 더는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었다. 미처 철거되지 않은 빈집과 뽑히지 않은 정자나무, 간간히 지나는 시내버스만이 과거 이 곳에 마을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대전의 마지막 남은 땅 서남부권이 파헤쳐졌다. 서남부권 개발 사업은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20만 인구를 유입시키겠다는 대전시의 대형 프로젝트다. 현재 1단계 사업으로 183만평에 대한 토지보상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2010년까지 아파트 등 2만3000호(6만 5000명) 짓기 사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말 서남부지역 9블록 분양은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뒤이어 분양을 시작한 3블럭과 16블럭은 수개월째 모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상당수 건설사는 사업계획 자체를 미루고 있다.  

A건설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7개월째 분양하고 있지만 현재 70% 정도의 분양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 뚝... 중개업 시작 이후 최악"

 서남부권 아파트 건설현장
 서남부권 아파트 건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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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위기 맹꽁이를 살리자는 현수막이 애달프다.
 멸종위기 맹꽁이를 살리자는 현수막이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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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가수원동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경기를 묻자 "아예 거래가 뚝 끊겼다"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유성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도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한 5년 동안 최악이다"고 말했다. 그는 서남부권에 대해서도 "이미 수년 전 대전지역 아파트 공급률이 100%를 넘어섰는데 수요가 있겠느냐"며 "개발되더라도 외지인 유입효과가 적고 인근 대전 주민들 중에서 서남부권으로 이사할 세대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 지인은 "투자를 하려고 아파트에 대해 문의하는 것이라면 당분간 쳐다보지도 말라"고 기자에게 충고했다.

실제 대전지역 미분양 아파트는 8월 말 현재 3000호에 이른다. 이중 준공이후에도 분양이 되지 않는 곳이 1000호다. 미분양률이 높은 곳은 유성구-중구-서구-동구-대덕구 순이다. 대전 둔산 지역 공실률도 2002년 6%에서 2005년 8.9%로 상승세다.

반면 2006년 대전시가 수립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는 대전 원도심 202개 지구가 주택재건축 및 재개발, 도시정비사업 대상지구로 지정돼 있다.

대전 중구의 한 재개발 사업지구 관계자는 "상반기 내내 분양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미분양 세대가 많다"고 밝혔다.

 서남부권 아파트 건설현장
 서남부권 아파트 건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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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간히 지나는 버스길이 끊길 날도 멀지 않았다. 도로를 폐쇄하니 출입을 금한다는 현장소장의 안내문.
 간간히 지나는 버스길이 끊길 날도 멀지 않았다. 도로를 폐쇄하니 출입을 금한다는 현장소장의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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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아파트 3000호인데, 대전 원도심 202개 지구 재개발 대상

이에 대해 건설업계에서 일하는 김아무개(43)씨는 "서남부권을 비롯, 건설사들이 원자재 값 폭등 등으로 분양시기를 조절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각 동별로 수많은 재개발이 예정돼 있어 공급이 수요를 크게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이와 유사한 이유를 들어 대전시에 숱한 경고음을 보낸 바 있다. 

지난 2000년 초.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대전시의 서남부권 개발 계획과 관련, 원도심 쇠락과 도시 불균형 발전을 초래하고 개발 수요 또한 불투명하다며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전시는 '주택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며 대규모 개발계획을 밀어붙였다. 시는 또 2020년까지 대전 인구가 2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개발로 늘어나는 교통량을 처리하려면 불가피하다며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월평공원을 관통하는 터널 및 교량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청의 인구변화추계는 2030년 대전시 인구를 160만 7천명으로 예측하고 있다. 게다가 인근에는 행정도시가 건설중이다.

 분양을 끝낸 서남부권 9블럭
 분양을 끝낸 서남부권 9블럭
ⓒ 대전도시개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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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리기 직전의 빈집
 헐리기 직전의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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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는 2020년까지 200만 명, 통계청은 2030년 160만 명

고은아 대전환경운동연합 국장은 "대전시가 인구수를 부풀려 놓고 무리하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미 기존 도심에 들어선 아파트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는데 원주민을 내쫓고 서남부권 신도시를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서남부 1단계 개발계획을 대폭 축소하고  2~3단계 개발계획은 백지화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개발 이면에 가려진 철거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애달프다. 도안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야산에서 밤을 줍다 카메라를 든 기자를 보고 쫓아 내려왔다.

그는 "살던 집이 모두 철거돼 없어졌는데 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1000만원도 되지 않아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잘 살고 있는 마을을 강제철거하고 갈 곳도 없이 만들어 놓는 것이 개발이냐. 건설사와 부자들만 배불리는 개발 사업에 진저리가 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토지공사 대전충남지역본부에서 지난 해 해당 지역에 대한 행정대집행 과정에 서울역 노숙인들을 대거 동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부는 최근 향후 10년간 120조원을 투입해 150만 가구를 공급하고 이중 80만호는 임대 및 공공임대주택으로 건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전문화연대 관계자는 "공급과잉으로 지방마다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 마당에 또다시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나 기존 도심 아파트마저 남아도는 때에 서남부권 신도시 건설에 재건축·재개발 정책을 쏟아 내는 대전시 모두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빈집 안방에 붙은 법원 고시문.  채권자가 한국토지공사이고 채무자가 전 집주인이다.
 빈집 안방에 붙은 법원 고시문. 채권자가 한국토지공사이고 채무자가 전 집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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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아파트#서남부권 #대전 원도심#월평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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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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