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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저마다의 가슴 안에 얼마만한 고독을 지니고 살아가는지, 그 고독이 발원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그러나, 대충 이런 대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고독? 견디기 힘든 외로움과 슬픔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98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인간에 관한 문학 탐구를 지속해온 김윤영(37)이 <루이뷔똥>, <타잔>에 이어 3번째 소설집을 내놓았다.

 

최근 출간된 김윤영의 신작 소설집 <그린 핑거>(창비)는 앞서 언급한 생의 중요한 문제들, 하지만 쉽사리 해답을 찾기 힘든 고독과 사랑에 대한 탐구로 읽힌다.

 

굵직한 이 두 단어 아래 열등감과 연애, 허영과 인연, 운명과 죽음 등도 그의 문학 탐구의 범위에 포함됐다.

 

개별적 줄거리를 가지는 2개의 단편과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이라는 부제를 단 5편의 연작이 실린 책에서는 30대 작가다운 젊은 감각보단 진중하고 묵직한 주제의식이 더 돋보인다. 같은 또래 작가들이 사용하는 가벼운 소설식 코드를 사용하면서도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러한 진지함과 무거운 주제의식은 이미 전작들에서부터 김윤영 소설을 특정 짓는 가장 주요한 핵심어였다. 그래서 그의 소설이 딱딱하고 어렵냐고? 천만에다.

 

진중한 주제의식에 재미를 결합해낸 소설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년의 시간 동안 김윤영은 이 두 가지를 어색하지 않게 결합해내는 재능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과 재미를 결합해 내는 능력

 

"김윤영의 소설들은 독특하다. '블랑팡'이나 '칼라트라바'와 같은 브랜드에서 학벌, 직장, 외모 등 인간의 본질을 대신하는 브랜드까지 문학적 코드와는 거리가 먼 통속적인 코드들이 넘쳐나지만 묘하게도 이 통속성은 어느 순간 당대성이라는 큰 힘을 획득한다… 그의 소설들은 물수제비처럼 가볍게 수면 위를 날아가지만 아주 먼 곳까지 여러 겹의 파장을 일으키며 오랫동안 흔들린다."

 

위에 언급한 소설가 하성란의 상찬에 답하듯 이번 소설집에서도 김윤영은 통속적 코드를 문학적 코드로 능수능란하게 전환시켜 독자들의 가슴 속에 울림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통속성과 당대성의 경계를 허무는 '소설적 힘' 역시 여전하다.

 

언청이로 태어난 여성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환멸을 미세한 감정 묘사로 그려낸 표제작과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현대인의 피폐를 보여주는 '전망 좋은 집'은 나무랄 데가 별로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린 핑거>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5개의 단편을 통해 사랑과 연애, 고독의 본질에 접근하려 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연작이다. 늦은 밤. 밝지 않은 조명 아래서 이 연작을 읽을라치면 '사랑은 전략이 아니다' 혹은, '연애만으론 결코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냉혹하지만, 정직한 속삭임이 들릴듯하다.

 

지금 사랑과 연애, 결혼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들은 물론, 인간의 삶 속에서 이 단어들이 점하는 위치를 가늠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어울릴 책이다.


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 창비(2008)


#김윤영#그린 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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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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