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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동생이 왼손잡이였다.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와서 밥 먹는 걸 싫어했다. 왼손으로 숟가락질 하는 걸 할머니가 그냥 두고 보질 않았기 때문이다. 왼손에 잡은 숟가락을 빼앗아 오른 손에 들려주고, 동생은 다시 왼손으로 옮겨 쥐고, 할머니는 다시 빼앗고…. 결국 아이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일쑤였다.

 

어린 생각에도 할머니의 행동은 지나치다 싶었지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같이 앉아 밥을 먹는 작은 아버지는 왼손잡이인 아들 편을 드는 게 아니라 할머니 편을 들었다. 마치 왼손잡이 아들을 둔 게 죄라도 되는 것처럼.

 

사촌 동생은 이제 어른이 되어 명절 때면 아들 딸 안고 우리 집을 찾는다. 이젠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고 눈총 주고 숟가락 빼앗을 할머니도 안 계시지만, 사촌 동생은 오른 손에 숟가락을 들고 왼손에 젓가락을 든다. 양손잡이가 된 것이다.

 

차별과 억압의 대상 왼손잡이

 

인류의 10% 정도가 왼손잡이라고 한다. 이들은 90%를 차지하는 오른손잡이들과 같은 행

동을 하도록 강요당하며 살아간다. 인류가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주류들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비주류들에게도 강요하는 일이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왼손잡이로 태어난 사람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오른손잡이들의 생활과 문화를 강요당하며 살아간다. 차별과 억압에 굴복해서 오른손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차별과 억압의 강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왼손잡이가 오른손을 쓰며 살아가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역사 속의 왼손잡이, 그들의 특성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역사(엄밀하게 얘기하면 서양의 역사)에서 삶의 자취를 남긴 인물들 중에 왼손잡이들의 업적을 뽑아 보여주고 있다.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소개한다.

 

어떤 인물들이 소개되었을까?

 

람세스/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잔 다르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아이작 뉴턴/ 나폴레옹/ 베토벤/ 빅토리아 여왕/ 루이스 케럴/ 마크 트웨인/ 니체/ 헨리 포드/ 마하트마 간디/ 찰리 채플린/ 베이브 루스/ 엘런 튜링/ 지미 헨드릭스/ 폴 메카트니/ 빌 게이츠/ 나브라 틸로바/ 존 메켄로/ 레이건/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이들 인물을 소개하면서 왼손잡이들의 공통된 특성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왼손잡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 특성은 무엇일까?

 

직관력/ 감정 이입 능력/ 시각·공간 능력/ 수평적 사고/ 화를 잘 내는 성격/ 고독/ 인습 타파/ 독학/ 실험정신/ 공상가

 

책을 읽은 뒤 밀려드는 허전함

 

<왼손이 만든 역사>란 제목만으로는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왼손잡이들의 특성을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분석했다기보다는 억지로 꿰맞추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더구나 인류 역사 속의 왼손잡이들로 선정된 인물이 거의 당대 주류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비록 왼손잡이라는 약점은 있지만 그 약점을 상쇄할 만한 재력이나 권력 또는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대부분 서양 사람들이다.

 

<왼손이 만든 역사>란 야심찬 제목을 달기에는 선정된 인물들이 특정 계층 인물들, 특정 지역 인물들로 제한되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동서양의 좀더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계층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폭넓은 사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왼손잡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 특성 또한 기존의 틀에 각 인물들의 특성을 억지로 맞추려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왼손잡이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하지만 차별받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날 수 있는 특성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오른손잡이인 내가 해당되는 특성이 여럿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꼭 내 얘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짧은 시간 재미있게 읽기에는 적합한 책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뒤 여운이 오래 남을만한 책은 아니다.

 

<왼손이 만든 역사>(에드 라이트 저/송설희 역/말글빛냄/2008.07.10)


왼손이 만든 역사 - 람세스에서 빌 클린턴까지, 위대한 왼손잡이들의 역사

에드 라이트 지음, 송남주.송설희 옮김, 말글빛냄(2008)


#왼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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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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