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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재울3구역에 있는 한 연립주택의 모습. 창틀과 창문 등이 모두 뜯겨져 나갔고, 주변에는 폐물만이 잔뜩 쌓여있다.
가재울3구역에 있는 한 연립주택의 모습. 창틀과 창문 등이 모두 뜯겨져 나갔고, 주변에는 폐물만이 잔뜩 쌓여있다. ⓒ 송주민


 가재울뉴타운 지역에 붙은 이주공고. 8월 31일까지 이주를 마쳐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가재울뉴타운 지역에 붙은 이주공고. 8월 31일까지 이주를 마쳐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 송주민

"뉴타운 15곳을 추가 지정한다고? 완전히 미친 짓이다."
"서울 곳곳에 수억 원에 달하는 '명품 아파트' 만든다는 명분으로 집 없는 서민들은 길거리로 내몰겠다는 거 아닌가."
"비싼 추가 부담금 때문에 20년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가재울뉴타운4구역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실무자 안무환 남가좌1동 통장협의회장, 4구역에 사는 한 세입자, 그리고 이 지역 주택 소유자인 김아무개(77)씨가 차례로 쏟아낸 말이다. 지난 9월 19일 국토해양부가 수도권 도심에 뉴타운 25곳을 추가 지정하고, 향후 10년간 180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이들이 보인 반응이다.

철거 및 개발을 코앞에 둔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 이곳에 거주하는 조합원·세입자들은 '뉴타운 추가 개발'이 탐탁지 않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조합조차도 "뉴타운 정책은 너무 잘못됐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조합이 '불만'을 나타내는 정도라면, 영세 세입자들은 거의 '이를 가는' 수준이다. '가재울4구역세입자모임'에서 활동 중인 대화명 '잠와'는 "서울에서 서민들을 다 내쫓으려 하고 있나 보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계속되는 뉴타운 개발 사업에 대한 강한 불신이 배어 있었다.

지역 주민들의 희망이던 '뉴타운 개발 사업'이 절망으로 변하고 있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지역민들을 서로의 이익에 따라 갈라놓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질했기 때문이다. 또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 철거가 임박해질수록 갈 곳을 잃은 원주민들의 원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주변 전세값 폭등·이전비 보상 묵살... '폐허'된 지역 못 떠나는 세입자들

 가재울뉴타운4구역의 한 주택가의 모습. 현관과 창틀 등이 부분 철거됐고, 주변에는 부서진 가구 등이 널부러져 있다.
가재울뉴타운4구역의 한 주택가의 모습. 현관과 창틀 등이 부분 철거됐고, 주변에는 부서진 가구 등이 널부러져 있다. ⓒ 송주민

 가재울뉴타운 구역 골목에 쌓여있는 폐물. 현재 개발 지역 곳곳에는 이같이 쓰레기들이 널려있는 곳이 많다.
가재울뉴타운 구역 골목에 쌓여있는 폐물. 현재 개발 지역 곳곳에는 이같이 쓰레기들이 널려있는 곳이 많다. ⓒ 송주민

가재울뉴타운 공사 전후 세대수 현황

*가재울3구역
(서대문구 북가좌동 144번지 일대)
기존 주택수: 1371세대(주민등록세대수 4323) -> 건립 주택수: 52개동 3304세대.

*가재울4구역
(서대문구 남가좌동 124번지 일대)
기존 주택수: 1636세대(주민등록세대수 4270) ->건립 주택수: 63개동 4047세대.

서대문구 북가좌동과 남가좌동 일대에 위치한 가재울뉴타운 3·4구역, 이곳은 지난 6월 서대문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계획인가'(이주·철거 전 단계)를 받은 지역이다.

곧바로 재개발 조합은 주민들에게 "8월 31일까지 이주를 끝내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난 7월경부터 이주 및 철거가 본격화되고 있다. 9월 중순 현재, 주민의 70% 가량은 (각 조합 추산:3구역 약 90%, 4구역 약 50% 정도) 이주를 마친 상태다.  

주민들이 떠난 빈집에는 냉기가 흘렀다. 집집마다 창문과 창틀, 그리고 현관문은 모조리 뜯겨져 나간 상태다. 빈 주택의 담장에는 빨간색 페인트로 '철거'라는 글귀만이 적혀 있다. 집 주변과 골목에는 떠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다. 그야말로 '폐허'다. 마치 "명운이 다한 지역을 떠나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난잡함 속에서도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 발이 묶여버린 세입자들이다. 이들은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타운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인근 지역의 전세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서울 전역에 '뉴타운 광풍'이 한꺼번에 몰아치면서 집값이 치솟아 '서울 잔류'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법에 보장된 '거주이전비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세입자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개정된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조합은 이주를 원하는 무주택 세대주 세입자에게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4개월 치의 주거이전비(가계지출비), 동산이전비(이사비용)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조합 측은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모두 지급하면 중복보상"이라며 세입자들에게 둘 중 하나만 제공하는 사례가 많다. 4구역 조합 실무자 안무환 통장협의회장은 "민영개발에서 공특법('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적용해 주거비와 임대아파트 비용을 모두 지급토록 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서대문재개발연합회 차원에서 이에 대해 헌법소원 등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가재울뉴타운4구역 세입자들은 "조합이 위법한 보상을 하고 있다"며 서대문구청 등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청 측은 "공특법 제54조 및 제55조의 규정에 의하여 주거이전비 4개월분 및 이사비를 지급해야 한다"며 "해당조합에 관계법령을 이행토록 행정지도를 했다"고 밝혔다.

실제 서대문구청은 지난 8월 중순께 가재울뉴타운3,4구역 조합장에게 보낸 행정지도공문에서 ▲주거이전비가 종전 3개월분에서 4개월분을 지급토록 변경 ▲무허가건물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세입자까지 확대 지급토록 규정 ▲임대주택 대상 세입자도 주거이전비 지급 ▲동산의 이전비 지급 등을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서대문구청에서 가재울뉴타운3,4구역 조합장에게 보낸 행정지도공문. 적절한 세입자 대책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서대문구청에서 가재울뉴타운3,4구역 조합장에게 보낸 행정지도공문. 적절한 세입자 대책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송주민

세입자, 이사거부하며 '집단대응'...  조합 "'떼돈'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는 한 달이 넘도록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세입자들은 "조합은 보상을 요구할 때마다 '법해석의 입장이 다르다'고 말하며 버티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4구역 세입자 이아무개(52)씨는 "구청에서는 행정지도를 했으니 조합에 가서 알아보란 식의 말만 한다"며 "조합도 조합이지만 담당 공무원들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보다 못한 세입자들은 집단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 온라인상에 '가재울4구역세입자 모임'(http://cafe.naver.com/gajaewul4seip)을 만들고 공동행동에 나서고 있다. 9월 22일 현재 이 모임에 가입한 회원은 100여명이다. 세입자 모임은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기 전까지 이사거부 운동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서울시청 등에 민원제기 ▲집단행동을 조직하기 위한 전단 홍보 활동 등을 계속해서 벌여 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조합 측도 "우리도 억울한 상황"이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가재울3구역 태화엽 조합장은 "민영개발이라는 이유로 학교·도서관·임대주택 등 공공시설건설을 모조리 조합원 부담으로 돌리고, 정부에서는 단 돈 10원도 지원해주지 않으면서 세입자대책까지 떠맡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정부의 뉴타운 정책이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됐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안무환 통장협의회장은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도 정부를 비난하는 입장"이라며 "뉴타운 35곳을 지정해놓고 한꺼번에 개발해 '전세대란'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25곳을 또 추가 지정해 또 이 난리를 치겠다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또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면서 조합이 마치 '떼돈'을 숨겨놓고 거금을 착복하는 것 같은 말만 흘러나와 너무나도 괴롭다"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조합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이 이권 싸움만이 난무하는 '진흙탕'이 되어버린 '동네'의 모습을 보며 지쳐가는 주민들도 많다. 세입자 이아무개(52)씨는 "솔직히 그간 너무도 질려서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며 "원주민들의 안위는커녕, 땅 투기꾼과 건설 집단의 '전당'을 만들겠다는 것이 뉴타운 사업의 진정한 목적인 것 같다"며 허탈함을 표시했다.

조합원도 비싼 추가 부담금에 '쫓겨날 판'... 재정착률 17%에 불과

 가재울3구역의 한 연립주택의 모습.
가재울3구역의 한 연립주택의 모습. ⓒ 송주민

집을 가진 가재울뉴타운 지역 주민들의 불만도 예외는 아니다. '장밋빛 꿈'일 것만 같던 뉴타운의 실체는 기대와는 달랐다. 자산평가를 통해 받는 보상금으로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꿈에 불과했다. 적게는 1억에서 많게는 3억이 넘는 추가 부담금을 지불해야 됐기 때문이다. 

가재울4구역에 거주하는 김아무개(77)씨는 건평 27평형(대지 25평) 크기의 연립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뉴타운 개발 후,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2억 원에 가까운 추가 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타지'로의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 토지와 건물에 대한 보상금으로는 아파트 조합원 분양가를 맞추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10~33평 소유 자산평가액 6천~2억8천만여원, 34평 조합원 분양가 3억8천~4억3천만여원)

김씨는 "늦은 나이에 또 어디로 가서 집을 얻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 동네가 시장(모래내 시장)도 가깝고, 이웃들과 살기도 좋았는데 결국 돈 때문에 주거지를 잃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따라서 가재울3·4구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도 세입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토지비용 외에 추가로 들어가는 건설 사업비가 너무 커 '이중부담'을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주민대책위는 현재 ▲과다한 공사비용 책정 등 원주민을 상대로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를 부담토록 한 점 ▲재개발 조합 측이 불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한 점 등을 들어 '조합장 해임 및 후임 조합장 선출의 건'을 목적으로 하는 임시총회소집허가신청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최종 결정은 오는 10월 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가재울3구역의 한 주민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 사업은 '고분양가 폭탄'으로 서민경제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라며 "지역 주민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과 적절한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묵살한다면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뉴타운이냐"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 원주민조차 타지로 내모는 '공공사업' 뉴타운 개발의 '모순된 목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올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조사 결과, 뉴타운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17.1%에 불과했다. 뉴타운 개발이 '주민교체 사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도시부동산대학원)는 "뉴타운 개발 구조가 전면철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고, 수익촉진을 위해 중대형 아파트의 비중만을 늘리고 있다"며 "가옥자이든 세입자든 개발 지역 원주민의 총자산은 차이가 없는 상황인데, 추가 부담금만 늘어나니 입주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뉴타운은) 말이 공공사업이지 실제로는 개별 조합별로 이뤄지는 수익추구사업"이라며 "'고급 아파트' 입장에서는 (뉴타운 지정 구역이) 철거되거나 개선될 지역이지만, 현재의 소득수준으로 거주하는 원주민들 형편에서는 삶의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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