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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삼선개헌' 논의가 일어나던 시절에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대대적인 홍보(국민교육) 과정을 거친 다음 12월 15일 성대한 '선포식'이 거행되었다.

그 후 '국민교육헌장'은 주요 국가행사는 물론이고 초등학교와 마을회관의 자체 행사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모든 크고 작은 행사에서 필수적인 사항으로 힘차게 낭독이 되곤 했다. 유신 시절과 5공 시절에는 군인과 공무원과 학생들 모두 그것을 달달 외워야했고, 이런저런 시험에 '국민교육헌장' 관련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그런 풍경은 1990년대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까지 상당 부분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이런저런 행사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는 관행은 차차 사라지게 되었고, 이제는 국민들의 뇌리에서조차 거의 사라질 정도로, '용도 폐기' 상태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 '실용'이라는 말을 제창했을 때, 나는 대뜸 유신 시절의 '국민헌장교육헌장'을 떠올렸다. '국민교육헌장' 안에는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과 '실용'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쉽사리 연결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 뇌리에는 '국민교육헌장' 안의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라는 말이 깊이 새겨져 있을 법하다. 박정희 시대부터 '건설 현장의 역군'으로 살아온 사람이고, 평생을 줄기차게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며' 살아온 사람일 터이니, '능률과 실질 숭상'을 한 개 단어로 압축시킨 '실용'이라는 말은 이미 그에게 '하나님 신앙'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 말일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모로 박정희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 아니, 철저히 닮으려 하고 있다. 외모도 그렇고, 생각하는 방식이며 정치 스타일이 기본적으로 닮은꼴인데, 박정희 식 통치 스타일을 처음부터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닐까 싶어 다수 국민들은 불안과 공포도 느끼게 되고, 여간 걱정이 아니다.             

그의 여러 가지 언행을 놓고 볼 때, 박정희와 같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도 강한 것 같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가혹한 탄압으로 수많은 문제를 낳으면서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나라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박정희 대통령을 흠모하는 정도 큰 것 같다. 여러 가지 문제가 이리저리 가로놓이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태도는 참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수많은 난제 속에서 오늘도 불도저 같은 돌파의지를 발휘하며, 오로지 경제만을 최고 가치로 삼고 능률과 실질, 즉 '실용'을 추구하며, 자신의 생각과 말을 '법치'로 만들며 나아간다.

'실용'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삭막함과 살벌함, 야릇한 공포 같은 것도 느꼈다. 실용이라는 말은 우선 정감이 없는 말이다. 쉽게 기계주의를 연상시킨다. 실용을 운위하는 대통령 말씀이 금과옥조처럼 되어 순식간에 교육현장을 뒤덮는 현상에 아찔한 암담함마저 느낀다.

교육관료들뿐만 아니라 교단의 일선 관리자들 거의 모두 실용이라는 말 앞에서 아무런 고민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실용 교육'을 위해 실용성 좋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실용이라는 것이, 비약적인 논법을 경계하더라도 비인간화, 기계주의 따위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비교육적이고 위험한 것임에도, 교육 현장에서부터 그것은 이미 물신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개신교 장로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용'을 최고 가치로 삼는 것에는 대단한 모순이 결부되어 있다. 그는 서울 시장 시절에 "서울특별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을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과거의 이승만 대통령과 흡사하다. 그런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고위 공직자들이 복음 전파 사명을 띠고 이런저런 형태로 과잉 충성을 했다. 그래서 나라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것은 일단 좋은 뜻일 수 있다. '사랑이 넘치는 살기 좋은 나라,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대통령부터 그리스도 정신, '사랑'을 지녀야 한다. 또 '실용'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관용, 겸손, 양보, 정직 등등의 덕목들을 포유하는 것임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답습한 '국민교육헌장'의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라는 말에 경도되어 오늘날 경제적 가치만을 최고로 삼고 '실용'을 추구하면서, 그리스도 사랑의 정신이 완전히 결여된 채로 독선과 아집과 권력 남용으로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단연코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11일치와 천주교계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 10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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