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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탄리에서 내렸다. 삼가리 작업장까지는 걸어야 한다. 예전부터 한번 걸어 가리라 했는데 명퇴를하고 자연스럽게 맞닥뜨리게 되었다. 유원지로 만든 데크길을 따라 민물고기 연구소까지는 즐기며 왔다. 여기서 작업장으로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다시 돌아나가든지 아니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돌아가는 길은 너무 편하고 싱겁고 맥빠지는 길이다.

 

'처음 가는 길로 가보자'

 

풀들이 우거져 길이 없다
풀들이 우거져길이 없다 ⓒ 박건

어쩌면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들어서고 보니 처음부터 길이 없는 땅이었다. 그래도 흙이 보이고 발을 디딜 만했다. 한참 헤치고 가다 보니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아래는 강이고 깊지는 않았지만 빠지면 카메라 장비도 젖을 수 있는 깊이였다. 돌아갈까 뒤 돌아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바위 등선이 가파르기는 해도 높지는 않았다.

 

'넘자'

 

카메라와 주머니에 지갑과 핸드폰을 배낭에 옮겨 담았다. 샌들의 끈도 조여맸다. 버려진 막대기를 들어 지팡이로 삼았다. 바위를 타고 보니 놀라운 풍경이 나타났다. 낚시꾼이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아주 호젓한 낚시터였다. 누구도 쉽게 올 수 없는 비밀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인적 드문 곳에 낚시꾼
인적 드문 곳에낚시꾼 ⓒ 박건

이런 곳에서 누가 낚시를 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곳이었다. 텐트는 떠내려 가지 않도록 끈을 이어 바위에 단단히 묶어 두었다. 생수통 버너 살림도구도 있는 걸로 보아 숙식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없고 강물에 빈 낚시만 드리워 있었다. 낚시줄을 넘고 텐트를 조용히 지나쳤다.

 

'막혔네'

 

여기도 바위가 강물에 잠겨 막다른 길이었다. 또 다시 바위등선을 넘어 가던지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강 건너 멀리 다리가 보였다. 이것을 넘으면 평탄한 강변 자갈을 밟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넘자'

 

넘어 보니 예상과 달랐다. 사행천이 나타나고 마른 갈잎과 각종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었다. 처음엔 쓰레기가 반가웠다. 사람이 버려 놓은 듯하니 길이 나오겠지 싶었다. 푹신푹신한 억새풀이 쌓인 바닥은  마치 늪 같이 푹푹 빠졌다.

 

그러나 길은 보이지 않았다. 산수유와 풀들이 빈틈 빼곡이 자라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돌아가기에도 너무 깊이 온 듯했다. 쓰레기도 사람이 버려 놓은 것이 아니라 홍수로 떠밀려 온 것이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제는 강도 집도 앞도 보이지 않았다. 풀섶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문득 겁이 났지만 하늘을 보니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구조를 요청할 핸드폰도 있고, 해가 지려면 시간도 충분했다.

 

풀들이 억세고 거칠게 자라 헤쳐 나가기도 타고 넘기에도 쉽지 않았다. 몸을 바닥에 바투 낮추어 땅만 보며 기듯 걸었다. 햇볕이 뜨겁고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짚풀과 거미줄이 모자와 배낭을 스치고 감았다. 뱀이 나타나거나 땅벌집을 건드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검은 흙들은 물컹하고 질척였다. 사람 발자국은 내가 처음 찍지 싶었다. 누구도 다닐 수 없는 길을 내고 가는 셈이었다.

 

'평탄한 길을 두고 왜 이 고생이람!'

 

마음 속에서 잠깐 후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짜릿했다. 아무도 없는 호젓함과 호기심과 모험이 야릇한 쾌감을 불러 일으켰다.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공되고 인위적인 일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본능적이어서 생동감과 긴장감이 더했다. 가도가도 길은 나타나지 않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다.

 

뒤를 보아도 옆을 보아도 온통 숲과 풀더미 속이었다. 어느덧 잔가지들이 시야를 가리고 사방을 포획하고 있었다. 사방이 똑같은 모습으로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잘못하면 방향을 잃고 오랫동안 헤매겠다는 낭패감과 공포감이 들었다.

 

'강쪽으로 가자'

 

일단 강으로 나가서 시야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직감과 예감으로 방향을 정하고 나뭇가지를 꺾고 풀을 헤치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한참을 헤매서야 은빛 강물이 풀더미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수풀을 헤치고 끝자락을 뚫고 나오니 넓고 시원한 강이 펼쳐졌다. 사방이 확트이면서 긴장이 풀렸다. 다행이 강물도 무릎 정도 깊이로 얉아 보였다.

 

'살았다'

 

강 건너 길이 있고 집도 보였다. 온길은 돌아보니 산으로 이어진 인적 없는 황량한 숲이었다.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을 헤쳐 빠져 나오는 느낌이 생생했고 높이 살 만했다. 쓰지 않고 죽어 있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온몸에 피부 촉각, 물비린내 흙향기 후각, 부서지는 풀소리, 발자국소리, 숨소리, 청각. 발바닥 발가락 움직임도 살아난 느낌이다. 그제서야 샌들의 끈이 하나 터져 있는 것을 알았다.

 

길 헤매다 접어든 길
헤매다 접어든 길 ⓒ 박건

선택의 여지 없이 아침으로 먹어 두었던 햄버거가 듬직했다. 그 에너지가 아니었으면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숲 속에 떨어진 밤톨도 속 껍질째 먹었다. 쌉슬하고 텁텁한 미각이 갈증을 풀어주어 고마웠다.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면서 들었던 공포도 짜릿했다.

 

길을 만나니 평화로웠고 여유가 생겼다. 황금빛 들판이 눈부시고 벼익는 향기가 구수했다.

이 모든 것이 살아 있으니 느끼는 감각이요, 감정이다. 이런 일을 다시 당한다면 당황하지 않고 보다 자신있게 헤쳐 나갈 수 있겠다.

 

가을벼 황금곡식
가을벼황금곡식 ⓒ 박건

덧붙이는 글 | moovi.net


#길없는 길#살았다#뻔한소리#박건#명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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