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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이와 비의 새끼들. 황구인 제 아비 닮아 7마리가 몽땅 누렁이로 태어났다.
 몽이와 비의 새끼들. 황구인 제 아비 닮아 7마리가 몽땅 누렁이로 태어났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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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저녁, 비가 드디어 엄마가 됐습니다. 백구인 제 엄마 닮은 놈은 하나도 없고 온통 황구인 제 아빠만 닮은 새끼 7마리가 태어난 것입니다. 추석 날 하루 종일 안절부절 하는 꼴이 곧 해산을 할 것 같아 미리 사다놓은 널따란 집안에 푹신푹신한 이불을 깔아 놓았더니 그 좋은 자리 제쳐두고 어두컴컴한 뒤란 보일러 뒤쪽 아궁이 터를 산실로 택해 순산을 한 것입니다

사실 배불러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 천방지축이 과연 어미노릇을 제대로 할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볼 일이 급해 뛰어나오기까지 꼼짝도 않고 젖을 물리고 핥아주고 새끼들 건사하느라 정신이 없지 뭡니까.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미가 되면 저렇게 눈물겨운 모성본능이 발현되는구나 싶어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새끼들 젖 빨리는 모습을 살펴보니 신기한 생각이 절로 드는군요. 평소 땐 말괄량이도 그런 말괄량이가 없었는데 새끼 젖 물리는 준비 작업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젖을 물리려 자리를 고르는 비. 행여 새끼들 깔릴까봐 조심조심하는 폼이 언제 저렇게 철이 들었나싶다
 젖을 물리려 자리를 고르는 비. 행여 새끼들 깔릴까봐 조심조심하는 폼이 언제 저렇게 철이 들었나싶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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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새끼들 다칠세라 조심조심, 오글오글 모아져 있는 새끼들 옆으로 살그머니 앉아 '깽알깽알'대는 새끼들 입으로 젖을 대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쉴 새 없이 새끼들 온 몸을 핥는 것으로 목욕을 시키던데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 엄마 역할을 어떻게 저렇게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까 새삼 엄청난 유전자의 숨은 비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출산 다음 날 아침 대형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새끼들 아비인 몽이와 어미 비가 뒤엉켜 피를 보는 부부싸움을 벌린 것입니다. 평소엔 마누라 눈치 슬슬 보며 피하던 몽이 놈이 이 날은 망령이 났는지 비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발광을 하는데 뭔 일 나는 줄 알고 앞이 캄캄했습니다.

 피를 본 부부싸움을 벌인 몽이 놈. 징벌로 대문에 묶여있다.
 피를 본 부부싸움을 벌인 몽이 놈. 징벌로 대문에 묶여있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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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이렇습니다. 해산어미 미역국을 끓이는 중간에 영양식이라도 주려고 멸치 한 움큼을 비에게 줬습니다. 멸치를 본 순간 새끼들 내팽개치고 뛰어나와 전라도 말로 '허천나게' 멸치를 주워 먹는 비가 안쓰러워 다시 멸치를 더 내와 비를 먹이고 보니 멀거니 쳐다보는 몽이가 가엾지 뭡니까.

해서 몽이에게도 보너스로 멸치 한 움큼을 주었는데 해산어미인 비가 몽이 것을 냉큼 가로챈 것입니다. 처음엔 제 멸치를 뺏어먹는 비를 얌전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우리가 한 눈을 판 사이 뭣에 비위가 틀어졌는지 몽이가 비를 공격한 것입니다.

평소 때도 까칠 그 자체인 비 성격에 그대로 당할 리 없었습니다. 두 놈이 사투를 벌이듯 드잡이를 하는데 말릴 재간이 없데요. 급기야 비 목덜미에 피가 스며들고, 우리 부부는 일곱 마리 새끼들 어미 없는 고아 만드는 줄 알고 혼쭐이 빠졌습니다.

몽이를 두들겨 패고 비 목덜미를 잡아당기고, 어렵사리 부부싸움을 중단시키고 그래도 분이 안 풀려 계속 달려드는 비를 막고는 몽이를 대문 밖으로  격리시켰습니다. 대문 밖으로 쫓겨난 몽이 놈. 이것이 뭔 사단인가 싶어 제 놈도 얼떨떨한 모양입니다.

 새끼들 핥느라 정신이 없는 비. 지극한 모성본능이 동물이라고 덜하랴
 새끼들 핥느라 정신이 없는 비. 지극한 모성본능이 동물이라고 덜하랴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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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진정되고 나서 다시 안으로 불러들였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아직까지 대문 고리에 붙잡아 매어놓고 숙식을 해결하는 형편입니다. 사람 같으면 늙은 나이에 처음으로 본 자식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몽이 놈이 일곱 살이니 사람으로 치면 오십 줄일 것입니다. 그 늦은 나이에 새끼를 그것도 자그마치 일곱 마리씩이나 봤으니 경사도 그런 경사가 없을 텐데 몽이 놈 여태껏 제 새끼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수놈으로 태어나 그 좋은 짝 한 번 못 만나는 게 안타깝다고 남편이 몽이 색시 감으로 간신히 젖을 땐 한 달 반짜리 강아지 새끼를 데려 온 것이 작년 여름일입니다. 나이 지긋한 노총각 황구와 젖먹이 민며느리 백구와의 만남.

둘의 동거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것도 암놈이라고 어린 색시 '비'가 좋아 꽁무니 졸졸 따라 다니며 스토커를 서슴지 않았던  몽이는 그것을 귀찮아하던 어린 색시의 구박을 시도 때도 없이 받아야만 했습니다.

사춘기가 되어 난생 처음 생리를 끝내 처녀가 된 비. 몽이는 그야말로 환장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짜든둥' 빈틈을 노려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번번이 이빨을 으르렁대며 접근을 불허하는 색시 서슬에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반복했습니다.

급기야 온밤을 지새워 비가 들어간 집 문간을 지키는데 그 모습이 정말 가관이더군요. 비가 들어있는 집 속에 머리통을 집어넣고 꼼짝 않고 불침번을 서는 것입니다. 아무리 짝사랑이지만 저렇게 처절한 모습으로 애걸하는 것을 보면 웬만하면 마음이 약해질 만도 하건만 독하기가 청양고추 못지않은 비, 눈 하나 깜짝 않네요.

그렇게 허망하게 허니문에 실패하고 두 번째 배란기가 찾아왔습니다. 비도 클 만큼 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지 했더니 과연, 비가 새끼를 가졌지 뭡니까. 평소 때도 엄처시하인 몽이. 새끼를 가져 안 그래도 까칠한 마누라 성격이 그야말로 면도날이 따로 없으니 어찌 됐겠습니까?

마누라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경처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려. 그동안 맛있는 것을 줘도 비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밥그릇 근처에 얼씬도 못했는데 무슨 생각이 들어 새끼 낳자마자 피의 응징을 벌이는지 모르겠군요.

새끼도 나았겠다, 더 볼 일 없겠단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니면 유부녀 주제에 튀어봤자 벼룩이란 생각이 들었을까요. 몽이의 속셈이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 한겨레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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