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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차례상 아버님 감독 없이 처음으로 차린 추석 차례상. 아버님 대신 메(밥) 한그릇이 더 올려졌다.
▲ 추석차례상 아버님 감독 없이 처음으로 차린 추석 차례상. 아버님 대신 메(밥) 한그릇이 더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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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추석은 연휴가 짧아 교통체증이 심할 것이라는 보도와는 달리 수월한 고향길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버스 전용차로가 많이 이용된 데다가, 사람들이 정체 예상시간을 피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2007년 3월 아들의 학교 문제로 전남 순천의 고향집을 방문했다. "여천군 화양면 백야도에 연육교가 놓였다는데… 거기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아버님 말씀을 듣고, 아내와 함께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지도를 봐가며 백야도를 찾아갔다.

젊은 시절 바다 낚시갈 때 낚시배 타고 몇 차례 가봤던 백야도는 이제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등대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었다. 뛰어난 경관에 감탄한 아버님께서는 아내에게 "미국 유학간 니 큰 성(동서) 오면 꼭 여그 구경시켜줘라!" 하셨다. 유교 사상이 유난히 강한 아버님은 아름다운 경치만 보고도 큰며느리인 종부 생각이 나셨던 모양이다.

이후 아버님은 2개월 후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10개월간의 병원 생활을 하시다 금년 2월 돌아가셨다. 결국 그 말씀은 유언이 되어 버렸고, 백야도 여행은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된 셈이다.

생애 마지막 여행지 백야도에서 하신 아버님 유언

백야도 등대 앞 벤치 아버님이 마지막 여행지. 백야도 이 자리에서 경관에 감탄하시며 큰 며느리 오면 구경시켜 주라고 하신 벤치였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과일을 깎아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백야도 등대 앞 벤치 아버님이 마지막 여행지. 백야도 이 자리에서 경관에 감탄하시며 큰 며느리 오면 구경시켜 주라고 하신 벤치였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과일을 깎아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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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번 추석에는 형수도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고, 4남 2녀 중 4형제 내외 모두가 모였다. 차례 음식 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형수께 백야도 구경을 시켜줘야 한다며 모두가 차에 올랐다.

아버님이 말씀하셨던 백야도 그 장소, 등대가 있는 곳의 벤치에서 아버님이 하신 말씀을 형제들에게 들려주며 아버님 생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로써 아버님의 중요한(?) 유지 한 가지는 받든 것이 아닌가 싶다.

생전의 아버님은 목욕탕 가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다. 그래서 집에서 물 받아놓고 목욕을 하셨다. 목욕비도 문제였지만 유교사상이 몸에 배어 모두가 맨 몸인 공중목욕탕이 싫으셨던 듯하다. 그래서 언젠가 아버님을 모시고 목욕탕에 가서 등을 한 번 밀어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백야도 다녀오는 길에 형이 찜질방을 가자는 '예상치 못한' 제안을 했다. 매우 보수적인 우리집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잠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했으나 눈치 빠르고 재치있는 막내 제수씨의 환호성에 힘을 받은 3명의 며느리들이 좋다고 동의했다. 그리하여 난생 처음으로 4형제 내외가 어머님을 모시고 여수시에 있는 대형 찜질방 나들이를 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찜질방에서 먼저 나와 차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며 "보수적이셨던 아버님이 계셨으면 오늘 같은 경우 어떻게 되었을까?"하며 "우리집도 많이 변하는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찜질방 건물 여수시의 어느 산속에 있는 대형 찜질방 건물로 우리 4형제 내외가 처음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간 곳이다.
▲ 찜질방 건물 여수시의 어느 산속에 있는 대형 찜질방 건물로 우리 4형제 내외가 처음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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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앞에 아이스크림을 놓고 성묘를 하다

몇 년 전 고조부 제사를 모실 때 일이다. 제삿상에 바나나를 올려도 되느냐, 안 되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바나나는 우리 고유의 농산물이 아니므로 올리면 안 된다"는 측과 "선조들이 잡숴보지 못한 과일이니 지금이라도 맛을 보실 수 있도록 올리는 것이 합리적이다"는 주장 등이 대립되었다. 결국은 올리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우리집에서 차례상 차릴 때는 늘 감독자가 있었다. 차례상에 진설을 하고 아버님께 검사를 받은 후에 차례를 지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사를 해주실 아버님이 계시지 않는다.

첫번째 성묘 금년 2월에 돌아가신 아버님 산소에 첫번째 추석 성묘를 올리고 있는 자식들.
▲ 첫번째 성묘 금년 2월에 돌아가신 아버님 산소에 첫번째 추석 성묘를 올리고 있는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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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생전에 너무 좋아하셨던 비비빅이라는 아이스크림을 묘앞에 놓고 성묘를 했다. 더운 날씨에 금세 녹아내리고 있다.
▲ 아이스크림 생전에 너무 좋아하셨던 비비빅이라는 아이스크림을 묘앞에 놓고 성묘를 했다. 더운 날씨에 금세 녹아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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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 모시는 방법이 적힌 오래된 책을 문갑 속에서 꺼냈다. 그리곤 '홍동백서 좌포우혜 두동미서 조율이시행'을 외워가며 차례상을 차렸다. 그런데도 아버님의 검사가 없으니 조상님께 결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미심쩍다.

차례를 마치고 선산을 찾아 아버님 산소에 첫번째 성묘를 했다.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음식류 몇 가지만 묘 앞에 놓고 성묘를 드리려는데  바로 아래 동생이 까만 비닐봉지에서 '비비빅'이라는 얼음과자 두개를 꺼내어 묘 앞에 올려 놓는 것이 아닌가?

"웬 아이스크림이냐?"고 물었더니 막내사위 이 서방이 추석에 아버님 산소 성묘 갈 때 아이스크림 사다 놓으시라고 어머님께 10만원을 보냈다고 한다.

결혼을 늦게 해서 아버님 마음 고생을 많이 시켰던 막내 여동생 내외가 아버님 생전에 두 분을 모시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자주 찾아뵙기도 하는 등 아버님 공경을 각별히 했다. 그 막내 사위가 아버님이 비비빅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막내 사위가 출근 때문에 처가에 오지 못한다고 하며 어머님께 "아버님 산소 가실 때 꼭 아이스크림…, 그것도 비비빅으로 사다 놓아야 한다"고 하며 현금 10만원을 보냈다고 한다. 어찌보면 웃음이 나올 일이기도 하나 그 성의가 가상치 않은가?

2008년 추석 3일의 연휴 동안 아버님이 계시지 않은 빈 자리가 너무 크다는 것과 세상은 너무나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귀경길 또한 어느 때보다 수월했던 것 같다. 과연 어머님 혼자 계신 백리길 고향을 찾아가는 행사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어 서글프다.

 지금 어머님 혼자 살고 계시는 고향집 마당에는 소일거리용 고구마 순이 잘도 자라고 있다.
 지금 어머님 혼자 살고 계시는 고향집 마당에는 소일거리용 고구마 순이 잘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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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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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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