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보, 시장에 가서….”

 

무엇무엇을 사 오라는 메모지를 건네주는 아내였다. 지난 일요일엔 딱히 할 일이 없어 두문불출하며 사이버대학의 공부에나 진력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놀고먹는 걸’ 못 보는 아내의 '성깔'은 그예 그처럼 시장을 봐 오라는 메모지를 통해 분출되었던 것이었다.

 

하기야 건강이 안 좋은 아내를 대신한 서방의 장보기가 어찌 흉이 될 터인가. 옷을 꿰입고 재래시장인 역전시장으로 갔다. 아내가 적어준 ‘계획쇼핑’에 의거하여 메모지를 연신 살펴보며 우선 청양고추를 2천원어치 사고 무도 실(實)한 놈으로 하나를 골랐다. 이어 주방세제와 우유도 하나를 산 뒤에 마지막으로 두부 한 모와 싱싱한 고등어도 한 마리를 샀다.

 

그러면서 단골 생선집 주인아줌마에게 “요즘엔 어찌 추석대목 좀 보시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이내 손사래를 강하게 치면서 ‘죽을 맛’이라고 했다. 그건 한 마디로 추석명절의 경기가 실종되었다는 것이었다.

 

추석이 이제 열흘 여 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은 ‘한가위’로도 불리는데 예로부터 이 날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없이 배불리 먹고 즐겁게 지내는 날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확연해지면서 그러한 패러다임에도 큰 변화가 도래했다.

 

그래서 부자(富者)는 값 비싼 갈비세트 등으로 추석선물을 돌린다지만 우리네 서민들은 재래시장에서 다만 과일 몇 개를 살 적에도 머뭇거리며 자꾸만 주머니 사정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해마다 맞는 한가위이건만 올해 내가 맞이하는 한가위는 사상 최악의 한가위가 될 공산이 농후하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주머니에선 여전히 공허한 찬바람만 부유하는 때문이다.

 

새벽부터 나와 노상에서 힘든 장사를 하고 아침과 점심마저 부실하게 대충 ‘때우는’ 재래시장 상인들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없는 어떤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이 취급하는 상품이 모두 팔려야만 비로소 성취감과 아울러 만족감에 발걸음도 가벼이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분주히 돌아갈 터이다.

 

한가위가 열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는데도 재래시장은 그러나 여전히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채 썰렁한 모습을 보자니 같은 서민의 입장에서 마음 한켠이 알싸했다.

 

말 그대로 한가위가 아니라 차라리 ‘寒가위’라는 얘기다. 요즘 그처럼 추석 매기(買氣)가 허전한 것은 분명 작금의 고물가에서 기초하는 것일 게다. 연초부터 물가가 치솟아 소비자들이 여전히 지갑을 꼭꼭 닫고 있음에야 어찌 한가위 특수를 기대할 손가?

 

어서 물가가 안정되고 그래서 한가위를 앞둔 재래시장에도 손님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산더미처럼 쌓인 물품과 제수용품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호황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재래시장은 어쨌거나 우리네 모두의 정서의 부하(負荷)이기에.

덧붙이는 글 | MBC라디오에도 송고 


#일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이 기자의 최신기사[사진] 단오엔 역시 씨름이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