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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앉은 잠자리 쉼의 시간, 잡힐라!
손가락에 앉은 잠자리쉼의 시간, 잡힐라! ⓒ 김민수

열대야로 잠못 이루던 날들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에 몸이 즐겁다고 아우성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가을을 이젠 몸이 느낀다.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여름날과는 달리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 단잠을 잔 탓이리라.

열대야가 시작되면서 밤이 두려웠다.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땀이 간지럽히며 잠을 깨우면 다시 잠을 자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밤새 돌아가는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만 나오니 선풍기라는 이름 대신 '열풍기'라는 이름을 붙여주어도 될 만큼 무더운 여름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곡식이 익으니 그것도 감사해야지 하면서도 들려오는 소식들마다 울화를 치밀게 하는 것들이니 여름 내내 감사를 잊고 살았다. 감사를 잊고 살아온 만큼 마음도 퍽퍽해졌다.

손가락에 앉은 잠자리 잠자리가 손가락에 앉으니 기분 참 좋다.
손가락에 앉은 잠자리잠자리가 손가락에 앉으니 기분 참 좋다. ⓒ 김민수

휴가철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날을 잡아 시골을 찾았다. 잠자리들이 먼저 반긴다. 잠자리를 잡아 달라는 막내의 요청에 손가락을 빙빙 돌려가며 잠자리를 잡았다. 잠자리들이 쉴 곳을 찾아 헤매다 머리 위에 앉는다. 혹시나 해서 손가락을 들어보니 오래지 않아 잠자리들이 앉는다.

시골 촌놈들이니까 가능한 일인가 보다. 언젠가 휴가철에 강남터미널에서 밤을 지샌 적이 있었다. 모기가 얼마나 기승인지 몰랐다.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지, 도시에 살면 사람뿐 아니라 곤충들까지도 약삭빠르게 진화하는가 보다 싶었다.

촌스러움, 나는 그것이 좋다. 약삭빠르지 않아도 그냥저냥 나인듯 너인듯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촌이요, 자연이 들려주는 온갖 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 촌이 아닌가. 컴퓨터 자판에만 익숙해 있던 손가락이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 모니터에만 익숙했던 눈이 잠자리의 날갯짓을 쫓아다니는 것, 저절로 나오는 미소, 이 모두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못생긴 수확물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못생긴 수확물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 김민수

그렇게 잠자리들과 유희의 시간을 갖고, 밭을 둘러보니 자본주의적인 세상에서는 도저히 상품가치가 없는 못생긴 것들이 수줍게 풀섶에 숨어있다. 참외, 오이, 토마토, 수박. 모두 돈을 주고 산 것과는 다른 맛이다. 덜 달지만 어릴 적 혀에 각인되었던 그 맛을 간직하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 진화도 퇴보도 아닌 그 맛을 지키는 것이 존재한 것이 아니런가.

오랜만에 풀떼에 물든 손가락이 좋아라 한다. 손톱에 까많게 낀 풀떼와 흙이 도시인의 손이 되어 버린 추한 손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내가 바쁘다고, 세상사 힘들다고 불평하면서 살아갈 때에도 그들은 천천히 불평하지 않고 자라주었다.

그 작은 씨앗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간에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겁도 없이 손가락에 앉아 쉬는 어리숙한 잠자리, 시장에다 내다 팔 수도 없는 못생긴 것들, 누가 기르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란 풀들, 그들과 씨름하다 보니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들이 나를 정화시킨다. 긴 한숨을 내쉬며 '이제 살 것 같다!'고 소리친다.

어느새 가을, 가을만 같으면 참 좋겠다.


#가을#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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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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